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업계의 최근 화두는 `쾌속정`이다. 세계 메모리 반도체 1위인 삼성전자에서 메모리 사업을 총괄하는 전동수 사장이 쾌속정론(論)을 밝힌 지난해 말부터 회자되고 있다.
쾌속의 기본 속성은 속도다. 이를 선박에 붙이면 `방향 전환`이 추가된다. 전 사장이 내세운 쾌속정은 변화무쌍한 시장 변화에 맞춰 신속하게 사업 방향을 전환해야한다는 뜻을 담고 있다.
반도체 업계 수장들은 최근 `불확실성`을 내세우면서 시장 예측이 어렵다고 하소연한다. 극심한 반도체 불경기를 겪었던 지난해 나온 예상치는 매번 어긋났다. 올해 들어서는 6개월 앞도 안 보인다며 말을 아낀다. 수년 앞을 내다보고 기술 개발과 시설 투자를 해온 반도체 업계에서는 생소한 풍경이다.
시장 변화는 소비자 수요 변동과 동의어다. 메모리 반도체의 절대 수요를 차지하던 PC가 가라앉고 모바일이 그 자리를 차지하면서 변화가 극심해졌다. 수요가 스마트폰에서 스마트패드로 확대되며 PC 진영에서는 울트라북을 앞세워 판세 역전을 노린다. 소비자들의 어떤 품목에 지갑을 열지 오리무중이다.
수요를 미리 예측하고 준비해야하는 부품 업계 속성상 롤러코스트같은 시장 변화는 가장 큰 난제다. 그 해법으로 등장한 것이 쾌속정론이다. 항공모함으로 비유되던 반도체 업계가 쾌속정으로 변신하려면 단기전에 능한 체질로 바꿔야한다. 방향키를 빠르게 바꿔야하는 선장들의 역할은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해졌다. 반도체 소자 업체들의 방향키는 소재, 장비 등으로 수직 계열화한 반도체 산업 전체에 미치는 영향은 절대적이다.
시장 변화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 대만 반도체 기업들이 연달아 추락하고 일본 대표적인 메모리 반도체 기업인 엘피다가 파산 보호를 신청한 이후 각국의 반도체 생태계 자체가 흔들린다. 일본 반도체 장비 업계나 소재 업체들이 국내 진출을 서두르는 것도 이 때문이다.
경쟁 기업들이 무너졌다고 해서 국내 반도체 업계가 안심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이제 상대는 시장 변화다. 반도체 산업계 생존 여부를 판가름짓는 승부는 이제부터다.
서동규기자 dkseo@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