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로통신(3) ADSL도입
캄캄한 밤중. 저멀리 한 줄기 밝은 빛이 보였다.
하나로통신에 비대칭디지털가입자회선(ADSL)은 희망의 등불이었다. 하나로통신 출범을 화려했지만 딱 떨어지는 신성장 사업이 없었다. 그때 찾아낸 것이 ADSL이었다.
그러나 도입은 시작부터 쉽지 않았다.
먼저 하나로통신 내부 반대에 부딪혔다. ADSL을 도입하면 비싼 모뎀 외산장비를 설치해야 했다. 하나로통신 주주들은 대규모 설비투자에 반대했다. 수익성이 없다는 게 이유였다. 정보통신부 승인도 넘어야 할 산이었다. 자칫하면 통신정책 실패로 이어질 수 있었다.
하나로통신은 이런 난관을 넘어 ADSL 도입을 최종 결정했다. 1988년 11월이었다.
곡절 많았던 하나로통신 ADSL 도입 과정을 살펴보자.
제2 시내전화사업자로 1997년 9월 23일 출범한 하나로통신은 미래사업을 놓고 고심을 거듭했다. 하나로통신은 네트워크와 통신설비가 없었다. 시내전화사업에서 한국을 대표하는 한국통신(현 KT)와 경쟁해서 살아남을 가능성은 희박했다. 경영진의 속은 시커멓게 타들어갔다.
한국통신 시내전화에 대한 소비자 반응은 거의 완벽한 수준이었다. 통화품질이나 성능, 서비스에서 불만이 거의 없었다.
신윤식 하나로통신 사장(체신부 차관, 하나로통신 회장 역임, 현 정보환경연구원 회장)의 증언.
“하나로통신이 한국통신과 시내전화경쟁을 해 이긴다는 것은 불가능했습니다. 한국통신 서비스는 세계적인 수준이었습니다. 전화번호 변경신청을 하면 몇 시간 안에 처리해 주었습니다. 하나로통신이 시내전화사업만으로는 생존조차 어려운 상황이었습니다.”
권택민 하나로통신 경영기획실장(경기디지털콘텐츠진흥원장 역임, 현 한국콘텐츠진흥원 부원장)의 회고.
“하나로통신에서 시내전화서비스 만족도를 조사한 적이 있습니다. 그 결과 한국통신의 시내전화 서비스에 대한 소비자 만족도가 98%에 달했습니다. 불만이 거의 없었습니다. 하나로통신이 후발주자로서 시내전화사업에서 돌파구를 찾기가 힘든 구조였습니다.”
신 사장은 미래 수익모델을 놓고 고민을 거듭하다 사업 차별화를 생존카드로 제시했다.
이인행 하나로통신 기술기획이사(하나로통신 대표 역임, 현 에어텍 회장)의 기억.
“하나로통신이 제2 시내전화사업자지만 초고속망 전화사업으로 서비스를 차별화하면 승산이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당시 데이터 수요가 늘어나는 추세였습니다.”
하나로통신은 외국 통신사업자들의 시내전화사업과 멀티미디어 전략을 파악하기로 했다. 외국 전화사업 사례를 분석해 적합한 기술과 미래사업 모델을 찾기 위해서였다.
1997년 11월과 12월에 김영철 부사장(작고)을 비롯해 사내 기술진 10명으로 3개팀을 구성해 미국과 일본, 유럽에 파견했다.
미국과 일본팀은 김영철 부사장과 남기철 상무(하나로산업개발 사장 역임), 이찬호 이사, 전송망계획실 이승석 부장(현 SK브로드밴드 부문장), 장원규 과장, 사업협력실 김재정씨 등 6명으로 구성했다. 이들은 11월 19일부터 29일까지 미국과 유럽을 다녀왔다.
유럽팀은 11월 23일부터 12월 6일까지 영국과 스웨덴, 핀란드, 프랑스 등 4개 국의 전화망을 비롯한 통신망 구성과 신규서비스 실태를 조사했다.
유럽팀은 주홍렬 교환망계획실 실장(하나로웹TV 사장 역임)과 윤경림 사업전략실 마케팅전략 1팀장(현 CJ그룹 부사장), 송인엽 교환망계획실 전화교환망팀 과장, 유창완 사업전략실 마케팅 전략팀 대리 등 4명이었다.
미국과 일본팀은 미국 벨과 AT&T, INC, 벨코어 같은 굴지의 통신업체를 방문해 시내전화 현황과 가입자망 고도화 전략 등을 파악했다. AT&T가 개발한 ADSL을 이용해 미 벨 애틀랜틱이 1988년 10월을 목표로 인터넷 상용서비스를 준비 중인 게 특이 사항이었다. 일본에서는 NTT와 TTnet, JT 등의 시내전화 사업과 기술전략, 멀티미디어 공중전화기 사업을 조사했다.
유럽팀은 영국 기간통신망 업체인 BT와 이동통신사인 C&W의 네트워크 구조와 멀티미디어 인터넷 서비스 제공 현황, 마케팅 전략 등을 파악했다. 영국 전화사업자인 이오니카가 무선가입자망(WLL)방식으로 ADSL을 일부 서비스하고 있었다.
스웨덴에서는 에릭슨을 방문해 교환망과 신호망 구조 그리고 ATM교환기 개발 및 멀티미디어 서비스 개발 실태를 조사했다. 핀란드와 프랑스에서도 각각 통신업체를 방문해 통신시장 구조와 경쟁 실태 등을 파악했다.
3개팀은 귀국 즉시 해외 통신업체의 시내전화 사업 경쟁 실태를 소상히 보고했다. 해당 국가의 통신 규제 정책과 사업자 현황, 시장 실태 등과 해외 통신업체들의 미래사업 전략도 구체적으로 분석했다.
미국과 일본팀에 속했던 이승석 부장의 말.
“당시 하나로통신의 가장 큰 문제는 네트워크 인프라를 구축하는 일이었습니다. 미국은 90% 이상이 기존 가입자선로를 임차해 사용하고 있었습니다. 한국도 한국통신(현 KT)의 가입자선로를 이용할 수 있게 하는 정책이 필요했습니다. 그게 큰 아쉬움이었습니다.”
신윤식 사장은 이들의 보고서를 토대로 경영진과 미래전략을 논의했다.
신 사장의 말.
“귀국 보고서에 미국에서 종합정보통신망(ISDN) 대신 ADSL이란 기술이 개발됐다고 했어요. 전화선을 이용해 초고속으로 정보를 전송할 수 있는 기술인데 개발이 끝나 상용화만 남겨놓고 있다는 겁니다. 영국은 일부 서비스를 시작한 상태였습니다. 나는 이 서비스를 해야 하나로통신이 살아남을 수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하지만 내부 반대가 거셌다.
신 사장의 계속된 증언.
“초고속망 ADSL서비스를 하려면 설비투자를 해야 하는데 당시 모뎀가격이 65만원 정도였어요. 전부 외산이었습니다. 기획과 영업쪽에서 반대가 심했어요. 권택민 실장은 `그래 가지고는 미래가 안 보인다`며 강하게 반대했습니다. 2년 안에 20만원 이하로 내리게 할 수 있다고 설득했습니다.”
이인행 이사의 설명
“그 당시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전국 통신사업자가 ADSL을 도입한 사례는 없었습니다. 하지만 데이터 수요가 늘어나고 있었고 ISDN 속도가 64~128kbps여서 만약 이보다 더 빠르게 대용량 데이터를 서비스하면 충분히 승산이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권택민 실장의 말.
“이사들은 이자도 안 나온다며 설비투자에 반대했습니다. ADSL 기술은 개발됐지만 전국 사업자가 상용화한 나라는 없었습니다. 막대한 설비투자비를 어디서 마련하느냐도 문제였습니다. 하지만 신 사장께서 이사들을 설득하고 결단을 내려 ADSL을 도입하고 설비투자도 하게 됐습니다.”
신윤식 사장은 강봉균 정통부 장관(재경부 장관 역임, 현 민주통합당 국회의원)을 만나 ADSL 도입에 따른 그간의 사정과 초고속망 전화사업 구상을 설명했다. 그러자면 정책적인 문제를 풀어야 했다. 정통부는 초고속망 지역사업자를 선정해 공고까지 한 상태였다.
이해 당사자인 지역사업자 설득도 문제였다. 신 사장은 사업자 설득은 자신이 책임지겠다고 했다.
강 장관은 “모든 일을 문제없이 해결할 수 있겠느냐”며 “정통부 확대간부회의에 신 사장이 참석해 하나로통신의 ADSL사업계획을 설명해 달라”고 요청했다.
신 사장은 며칠 후 정통부 확대 간부회의에 참석해 30여분간 사업전략을 설명했다.
신 사장의 회고.
“하나로통신의 ADSL 도입과 초고속망 전화사업 계획을 설명하자 강 장관이 간부들에게 `각자 의견이 있으면 말해 보시오`라고 하더군요. 그날 결론은 하나로통신 계획대로 ADSL 도입을 추진하기로 했습니다. 사전에 정통부 실무진에게도 이런 내용을 설명하고 협조를 구했습니다.”
정통부 고위관계자의 증언.
“하나로통신 ADSL 도입에 대해 내부에서 이견이 있었습니다. 두루넷이 초고속망 사업을 하고 있었고 모뎀 등 장비는 외산을 수입해야 했어요. 이미 ISDN이 들어와 서비스 중인데 꼭 ADSL을 도입해야 하느냐는 반론이 있었어요.”
이인행 이사의 설명.
“당시 하나로통신은 ADSL과 VDSL을 놓고 기술검토를 했습니다. ADSL은 중계거리가 최장 4㎞인 데 비해 VDSL은 200~300m밖에 안됐어요. 중계거리가 짧으면 투자비가 더 들어갑니다. 그래서 ADSL을 선택한 것입니다.”
하나로통신은 1999년 4월 1일을 상용서비스 개시일로 잡았다. 신 사장은 모뎀 국산화를 위해 국내 100여개 업체에 500억원의 자금을 지원했다고 말했다.
하나로통신은 1998년 8월 프랑스 통신장비업체인 알카텔에서 모뎀장비를 도입했다. 서울 오금동 현대아파트에 장비를 설치해 일부 가입자를 대상으로 시험서비스를 시작했다.
이 업무를 담당한 이승석 부장의 말.
“속도와 품질에서 고객반응을 조사했습니다. 요금과 관련해서는 정통부에서 관계기관이 참석한 가운데 회의를 많이 했습니다. 요금은 4만원 이하로 해야 초고속인터넷 활성화가 가능하다는 의견이었습니다. 나중에 최종 가격은 2만8000원으로 정한 걸로 기억합니다.”
그해 11월 김정덕 부사장(한국과학재단 이사장 역임)과 이인행 이사가 직접 시범서비스 현장에 나가 품질과 속도를 확인했다. 아파트 통신실에 ADSL 장비와 망을 연결해 모뎀을 설치하고 시범서비스를 했다. 결과는 성공이었다.
회사로 돌아오는 차 속에서 김 부사장이 신 사장에게 전화로 결과를 보고했다.
“사장님, 오늘 저 감동 먹었습니다. 이 정도라면 충분히 승산이 있습니다.”
하나로통신은 희망에 부풀어 있었다.
이현덕기자 hdlee@etnew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