[과학기술 리더]문길주 과학기술연구원(KIST) 원장 "세계와 경쟁하자"

“스물일곱개 정부출연연구기관(출연연)이 뭉쳐야만 세계적인 경쟁력을 가집니다.” 문길주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원장은 과학기술 분야 경쟁력이 연구 집단 규모에 비례한다고 말했다. 출연연 구조개편 논의가 활발히 진행되는 가운데 제기된 그의 지적은 큰 의미를 담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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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0년 사이에 출연연이 무려 20개가 생겼습니다. 그 때는 빨리 가기 위해 쪼개져야 했고 여기까지 왔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빨리, 그리고 싸게 만드는 것으로는 경쟁이 안 됩니다.”

이제는 다시 모여 연구 집단의 규모를 키워야 할 시점이라는 지적이다. “KIST를 예로 들면 출연연 가운데 규모가 크다지만 정직원은 700명 수준입니다. 웬만한 세계적인 연구소는 적어도 KIST의 두 배 정도죠. 연구원 1200명 정도가 세계적 연구소로 발돋움하는 최소 요건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KIST가 진행 중인 연료전지 분야를 보면 유럽의 한 연구소 연구 인력은 KIST의 3배다. “국내에서 잘 하는 것은 의미가 없습니다. 세계와 경쟁해야 하는데 우리 출연연 규모는 너무 작습니다. 출연연이 모인다면 충분히 경쟁력을 가질 수 있는데 어떻게 뭉치는가는 고민해야 할 대목입니다.”

출연연을 합쳐야 하는 다른 이유도 있다. 바로 융합연구를 위해서다. “21세기 과학기술을 관통하는 키워드는 `융합`입니다. 지금까지는 개인의 역량과 노력이 경쟁력의 원천이었지만 융합시대에는 그 이상의 전략이 요구됩니다. 문을 열고, 다른 사람과 협력·공유하는데 힘을 쏟아야 합니다.”

특히 쌓아온 성과를 한 단계 더 높이려면 과감한 융합이 필요하다고 그는 강조했다. “연구소 간 벽이 허물어져야 하고 연구소와 기업, 그리고 대학 간 개방과 협력도 강화돼야 합니다. 이 같은 연구체제가 아니고서는 세계 일류기술도 노벨상도 기대하기 어렵다고 봅니다.”

연구 분야 간 벽을 허물고 융합연구를 진행하는 대표적 사례가 KIST 전문연구소다. “의공학, 환경, 미래도시, 뇌 등이 미래의 키워드가 될 것입니다. 이를 위해 분야별 전문연구소를 만들었는데 여러 분야 기술이 융합된 것이 특징입니다. 단일 기술이 아니라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함께 연구하는 모델입니다.”

이와 함께 문 원장은 KIST의 새로운 비전을 만들기 위해 고심하고 있다. 미래위원회를 구성해 KIST의 미래를 그리는 작업을 추진 중이다. “KIST가 다음 반세기 동안 해야 할 것에 대한 밑그림을 그리고 있습니다. 제가 밑그림을 그리고 다음 원장 손을 거치면 분명한 비전이 나올 것으로 생각됩니다.”

홍릉을 녹색단지로 변화시키는 것도 KIST의 비전 가운데 하나다. “홍릉이 한국 현대화에 일조했다면 이제는 홍릉이 세계화를 끌고 가는데 일조해야 한다고 봅니다. 그런 측면에서 녹색 기술은 매우 적절한 분야며 홍릉은 녹색 그린메카로 다시 태어날 것입니다.”

◇문길주 원장=환경 분야를 전공한 정통 과학자. 1978년 캐나다 오타와대 기계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미네소타대에서 기계·환경학으로 석·박사학위를 받았다. 1991년 국내 환경 분야에서 연구 활동을 하기 위해 KIST 지구환경센터장으로 부임한 이후 강릉분원장, 부원장 등을 역임했다. 환경 분야 연구 성과로 지난 2005년에는 제15회 과학기술 최우수논문상을 수상했다. 국제 환경연구 분야에서도 왕성한 활동을 하는 그는 국제대기보전세계대회 부회장직을 겸하고 있다. 자상한 이미지의 문 원장은 연구원을 가장 중요한 `고객`으로 대한다. 자율성을 강조하는 동시에 자신의 연구 분야만큼은 세계를 선도할 수준까지 가야 한다는 점을 주문한다.


윤대원기자 yun1972@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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