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의 음성인식부터 동작·생각 인식까지
영화 `왓 위민 원트`는 천하의 플레이보이이자 광고회사 간부인 남자 주인공이 목욕을 하다가 감전된 후 여자들의 속마음을 듣게 되면서 일어나는 재미있는 에피소드들을 보여준 영화다.
주인공은 상대의 감정이나 생각을 읽는 능력, 독심술(讀心術)을 이용해 여자에게 작업도 걸고 다른 사람 아이디어를 차용해 자신의 능력으로 부각시키기도 한다. 남자 주인공으로 나온 멜 깁슨의 능청스러운 연기가 돋보였던 이 영화는 2000년대 초반 미국은 물론이고 우리나라에서도 많은 인기를 얻었다.
말도 안 되는, 현실에서는 불가능할 것으로 예상했던 이 영화의 시나리오가 10년이 지난 지금 현실화하고 있다. 영화나 공상과학 소설에서 볼 수 있었던 독심술이 생물학과 IT 결합으로 실현되고 있다.
◇음성인식→동작인식→생각인식=통신 업계 등 IT 분야에서 가장 활발하게 연구되고 있는 분야는 사람의 육성을 인지하는 음석인식 기술이다. 애플 `아이폰4S` 음성인식 기능인 `시리(Siri)`는 이 분야 대표 서비스다. 국내에서도 `한국판 시리`를 개발하는 데 불을 지폈다.
음성인식 기술은 휴대폰뿐만 아니라 자동차·금융권·여행 등 다양한 산업 분야에서 적극 활용되고 있다. 이는 결국 키보드 자판을 두드리는 고생으로부터 해방시켜 줬다. 기업에는 자연스럽게 업무 생산성 향상으로 이어지도록 했다.
음성인식 기술과 함께 부각되고 있는 기술이 동작인식 기술이다. 국내에서는 스마트폰 제조 기업이 얼굴·눈·음성·모션 등 인간의 신체적 특징을 인식해 자동으로 작동하도록 하는 기술을 선도적으로 적용하고 있다.
이러한 동작인식 기술의 등장으로 최근 `내추럴 사용자 환경(NUI:Natural User Interface)`이 이슈화되고 있다. 여기서 `내추럴`이 의미하는 것은 마우스나 키보드 같은 인공적인 입력 제어 장치 없이도 사람의 자연스러운 말·감각· 행동·인지 능력으로 기기를 제어하는 인터페이스 기술 또는 연구개발 방향을 통칭한다. 지난 22일 방한한 스티브 발머 마이크로소프트 CEO가 우리나라 IT서비스 기업인 LG CNS와 협력한 것도 바로 이 분야 솔루션을 공동 개발하기 위해서다.
음성·동작인식 기술에 이어 차세대 기술로 떠오르는 분야는 바로 생물학적 특성과 연계된 분야로 생각을 감지하는 센서의 개발이다. 즉 생각인식 기술로 어떠한 물리적 행동 없이 사람의 얼굴 표정과 흥분·집중도·생각 등을 인식한다. 누군가와 전화하고 싶다는 생각만 하면 전화가 걸리고, 컴퓨터 화면의 커서를 움직일 생각만 하면 커서가 실제로 움직일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생각만으로 움직이게 하다=생각인식은 결국 두뇌 활동에서 생기는 전류를 이해하고 읽는 기술을 말한다. 흥미와 집중하는 정도에 따라 두뇌에 어떤 변화가 생기는지를 파악해 이를 일상에 활용한다.
지난 2009년 3월 IBM 직원이었던 샤는 뇌졸중으로 전신마비 상태에 빠졌다. 하지만 그의 두뇌는 정상적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의사표현이라고는 눈을 위아래로 움직여 `예·아니요`만 할 수 있는 정도였다. 그런 그에게 미국 이모티브시스템스 생명공학사가 제작한 `에폭(EPOC)`이라는 장비를 제공했다.
에폭은 뇌파 전기신호를 읽어내는 몇 개의 센서를 머리에 붙이도록 구성돼 있다. 특정한 생각을 하게 되면 프로그래밍된 컴퓨터는 사전에 정해진 대로 작동한다. 예를 들어 관련 소프트웨어를 실행시키면 컴퓨터 화면에 블록이 나타나고 약간의 훈련을 거치면 왼쪽으로 옮기겠다는 생각만으로도 화면의 블록이 왼쪽으로 옮겨 간다.
IBM은 이모티브시스템스와 함께 인간의 두뇌를 컴퓨터나 스마트폰과 같은 단말기에 연결하는 방법을 지속적으로 연구하고 있다. 두뇌 활동을 읽을 수 있는 진보된 센서가 탑재된 헤드세트를 개발하고 있다. 에폭 헤드세트는 게임 분야에 일부 적용되고 있다. 키보드나 마우스 없이 생각만으로 게임을 조종할 수 있지만 아직 정확도가 떨어지고 한정된 게임에만 활용할 수 있는 수준이다.
IBM은 앞으로 5년 이내에 게임은 물론이고 엔터테인먼트 분야에서 이런 기술을 갖춘 초기 단계 애플리케이션이 다양하게 선보이게 될 것으로 전망했다. 특히 의료 분야에서 의사들이 생각인식 기술을 활용해 두뇌 패턴을 검사하고 중풍의 재활 치료나 자폐증과 같은 뇌 장애를 연구하는 데 적극 활용할 것으로 예상된다.
UC버클리 과학자들은 특별한 자기공명촬영(MRI) 스캐너를 고안해 냈다. 이 MRI는 생각인식 기술을 적용해 사람이 깨어있을 때뿐만 아니라 잠자고 있을 때에도 머릿속 생각을 가시화해준다.
◇스마트 도시 등 활용 무궁무진=생각인식 기술 연구 역시 이미 많이 이뤄진 상황이다.
오래 전부터 인간의 뇌 활동에서 생기는 전류를 이해하고 읽으려는 연구는 지속돼 왔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기술이 이미 휴대할 수 있을 정도로 작게 만들 수 있는 단계까지 발전했다고 한다. 하지만 이처럼 기술적으로는 많이 진보했을지 몰라도 아직 많은 사람이 이용하고 싶어지게 할 만한 애플리케이션으로는 개발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혁신적이고 창의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아이디어만 접목된다면 앞으로 기술 활용은 무궁무진하다.
생각인식 기술로 상상할 수 있는 영역은 실로 다양하다. 야구모자 안에 장착시킨 다음 항상 머리에 쓰고 다닐 수 있다고 가정해 보자. 머리로 생각하는 것을 자신의 휴대폰과 연동되도록 한다면 지금과는 또 다른 세상이 구현될 것이다. 집까지 얼마나 막힐까 생각만 하면 관련 도로교통정보가 휴대폰으로 바로 볼 수 있는 것을 상상할 수 있다.
더 앞서 `스마트 도시`도 생각해 볼 수도 있다. 만약 모든 사람들이 이 장비를 몸에 가지고 다니면서 그들의 생각을 공유할 수 있게 된다면 도시의 여론이 어떤지 바로 도표로 확인할 수 있다. 영화 같은 일이 현실화되는 것은 시간문제다.
성현희기자 sunghh@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