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을 검열하는 범국가적인 협의체를 국제연합(UN) 산하에 신설하자는 논쟁이 가열되고 있다. 명분은 인터넷을 통해 전파되는 각종 정치적 루머와 괴담을 통제하겠다는 것. 중국, 러시아 등이 찬성한다는 입장을 밝힌 가운데 미국 역시 검토에 들어갔다.
허핑턴포스트 등 미국 주요 외신은 31일 미국 입법부 의원들과 관련 업계 중역들이 모여 인터넷 검열 권한을 UN에 주는 것에 대한 비공개 공청회를 가졌다고 보도했다.
오는 12월 193개국이 참가하는 두바이 세계정보기술회의(WCIT)에서 관련 법안을 국제법에 명문화하려는 방안을 논의하기 앞서 모인 자리다. 공청회에서는 부정적인 의견이 주를 이뤘다.
로버트 맥도웰 미국 연방통신위원회(FCC) 위원은 “인터넷 자유를 지지하는 사람이든 아니든 현재 이들이 정치, 경제, 사회 전반에 큰 영향력을 미친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다”며 “이제 인터넷의 미래를 결정할 시기”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렇게 범 정부주도의 규제는 인터넷의 생태에 반하는 일”이라며 개탄했다.
마이크로소프트(MS), 구글 등을 대표해 참석한 데이비드 그로스 와일리 레인 파트너는 “인터넷을 규제하는 국제기구 탄생은 인터넷이라는 자유로운 공간을 위협적으로 만들 뿐 아니라 경제적, 사회적 이익이 모두 급감할 것”이라고 밝혔다. 향후 WCIT에 참석해 투표권을 행사할 필립 베르비어 대사는 모든 의견에 대해 침묵으로 일관했다.
미국에 비해 중국, 러시아, 이란, 사우디아라비아 등은 매우 적극적이다. 러시아 블라디미르 푸틴 총리는 지난해 6월 국제콘퍼런스에서 “UN 산하 국제전기통신연합(ITU)가 인터넷 통제 역할을 담당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유는 간단하다. 이들 국가는 최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으로 인해 한바탕 홍역을 치르고 있는 나라다. 인터넷을 통제하는 협의체에 `정치적인 이유`를 들어 고발하면 반체제 인사들의 자유로운 의견 개진을 막을 수 있다. 간접적으로 조종이 가능하다.
맥도웰 위원은 “중국, 러시아를 비롯해 중동 국가들이 올 연말을 목표로 국제 조약을 맺는 것을 강력히 추진하고 있다”며 “이들이 한 표씩 행사할 경우 여론과 상관없이 협의체가 생길 가능성이 높다”고 우려했다.
허정윤기자 jyhur@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