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씨앤에스테크놀로지 창업자가 해임되고 검찰 고소까지 당한 일이 보도된 후 기자에게 동종업계 CEO의 전화가 이어졌다. 자초지종을 묻기도 하고 반도체설계전문회사(팹리스) 현실에 대한 안타까움을 토로했다. 그럴 만도 했다.
씨앤에스는 한국에 팹리스라는 업종을 개척한 1세대 기업 중 하나다. 대부분의 1세대는 업종을 아예 변경하거나 문을 닫는 동안 그나마 팹리스 1세대의 명맥을 이어간 회사다. 사건에 대한 잘잘못을 떠나 동종업계 CEO들의 한숨이 묻어나올 만 했다.
1세대 팹리스가 탄생한 후 20년이 다 됐다. 시스템반도체(비메모리)산업의 기둥이 될 것이란 기대를 짊어졌던 팹리스지만, 아직까지는 이렇다 할 성과가 없다. 20년 동안 구호로 외쳤던 매출 1조원대 기업은 아직도 나오지 않았다. 수천억원 매출을 올렸던 기업이 꺾이는 것은 한순간이었다.
이유는 여러 가지다.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고객 다변화의 길을 열어주지 않는 국내 대기업 관행, 우수 인재의 중소기업 기피, 투자를 비롯한 생태계 부 등. 난관만 봐서는 길이 보이지 않는다. 시스템반도체 강국의 길도 요원해 보인다.
하지만 다행인 것은 끊임없는 변화다. 지금도 한국 팹리스의 순위는 요동치고 있다. 수천억원 매출을 올렸던 기업이 한순간에 반 토막 매출이 되기도 했지만 또 한편으로 신생기업의 괄목할 만한 성장에 놀라기도 했다. 더 크지 못하고 주저앉는 기업에 좌절도 하지만, 분명한 것은 그 역경을 극복하고 성장하는 기업이 눈에 띈다는 것이다.
언론에도 매출이 급감했다가 다시 성장세에 올라탄 팹리스의 드라마틱한 성장사가 자주 등장하고 있다. 더욱 낙관할 만한 일은 팹리스가 역경을 극복할 수 있었던 노하우를 공유하기 위해 서로 협력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환경이 크게 바뀐 것은 없다. 부침이 많았던 것은 사실이지만 20년 동안의 역사를 통해 체력을 키우고 키웠다. 팹리스를 바라보는 기대도 여전히 존재한다. 역경을 극복한 기업이 보여주듯 명심할 점은 아직도 희망이 있다는 것이다.
문보경기자 okmu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