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쇼핑몰에서 30만원에 산 프린터가 공공부문에는 14만원에 팔린다면….`
프린터 업계의 과도한 저가 공공 입찰 경쟁이 심화되고 있다. 원가를 밑도는 경쟁이 계속되면서 업계가 공멸할 수 있다는 우려까지 나오고 있다.
8일 업계에 따르면 최근 육군본부가 진행한 프린터 도입사업에서 신도리코가 제품 공급대상자로 선정됐다. 물량은 총 4800대(컬러 23대 포함)다. 신도리코는 육본의 예정가격인 14억원의 절반 이하 6억5000만원을 써내 공급 계약을 따냈다. 신도리코가 공급하는 제품(모델 A401)은 인터넷 최저가가 23만원 수준이다. 육본 계약은 프린터에 정품토너 1개(7만원)를 추가로 얹어주고 설치와 3년 무상수리까지 보장하는 내용이다. 업체가 단품 계약 시 프린터와 토너 하나를 추가하면 30만원에 팔아야할 제품을 공공부문에 14만원 이하에 공급하기로 한 것이다.
신도리코 관계자는 “자체개발 생산한 우수 제품의 경우 홍보차원에서 특판이 이뤄지기도 한다”고 말했다.
프린터 저가 입찰 경쟁은 이번만이 아니다. 업계에 따르면 경찰청과 국세청 등 지난해 하반기 진행된 프린터 공급에서도 정도 차이만 있을 뿐 공표가의 절반 수준에서 납품업체가 결정됐다.
업계 고위 관계자는 “도저히 원가를 맞출 수 없는 상황임에도, 수주를 따내려는 업체 간 경쟁이 `치열하다`는 수준을 넘었다. 한번 내려간 단가는 올라오지 않는다는 점에서 업계 공멸 우려가 있다”고 밝혔다.
저가 입찰이 늘고 있는 것은 업체 간 경쟁이 격화돼 왔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삼성·LG 등 국산 브랜드는 물론이고 HP와 캐논, 교세라미타 등 대부분 글로벌 브랜드가 다 들어와 있는 시장이다. 특히 공공시장은 대량 제품 공급이 가능하고 다른 사업에 실적(레퍼런스)으로 활용될 수 있다는 점에서 경쟁이 더 치열하다.
프린터 업체 한 영업담당자는 “프린터 자체는 싸게 공급하고 향후 토너로 이익을 보전하려는 시도도 있었지만 최근에는 공공기관들도 정품이 아닌 토너를 사용하는 일이 많아졌다”고 어려움을 토로했다.
문제는 앞으로도 개선될 기미가 뚜렷하지 않다는 점이다. 자정 노력에 대해서는 업체 대부분이 공감하지만 공급 입찰가를 조절하는 것은 자칫 `담합`으로 내몰릴 수 있다. 프린터 업체 간 `신사협정`은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얘기다.
공공부문이 합리적 물품 구매에 나서는 것도 대안으로 꼽힌다. 하지만 이마저도 쉽지 않다는 지적이다. 다른 기관에서 구매한 실적이 있는데 `합리적 가격`이라며 제품을 더 비싼 가격에 사는 것은 혈세 낭비로 보일 소지가 있다. 구매 담당자가 감사 대상이 될 수도 있는 사안이다.
유통업계 관계자는 “프린터업체들이 대량 공공 입찰에는 저가로 대응하면서 브랜드 가치를 올리고, 일반 소비자시장(B2C)에서만 폭리를 취하는 것은 아닌지 따져볼 필요가 있다”고 했다.
김승규기자 seung@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