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를 만드는 사람들] 김길연 엔써즈 대표

`닥치고 디밀어(디미릿)!` KAIST에 한때 유행했던 우스갯소리다. KAIST는 누구나가 인정하는 최고의 이공계 대학이다. 하지만 엘리트 이공계 졸업생도 좁은 취업문 앞에서는 작아질 수밖에 없다. `디미릿 (DEET·MEET·LEET)`은 DEET(치의학교육 입문검사· Dental Education Eligibility Test), MEET(의학교육 입문검사·Medical Education Eligibility Test), LEET(법학적성 시험·Legal Education Eligibility Test)를 뜻한다. 인정하기 싫지만 4년 동안 배운 전공 대신에 시류를 쫓는 씁쓸한 이공계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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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IST 학생 모두가 `닥치고 디밀어`였다면 아마도 대한민국 벤처의 미래는 어두웠을 것이다. 남과 다른 `거꾸로` 학창시절을 보냈지만 성공스토리를 쓴 주인공이 엔써즈 김길연 대표(37)다. 창업 초기에는 모든 게 힘들었고 쓰디쓴 실패를 경험했지만 결국 동영상 검색 분야의 간판 기업을 만들어냈다.

김 대표는 KAIST를 졸업하고 치대·의대 혹은 대기업 대신에 벤처 창업에 겁 없이 뛰어들었다. 뜻이 맞는 친구들과 함께 설립한 음성인식 소프트웨어업체 `SL2`는 KAIST 석사창업 1호 벤처로 기록돼 있다. 김 대표는 “전공이 컴퓨터공학이었는데 음성 인식기술을 개발하면 대박이라고 생각했다”며 “그러나 창업 후 기술 개발을 나섰지만 현실은 녹록치 않았다”고 말했다. 2000년 창업한 SL2는 결국 6년 만에 사업을 접었다. 포부도 컸고 시장도 자신했지만 세상은 그렇게 녹록하지 않았다. 뒤돌아보면 기술력이 부족했고 시장 요구보다 너무 앞섰기 때문이었다.

“시작할 때는 사업 아이템을 자신했습니다. 음성을 인식해 자동으로 작동하는 기술은 영화에서나 가능한 이야기였습니다. 상용화만 성공하면 시장은 저절로 열릴 것으로 확신했습니다. 그러나 착각이었습니다. 아이디어와 기술은 달랐습니다. 시행착오를 거쳐 소프트웨어를 개발했지만 오류가 너무 많았습니다. 무엇보다 당시 이를 구현할 수 있는 하드웨어 인프라 격인 컴퓨팅 성능이 크게 떨어졌습니다. 일례로 음성인식 소프트웨어를 구동하기 위한 최소 프로세서(CPU)는 1GHz 정도가 필요했지만 현실은 100~200MHz 수준이었습니다.”

김 대표는 SL2실패를 깨끗이 인정했다. 그러나 값진 교훈이었다. 이 후 엔써즈를 다시 창업하는데 큰 도움을 받았다. 경험이 일천한 청년 기업가의 실패 경험은 새로운 성공스토리를 쓴 밑거름이 되었다.

일반인에게 생소하지만 엔써즈는 지난해 최고의 화제 기업이다. 2007년 4월 동영상 검색업체 엔써즈를 창업한 이 후 지난해 말 지분 45%를 200억원에 KT에 매각해 주목을 받았다. 2006년 검색 업체 첫눈이 네이버에 350억원에 매각된 이후 들려온 벤처업계 낭보였다. 주변에서는 성공적으로 회사를 매각한 사례라며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김 대표는 “엔써즈의 핵심 기술은 `멀티미디어 핑거프린트`” 라며 “동영상을 초당 4~5개 프레임으로 나눠 각각의 특징을 분석해 다른 동영상과 비교해 원본이 같은 동영상을 찾아 주는 검색 기술”이라고 설명했다.

엔써즈는 2008년 동영상 검색 포털 `엔써미(Enswer.Me)`, 온라인 동영상 유통관리 플랫폼 `애드뷰(AdView)`, 콘텐츠 유통 관리 솔루션 `플랫폼-V(Platform-V)` 등을 차례로 시장에 선보였다. 다음·KTH·NHN 등 포털업체와 방송사, 웹 하드업체에 공급하면서 동영상 검색 시장을 개척했다. 2011년에는 한류 포털 사이트 `숨피`를 인수해 콘텐츠를 강화하면서 글로벌 시장 공략에 포문을 열었다. 이어 올해 1월에는 레블릭스를 추가로 사들이고 모바일 서비스 분야로 영역을 넓혔다. 최근에는 이미지 샷으로 해당 이미지와 일치하는 장면이 포함된 동영상을 찾아 주는 동영상 재생과 공유 서비스 `이미디오`를 공개했다. 김 대표는 “앞으로 웹 콘텐츠는 동영상이 대세” 라며 “동영상 검색 분야의 구글이 목표”라고 힘 줘 말했다.


강병준기자 bjkang@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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