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쁨·슬픔·우울함 등 사람은 다양한 감정을 갖는다. 신체 건강 상황과 감정은 밀접한 관계가 있다. 병이 들면 우울한 감정이 들기 쉽고 반대로 감정 상태에 따라 신체에 변화가 온다. 때문에 치료 목적으로 사람의 감정 상태를 파악하기도 한다.
하지만 감정은 본인이 말로 표현하지 않는 이상 정확히 알기 어렵다. 환자 감정 상태를 측정하는 데 심리 상담과 정신 분석 방법이 이용된다. 문제는 이들 방법이 치료 환경에 따라 달라지는 환자의 감정이나 반응을 정확히 파악하기 힘들다는 점이다. 기능성 자기공명영상(fMRI) 장치를 이용할 수 있지만 비용이 많이 들고 절차도 복잡하다. 이르면 3년 뒤 간단한 바이오 칩 하나로 즉석에서 감정을 객관적으로 측정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침 속에 나타나는 감정= 국내 연구진이 바이오칩을 이용해 감정을 객관적으로 측정하는 방법을 개발했다. 정효일 연세대 교수팀은 바이오칩으로 감정을 읽는 `감성진단 칩` 개념을 제시하고 관련 전자소자를 개발했다. 소자는 스트레스 호르몬 일종인 `코르티솔` 농도에 따라 달라지는 공진주파수 변화 값을 표시한다. 소자 위에 코르티솔을 인지하는 항체를 올린 뒤 침 한 방울을 떨어뜨리면 항원-항체 반응이 일어난다. 이 상태의 공진주파수를 측정한 뒤 코르티솔이 없을 때의 공진주파수와 비교해 코르티솔 농도를 확인한다. 침 속 코르티솔 농도가 높을수록 주파수 변화 값도 크게 나타난다. 이를 통해 스트레스 정도를 측정할 수 있다. 코르티솔 농도가 높으면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다는 증거다.
코르티솔과 함께 알파아밀레이드라는 호르몬도 있다. 이 호르몬 역시 침 속에 있는 것으로 스트레스 관련 지표가 된다. 스트레스 지표는 학교나 산업현장에 적용할 수 있다. 학교에서 학생들의 침을 통해 특별히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학생을 선별할 수 있다는 게 연구팀의 설명이다.
◇다른 감정지표 찾아= 연구팀은 코르티솔이나 알파아밀레이드 외에 진단 칩에 사용할 또 다른 지표도 찾고 있다. 두 호르몬은 주로 스트레스 측정에 사용되며 다양한 감정을 측정하기 위해서는 다른 지표가 필요하다. 연구팀은 다양한 감성 지표의 측정 정보가 모이면 일정한 패턴을 찾아내 감정을 정확하게 확인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정 교수는 “신체에 염증이 있으면 우울증이라든가 감정 장애가 생기며 심혈관 계통 문제나 비만도 감정과 관련이 있다”며 “이 같은 염증과 관련된 지표를 통해 스트레스 외에 다른 감정을 확인할 수 있다”고 말했다. 염증 지표를 통해 연구팀은 감정 장애, 자살충동, 우울증, 피로감, 불면증, 무기력증, 거식증 등 다양한 상태를 확인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했다.
◇ 감정진단 칩 개발 눈앞= 감정 분야별 소자를 함께 모으면 혈액이나 침·소변과 같은 생체 시료 한 방울로도 감정을 측정하는 바이오칩을 만들 수 있다. 정 교수는 “쉽게 말해 임신 진단 키트처럼 시료 한 방울로도 1분 안에 감정을 측정할 수 있다”며 “상용으로 개발 중인 것은 이르면 3년 이내 시장에 선보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연구진은 스트레스뿐 아니라 우울이나 불안, 나아가 희열이나 감동 같은 감정도 측정하기 위해 심리학자나 정신과 의사, 내분비과 의사와 융합 연구를 진행 중이다. 상담과 임상 결과를 참조해 감성 지표로 사용할 물질을 확보한다는 방침이다.
윤대원기자 yun1972@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