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둑을 제대로 배우려면 정석부터 공부해야 하고, 태권도의 고수가 되려면 기본 품새를 마스터해야 한다. 제조업에서는 품질관리(QC)·생산성관리(IE)·원가관리(VE) 등 현장관리의 기본을 튼튼하게 다지지 않으면 경쟁우위에 설 수 없다.
1970년대 우리는 일본으로부터 `일본식 모노쯔꾸리(좋은 물건을 만드는 장인정신)`의 기본을 전수받았다. 도요타 생산방식이라는 TPS는 일본식 모노쯔꾸리의 궁극적 모델이다.
필요한 것을 필요한 곳에 필요한 만큼만 공급한다는 도요타의 JIT(Just In Time), 문제는 현장에서 현물을 보며 현시에 해결한다는 3현주의, 3무-무다(불필요)·무리(불합리)·무라(불균일, 변덕)-의 제거로 낭비 없는 현장 만들기, 기다리는 것도 낭비라는 개념 인식 등 도요타의 현장관리 노하우는 한국 기업 발전에 큰 도움이 됐다.
삼성그룹이 1980년대부터 10년마다 주기적으로 도요타에 연수단을 파견해 세 번씩이나 배워온 것만 봐도 그 가치를 알 수 있다. 현장관리의 기본인 QC·IE·VE는 서구에서 체계화했으나 일본의 장인 정신으로 체질화돼 세계 제조업 발전에 큰 공헌을 했다.
그러나 1990년대 들어와 프로세스혁신(PI), 전사자원관리(ERP), 6시그마, 공급망관리(SCM) 등 서구의 새 방법론이 도입되면서 현장관리의 기본이 소홀해지기 시작했다. 대기업은 글로벌 경쟁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선진 방법론을 도입하는 데 급급했다. 컨설팅 업체는 새 방법론을 소개하는 데 집중하게 됨에 따라 현장관리의 기본이 소홀해진 것이다.
문제는 중소기업의 현장 경쟁력이다. 대기업은 자체 교육 시스템으로 현장관리의 기본을 유지해나가며 선진 기법을 도입할 수 있으나 중소기업은 속수무책이다. 이런 이유로 중소기업의 경쟁력 기반에 심각한 한계가 드러나고 있다. 중소기업진흥공단은 대증요법으로 치유하려는 노력을 하고 있으나 큰 흐름을 막을 수 없다.
미국은 이러한 문제의 근원이 대학의 엔지니어 교육에 있다고 판단했다. 1930년대에 공학교육 인증제도를 도입했고 1990년대 후반 공과대학 교과과정에서 기업 현장에 필요한 방법론을 PRP(Product Realization Process)로 가르치게 했다. 품질·생산성·원가는 물론이고 선진 방법론도 기본을 대학 과정에 포함시켰다. 이를 엔지니어의 기본 소양으로 갖추면 중소기업의 현장 경쟁력도 개선할 수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한국에서도 그 필요성에 따라 공학교육 인증제도가 도입돼 이제 10년이 넘었다. 그러나 사회 공감, 정책 뒷받침이 부족해 제자리걸음이다. 한국에 공학 교육은 있으나 엔지니어 양성 교육은 없다고 걱정하게 되는 이유다.
중소기업 자문활동을 경험한 사람은 “새로운 방법론을 원해서 중소기업 현장에 가보면 정리, 정돈, 청소, 청결, 바른 태도, 즉 5S의 기초가 안 돼 있다”고 한다. 5S만으로도 낭비와 품질 문제 개선에 큰 효과가 있을 뿐 아니라 통계적·과학적 방법론을 도입할 수 있는 기반이 되는데도 그렇다. 중소기업 제조 현장의 기초를 튼튼히 하는 것이 국가 경제의 초석이라는 인식 부족이 안타깝다.
중소기업을 지원하는 시책은 많다. 그러나 대부분 대증요법식 처방의 나열이다. 기초체질, 제조업의 기본을 튼튼히 해 중소기업 현장을 강하게 하지 않으면 백약이 무효다. 글로벌 경쟁 단계의 대기업이 도입하는 고차원의 방법론에 현혹되지 않고 도요타의 `모노쯔꾸리 정신`과 `5S` 같은 현장관리 기본 기법의 가치를 새롭게 인식, 교육, 보급하는 일을 재정비해야 한다.
손욱 한국엔지니어클럽 부회장 wooksun@samsungfore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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