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T는 동영상 검색 전문 스타트업 기업 `엔써즈`를 450억원에 인수했다. 그동안 국내에서 싹이 보이는 기업을 인수합병(M&A)하는 사례는 드물었다. 대기업이 우수 인력을 빼가거나 M&A 후 기술만 취하고 기존 직원은 구조조정 하는 등 상생과는 거리가 멀었다. 엔써즈 인수는 건전한 벤처 생태계를 조성하는 사례로 눈길을 끌었다. 스타트업 기업 M&A를 최종 결정한 이석채 KT 회장을 전자신문에서 인터뷰했다. 진행은 허운나 스타트업 포럼 이사장(채드윅 송도국제학교 고문)이 맡았다.
-허운나 스타트업포럼 이사장=스타트업 창업이 활기를 띤다. 2000년대와 비교하면 차이가 있나.
▲이석채 KT 회장=차이가 난다. 주로 정보기술(IT) 계통에서 제기되는 문젠데 그 때는 우리가 IT를 잘 몰랐다. IT면 뭐든지 새로우니 희망이 보여 달려드는 경향이 있었다. 지금 IT는 영역이 훨씬 넓어졌다. 순수한 IT솔루션뿐 아니라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앱)처럼 가벼운 것도 사업 아이템이 될 수 있다. 시장이 크니까 실패할 확률도 훨씬 적다. 실패해도 그 전처럼 큰돈을 빚져서 신용불량자가 되는 일도 없다. 글로벌로 가는 게 가장 큰 차이다. 인문학과 예술하는 사람도 IT 기본만 알면 아이디어를 사업화 할 수 있다. 대상이 넓다.
-허운나=많은 청년이 고시·대기업 등 안정된 직장에만 몰두하는데 이들이 창업을 통해 꿈을 이룰 수 있지 않을까.
▲이석채=경제성장은 기존 기업이 성장하고 새로운 기업이 계속 만들어지면서 가능하다. 새로운 기업이 나오려면 창업이 있어야 하니까 그 중요성은 아무리 말해도 모자란다. 전부 다 취업하는 교육을 시키는데 어떻게 좋은 일자리로 사람들을 유입시킬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창업하는 교육을 시켜야 한다. 그래야 정주영· 이병철 같은 기업가가 나온다. 창업 교육에 대해 전 사회가 관심을 가져야 한다.
-허운나=벤처 1세대가 버블 시대에 힘든 시기를 보냈다. 스타트업 기업이 겪었던 전철을 밟지 않으려면 어떻게 하면 좋을까.
▲이석채=직접 창업을 안 해봐서 잘 모르지만 예전에 어떤 외국인한테 이런 이야기를 들었다. 창의적인 사람을 만드는 가장 좋은 방법은 실패하게 하는 것이라고 말하더라. 미국 있을 때 포드 공장을 방문할 일이 있었다. 포드가 자동차를 만들 때 두 번 크게 실패했고 세 번째에도 벼랑 끝에 몰렸다가 겨우 성공했다. 많은 기업가가 실패를 겪었다. 실패를 하더라도 다시 일어날 수 있다는 게 중요하다. 우리나라에서도 엔젤투자자가 많이 생겨야 하고 포드도 엔젤 투자를 많이 받았다. 한국에는 아직 엔젤 투자자가 부족하다. 그게 있으면 젊은이들이 도전정신 있기 때문에 창업을 많이 할 수 있을 것이다.
-허운나=벤처, 스타트업 창업 효과는.
▲이석채=성공적인 스타트업이 많이 나오면 실제로 일자리가 많이 창출될 것이다. 그것보다 중요한 게 젊은이한테 기백을 심어 주는 것이다. 사실 창업 여건은 대한민국 역사상 최고로 좋다. 그런데 젊은이들이 미래를 회색빛으로 본다. 젊은이의 에너지가 자기 자신과 국가 발전으로 쓰이고 긍정적인 에너지가 풍족하면 사회가 발전한다. 취직을 염두에 두고 사회가 움직인다면 취직자리가 반드시 좋은 자리가 원하는 만큼 있는 것도 아니다. 현실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이 있고 갈등이 심해지면 에너지가 흩어진다. 지금 우리는 네거티브한 에너지가 너무 넘친다.
-허운나=젊은이가 창업하면 긍정의 에너지가 넘칠 것이다. 대기업 입장에서 동반자가 될 수 있는 스타트업 기업은 어떤 회사라고 생각하는지.
▲이석채=사실 대기업 입장에서 발상의 전환이 없으면 작은 기업하고 공존·공생하고 같이 발전하자는 생각을 하는 게 어렵다. 이익을 내려면 물건을 가능한 싸게 사야 한다. 계속 성장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걸 찾아야 한다. 기존 분야 키우려면 힘들지만 남이 하는 거 보고 아이디어 도용하는 건 쉽다. 인식을 바꿔야 한다. 지금 이 시대가 융합(컨버전스) 시대라는 걸 확실히 해야 한다. 한국은 재벌이 있어서 다양한 산업에 뿌리를 둔 기업을 함께 경영하고 있는데 아무리 커도 새로운 제품과 기술을 만드는데 나 혼자 할 수 없다. 융합은 다른 걸 묶는 것이다. 다이내믹한 분석을 해야 한다. 그리고 주는 게 있으면 받는 게 있다는 생각을 해야 한다. 국내 기업에는 다이내믹한 분석이 없다. 정태적 분석만 한다. 실제 세계에서는 그게 아니다.
-허운나=KT는 스타트업과 동반성장 사업을 많이 한다. 올레 벤처 어워드, 모바일 앱 공모전 같은 것들이 그렇다.
▲이석채=대기업과 벤처기업 양쪽이 모두 바뀌어야 한다. 실리콘밸리와 비교해 보면 왜 실리콘밸리에서는 연속적으로 스타트업 기업이 나오고 젊은 에너지가 몰릴까라는 생각이 든다. 여기에는 서로 책임이 있다. 벤처기업 입장에서는 돈도 돈이지만 조금만 더 노력하면 이걸 완전히 내 걸로 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한다. 중간에 이걸 대기업에게 넘긴다거나 판다는 걸 생각 안 한다. 작은 기업가가 한 기업을 끝까지 성공으로 끌고 간다는 게 굉장히 힘들다. M&A를 하고 회수(Exit)해서 그 돈을 가지고 다른 사업을 할 수 있어야 한다. 대기업은 적당할 때 좋은 값에 사주고 벤처를 애초에 일으킨 사람은 또 다른 벤처를 만들면 전체적으로 상승효과가 있을 것이다. 젊은 기업가가 패가망신 하지 않고 상당한 부를 얻을 수 있다는 생각을 한다. 절반이하 성공했을 때도 여전히 성공이고 사회 전체가 협조해야 한다. 이게 스타트업을 키우는 첩경이다.
-허운나=스타트업이 글로벌로 바로 진출하는 시대다. 그런데 정부에서 투자를 적지 않게 해왔는데도 구글, 오라클 같은 글로벌 스타 기업은 없다. 이유가 어디에 있다고 보나.
▲이석채=실제로 기업을 해보니까 규제가 생각 밖으로 강하다. 어느 정도 규제를 푼 것 같은데 막상 창의적인 다른 기술을 조합하거나 다른 성격 제품을 결합해서 새로운 제품 만들어서 시장에 내놨을 때 힘든 경우가 굉장히 많다. 이런 제약 요인 없어야 한다. 또 자기 뜻에 맞는 사람끼리 모이는 것도 중요하지만 IT가 세계로 연결 돼 있으니 외국에 있는 사람과도 기업 동지가 돼서 같이 생각할 수 있는 문화가 만들어져야 한다.
-허운나=정부 차원에서도 지원이 필요하지 않나. 글로벌 시장에 대한 정보도 개개인이 갖고 있기 힘들다.
▲이석채=과거에는 정부에서 많은 일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1985년에 창업투자사를 만든 게 나다. 그런데 지금 보면 정부가 할 수 있는 최선은 방해하지 않고 강자가 약자 유린하는 걸 막아 주는 것이다. 정부 역할이 쉽지 않다. 정부가 집념을 갖고 투철한 사명감을 가지고 약탈자를 막을 수 있어야 한다. 돈 모아서 지원하고 세제 지원하는 것 좋지만 그래서 성공한 거 본 적 있나? 없다.
-허운나=스타트업에도 기업가 정신이 필요하다. 기업가 정신은 뭐라고 생각하는지.
▲이석채=사실은 제가 그런 기업가는 아니고 전문 경영인이지만, 기업가는 어떻게 보면 불가능에 도전하고 엄청난 위험을 안는 사람이다. 최악의 경우에도 나는 살아남는다, 일어날 수 있다는 집념과 끈기를 가져야 한다. 남이 하는 걸 따라가도 안 된다. 불가능한 걸 해낼 수 있는 사람들이어야 한다.
-허운나=스타트업 기업가 입장에서는 가장 어려운 숙제가 자금 문제라고 생각된다.
▲이석채=예전에는 벤처기업이라고 하면서도 남의 돈 빌리거나 투자 파트너로 쓰면 내 기업 뺏긴다는 생각 때문에 그걸 피했다. 가급적 빌리려고 했고 창업투자사도 투자하면 다 날리니까 투자 보다는 대출을 해줬는데 요즘 젊은 투자자는 엔젤 파트너 데려와서 투자하고 지분 줄이고 또 다른데서 돈 가져오고 하는 방법을 배운 것 같다. 이대로 간다면 지금처럼 대기업이 “괜찮네, 사람 빼와” 같은 짓만 안 한다면 성공 가능성이 전보다 많이 높아졌다고 생각한다. 정부가 무슨 융자금 할당한다든지 해서 될 건 아니다. 그 대신 창업자도 `지분이 1%밖에 없어도 내가 없으면 안 되니까 나를 믿고 맡길 것이다`라는 자신감을 가지고 지분이 적어져도 지분 가치가 높아져서 억만장자가 되는 긍정적인 사이클을 우리 사회에 정착시키면 해결 될 일이다. 실제로 세계적으로 돈이 넘친다. 투자할 데 찾아서 난리다.
-허운나=긍정적인 에너지를 많이 강조해주셨는데, 창업가에게 멘토 입장에서 충고한다면.
▲이석채=기술자는 많은 경우에 쓰는 사람 입장을 생각하지 않고 자기가 가진 기술 입장에서 생각한다. 아무리 좋은 기술이라도 쓰는 사람 생각 안 하면 실패하기 마련이다. 좋은 아이디어 있어도 이게 정제돼야 하고 필요할 때는 남의 아이디어와 시장의 조력이 필요하다. 글로벌에 대한 생각도 해야 한다. 세계 시장을 염두에 두지 않으면 절대 안 된다.
-허운나=우리 사회에서 스타트업이 갖는 의미가 무엇인가.
▲이석채=한국은 인구 문제 폭탄을 안고 있다. 이를 풀지도 못하고 스타트업이라는 새로운 주제를 완전히 활성화시키지 못한다면 한국은 갈등 구조에 말려들어갈 것이다. 갈등이 있으면 아무리 좋은 여건, 자원, 인재를 갖고 있어도 내부 소모전 때문에 발전할 수 없다. 그걸 탈출할 수 있는 방법이 스타트업이다. 중국이라는 거대한 시장이 바로 옆에 있다. 중국이 우리에게 기회가 되려면 우리가 빠르게 아이디어를 기업화해서 진출하는 것이다.
-허운나=그러면 KT 역할은 무엇인가.
▲이석채=KT는 한국에서 스마트 시대를 열었다. 전에는 통신용으로만 쓰던 휴대폰이나 장치가 PC기능을 하는 것으로 바뀌었다. 세계가 24시간 연결되고 공유되고 생산되는 시대를 열었다. 전통 통신사업으로는 성공하기 쉽지 않다. PC기능을 성장 동력으로 활용해야 한다. 창업가 영역도 많지만 우리가 할 수 있는 것도 많다. 그 중에 하나가 콘텐츠와 미디어다. 우리가 직접 만드는 건 비효율적이다. 많은 사람이 우리 플랫폼으로 몰려오는 것도 재능을 필요로 한다. 전체적인 자세와 기업관, 세상을 보는 눈이 다 바뀌어야 한다. 어떤 전문영역에 대해서도 전문성을 갖춰야 하고 일하는 태도도 바꿔야 한다. 단 몇 백개 사업만 갖고도 모든 아이디어 수용할 수 있으려면 상당히 발상 전환이 있어야 한다. 네트워크 기반으로 하는 스마트 시대에 우리가 채우지 못하는 걸 채우려고 한다. 글로벌 전략도 외국 통신사, 주파수 사서 통신 서비스 하는 게 아니고 진화된 비즈니스 프로세스, 경영방법, 쇄신, 전략, 아이디어를 팔아서 우리 가치를 높일 것이다.
-허운나=외국 나갈 때 스타트업과 손잡고 해외로 진출할 수 있는 기회는 어떻게 보는지.
▲이석채=데이터 폭증 속도가 빨라 4세대 이동통신 `롱텀에벌루션(LTE)`로 진화하는 게 빨랐다. 경험을 일찍 했기 때문에 다른 나라도 필연적으로 우리 패턴 따라 올 것이다. 스타트업 기업의 협조가 필요하다. 엔써즈도 그렇고 유스트림 코리아도 그 중 하나다. 지금은 알려져 있지 않지만 어떤 젊은이가 “우리 이런 기술 개발했습니다”하는 게 나올 거다. 데이터 폭발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기업가들에게는 하나의 무대가 될 것이다. 그 무대 위에 어떤 플레이어가 나오면 우리가 그분들과 손잡고 세상으로 나가겠다.
정리=
허운나 이사장과 이석채 KT 회장의 대담 전문 내용은 `채널IT(스카이라이프 올레TV 2번, 22번)`에서 24일 오후9시 `9시 스페셜, 성공 스타트업을 말한다`에서 방송으로 만날 수 있습니다.
오은지기자 onz@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