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술에 물 탄 듯한 방통위

최근 방송통신위원회 전원회의에는 KT의 삼성전자 스마트TV 망 차단 조치가 안건으로 상정됐다. 업계 핫이슈로 떠오른 `망 중립성` 혹은 `망 관리성`에 대한 정보통신기술(ICT) 정책당국의 방향을 엿볼 수 있는 드문 기회였다. 이용자 보호에 대한 정부의 태도도 관심을 모았다.

그런데 기대감은 어이없이 무너졌다. 이날 상임위원들은 의견진술자로 나온 KT 임원에게 어깨에 잔뜩 힘을 주고 호통만 쳤다. 본질적 사안인 망 중립성 문제 논의는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그렇다고 이용자 피해를 유발한 것에 엄중한 조치를 내린 것도 아니다. KT에는 `경고`, 삼성전자에는 `권고` 조치가 내려졌다. 사실상 아무런 효과 없는 단어만 쏟아냈다. 망 중립성과 이용자 보호에 대한 방침이 `술에 물 탄 듯` 흐리멍덩했다.

지금 방통위의 정책 결정 수준이 딱 이 정도다. 객관적 사실에 기반을 두고 산업 발전이나 이용자 보호에 정확히 초점을 맞춰 드라이브를 거는 것이 아니다. 이 말도 듣고 저 말도 들으며 기계적 중립을 지켜내려고만 한다. 스마트TV를 둘러싼 회의가 `쇼`와 비슷하게 끝나버린 이유다.

기업에서 대관(對官) 업무를 담당하는 이들의 말을 들어보면 더 기가 막힌다. 한 통신기업 대관 업무 담당자는 “어차피 방통위는 이쪽 저쪽 말을 다 듣고 가운데 의견으로 정책 결정을 내리려 하기 때문에, 업체 간 의견 대립이 있을 때 수세에 몰린 기업이 어려움을 부풀려 자사에 조금 더 유리한 결정을 유도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설령 두 기업이 대립각을 세우더라도 객관적 사실에 기반을 두고 옳은 정책 결정을 내리는 것이 아니라 그저 중재만 하려 한다는 것이다. 기업들은 이 약점을 악용한다.

업계 다른 관계자는 “만약 10년 전에도 지금과 같은 방통위 체제였다면 혁신적인 ICT 발전 조치들이 나올 수 있었겠냐”고 반문했다. 선거와 맞물려 ICT 거버넌스가 이대로는 안 된다는 논의가 한창이다. 신중한 대안 모색이 필요하다. 단순히 가운데 서는 `기계적 중립`이 아닌 진짜 공정한 정책을 이끌 수 있는 거버넌스 체제가 나왔으면 좋겠다.


황태호 통신방송산업부 thhwang@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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