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부터 정부와 산업계가 절전행동에 들어갔다. 올 여름 정부의 전력수급 계획의 핵심은 냉방온도 제한이다. 특히 문을 열어 놓고 냉방을 하는 상가에 대해서는 과태료가 부과된다. 하지만 상인들은 아직 공감하지 못하고 있다.
5일 오후 2시 명동거리. 출입문을 개방한 채 냉방기를 가동하는 상가들이 즐비해 이미 한차례 논란이 되었던 곳이지만 전기 낭비 행태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이날 명동거리의 외부 온도는 29도 안팎을 오고갔지만 길 양옆으로 늘어선 상가 내부온도는 평균 22도를 기록했다.
명동역 출구와 연결되어 있는 대형 의류쇼핑몰 출입문 앞에는 젊은 남녀로 가득했다. 바로 옆에 벤치가 있지만 이들이 출입구 쪽에 몰리는 이유는 더운 여름날 새어나오는 건물의 냉기를 느끼며 일행을 기다릴 수 있는 명당이기 때문이다.
규정대로라면 이 건물의 실내온도는 26도 이상이어야 하지만 온도계의 숫자는 22도와 22.4도 사이를 오고 갔다. 바로 과태료 대상이다.
명동거리에 들어서는 순간 예상은 했지만 현실은 생각보다 심각했다. 모두 약속한 듯이 문을 활짝 열어놓고 영업을 하고 있었다. 소형·중대형 매장 할 것 없이 고객들이 거침없이 매장에 들어올 수 있도록 문을 개방했고 일부 유명 스포츠·의류 매장은 접이식 문을 열어 출입구 폭이 5m가 넘는 곳도 다수였다.
여성의류를 판매하는 H매장에 들어가 봤다. 반팔 소매 사이를 파고들며 몸을 움츠리게 하는 에어컨 냉기의 위세가 예사롭지 않았다. 온도변화를 파악하기 위해 온도계를 그리 오래들고 있을 필요는 없었다. 전원을 켜자마자 24도를 가리킨 온도계 숫자는 순식간에 22도까지 떨어졌다. 이날 명동에서 측정한 가장 낮은 온도였다. 아르바이트생에게 “춥지 않냐?”고 말을 건넸다. “추워서 간혹 밖에 나갔다 들어오곤 하는데 냉방병에 걸릴 것 같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의외로 과태료에 대한 홍보는 잘 되어 있다. 유명 매장의 경우 체인 본사로부터, 다른 매장들도 상가협회 등을 통해서 냉방온도 제한과 과태료 부과 사실을 인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곳 상인들에게 있어 정부의 절전정책과 과태료는 동참의 대상이 아니라 회피의 대상이다. 7월부터 부과되는 과태료는 처음 적발 시 경고를 주고 2회 적발 시부터 50만원·100만원·200만원으로 늘어나 최대 300만원까지다. 한 매장 점주는 “먼저 하루 매상과 과태료의 차이를 따져봐야 한다”며 “일단 단속하는 분위기를 봐서 대처할 것”이라고 말했다.
명동거리 상가들을 돌아다니면서 한 가지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었다. 출입문을 개방한 채 에어컨을 가동하는 매장 대부분은 에어커튼을 설치했다. 내부의 냉기를 밖으로 빠져나가지 못하게 막는 설비다. 하지만 온종일 출입문을 열어놓는 상황에서 그 효과가 어느 정도일지는 의문이다.
오후 5시를 넘기자 명동거리에도 제법 선선한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일부 매장은 에어컨 전원을 내리고 자연 환풍을 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도 잠시 손님의 “덥지 않나요?”라는 말 한마디에 에어컨은 다시 가동된다. 설정온도 18도는 시간에 관계없이 변하지 않는다.
이른 더위와 늘어가는 전력수요, 여기에 몇몇 주요 발전소들이 가동을 정지해 최악의 전력위기를 맞고 있지만 이곳은 다른 세상을 살고 있다.
한 매장 점주는 “전기가 부족하다는 이야기는 언론을 통해 많이 들었지만 언제 일어날지 모르는 정전이 무서워 영업을 포기할 수는 없는 노릇”이라고 말했다.
[소박스]상가들의 절전 미동참은 구조적 문제
상가들이 출입문을 열어놓고 영업을 하는 가장 주된 이유는 출입문 개방여부가 실질적인 매상에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특히 다른 매장들이 모두 문을 열어놓고 영업하는 명동거리 같은 경우 출입문을 닫는 그 순간 그 매장은 휴업을 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
이들이 절전 동참에 무심하게 된 구조적인 문제도 있다. 바로 전기요금의 납부수준을 알 수 없는 관리비의 존재다. 대형 상가는 전기요금을 따로 내거나 관리비 내역상 전기요금을 통해 그달 매장에서 전기를 얼마나 썼는지를 알 수 있다. 반면 작은 건물에 밀집되어 있는 상가들은 관리비에 포함해 전기요금을 내지만 전체 관리비 중 전기요금의 비중을 알지 못하는 곳이 상당 수였다. 건물주에 따라서는 관리비 내역서를 주지 않는 곳도 있고 아예 상가별 계량기가 설치되지 않은 곳도 있었다.
상인 입장에서는 본인이 사용한 전기와 요금수준을 정확히 알지 못하다 보니 체감적으로 절전의 필요성을 느끼기 힘들다. `건물 내 다른 상가들이 전기를 마구 쓰는데 절전해봐야 나만 손해다`라는 피해의식도 생긴다.
일부는 전기사용량에 상관없이 매장의 크기로 관리비를 차등 부과하는 곳도 있다. 한 매장 점주는 “이 건물은 매장크기에 따라 관리비를 책정한다”며 “매장이 크면 전기를 많이 쓴다는 것도 맞는 말이지만 정확한 관리비 청구근거가 없다보니 전기절약의 필요성을 크게 못 느낀다”고 말했다.
서가람 지식경제부 에너지절약협력과장 “에어커튼은 보조수단일 뿐 출입문을 계속 개방한 상황에선 그 효과가 미미하다”며 “에어커튼 가동에 따른 냉방전력 사용량을 현재 조사 중이며 단속대상으로 삼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이번 단속에 상인들의 불만이 있겠지만 그동안 이런 절전 행동을 안 해왔던 것이 문제였던 만큼 많이 동참해주었으면 한다”고 당부했다.
조정형기자 jenie@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