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얘기다. 당시 사회 풍습에선 양반이 데리고 다니는 하인에게 밥상을 따로 차려주지 않았다. 이들은 주인이 물린 밥상을 받았다. `대궁밥`이다. 양반님네들은 밥을 남기는 것을 미덕으로 여겼다. 아무리 배가 고파도 밥그릇을 비우지 않았다. 밥에 반찬 국물을 묻히지도 않았다. 아랫사람을 위한 배려였다.
최근 정운찬 동반성장위원회 위원장이 의미심장한 말을 남기고 사퇴했다. 그는 “재벌들이 경제정의와 법을 무시하고 이익을 위해서라면 기업철학도 휴지통에 버리기를 서슴지 않는다”며 “그들은 동반성장을 말로만 외칠 뿐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지 고민조차 하지 않는다”고 일갈했다.
그룹 총수들이 줄줄이 나서 대·중소기업 간 상생협력과 동반성장을 외친 것이 불과 얼마 전 일이다. 정부까지 나서 `상생`을 사회·경제 이슈로 챙겨 왔다. 그런데, 총리 출신 위원장이 “대기업만을 위하는 전경련이 재탄생해야 한다”며 자리를 박차고 나왔다. 그만큼 심각하다는 얘기다.
대기업 횡포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지금도 대기업들이 연말 성과급 잔치를 벌이는 사이 중소기업은 구조조정 칼바람에 몸서리를 친다.
`상생(相生)`의 의미도 왜곡(歪曲)됐다. 일례로 통신사들은 다수의 협력업체를 두고 장비 규격을 통일하는 표준화를 관행처럼 강요한다. 포트폴리오와 협력업체 관리를 쉽게 하려는 꼼수다. 그러면서 협력업체들에 물량 나눠 먹기를 요구한다. 이들이 말하는 `상생`에는 대기업이 없다.
중소기업은 불만이 많다. 하지만 “대기업은 적선하듯 몇 푼 던져주는 것을 상생으로 안다”며 목소리를 높이다가도 이내 몸을 사린다. 혹여 하는 걱정에 `오프 더 레코드`를 요구한다. 아랫사람 역할을 해야 하는 을(乙)의 처지인 때문이다.
원래 `상생`의 개념은 목(木)-화(火)-토(土)-금(金)-수(水)로 이어지는 오행 생성 이치에서 비롯됐다. 거꾸로 배열하면 바로 `상극(相剋)` 관계가 된다. 지금처럼 대기업이 중소기업의 상극으로 남아서는 곤란하다. 대궁밥을 물려주면서도 예의를 다했던 옛사람의 덕목이 지금은 대기업에 필요한 때다.
김순기기자 soonkkim@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