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전, 50만 가구는 '구형 AMI' 그냥 써라?

전국 50만가구가 양방향 통신이 안 되는 구형 원격검침인프라(AMI)를 15년 동안 그대로 사용해야 할 전망이다. 구형 AMI는 향후 제공되는 다양한 서비스에는 제한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7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한국전력은 2010년 50만가구에 보급·설치한 PLC 모뎀을 법정 수명기간인 15년 동안 교체하지 않을 방침이다.

정부 보급사업은 2020년까지 저압수용가(1800만호)에 AMI를 보급하기 위해 한전 주도로 2010년부터 10년간 총 1조1367억원을 투입하는 대규모 사업이다. AMI는 전자식전력량계(스마트미터)와 전력선통신(PLC) 칩을 내장한 모뎀 간 양방향 통신으로 자동 검침뿐 아니라, 수요반응(DR)·실시간요금제 등 다양한 서비스를 지원할 수 있다. 정부는 지난 2000년부터 130억원 예산을 투입, 한전·한전KDN·젤라인 공동으로 PLC칩과 모뎀을 개발했다. 이후 2005~2008년까지 대전·대구·의정부·고성 등 7개 지역을 대상으로 시범사업을 진행했다. 본 사업 1차년도인 2010년에 200억원을 들여 50만가구에 AMI를 설치했지만 2차년도 사업은 기술부족 등의 문제로 돌연 취소하기도 했다. 지금까지 업계 추산 약 700억원이 소요됐다.

2010년에 보급한 AMI와 올해부터 보급할 AMI는 호환·상호운용성 확보가 불가능하다. 한전이 완벽하지 않은 성적서를 받은 제품을 정확한 확인 없이 사업에 참여시켰기 때문이다. 전기연구원 성능확인시험 과정에서 전체 144개 시험항목 중 119개만 통과한 PLC칩 모뎀을 장착한 AMI가 보급된 것으로 확인됐다. 구형 AMI에 적용한 PLC칩 모뎀은 시험항목이 누락돼 국가표준(KS X 4600-1)과 국제표준(ISO/IEC 12139)에 부합하지 않았다. 반면 올해부터 공급할 제품은 모두 만족한다.

AMI 업체 관계자는 “엉성한 시험성적서를 보고 사업자로 선정한 탓에 700억원에 달하는 예산이 낭비됐고 추후 교체 등 중복투자에 대한 피해는 결국 소비자 몫이 될 것”이라며 “구형 AMI는 현재 수준의 원격검침 기능에는 문제없지만 향후 스마트그리드 기술로 이뤄지는 다양한 서비스에는 제약이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전 관계자는 “모뎀을 전면 교체하지 않고 15년 동안 문제가 발생하거나, 신축 가정에 대해서만 일부 교체를 진행할 예정”이라며 “지금까지 수백억원의 연구비와 사업비를 투입했고 결국 다른 제품이 사업에 참여하지만 그 동안의 시행착오는 헛된 게 아니다”고 말했다. 앞으로 15년간 구형 모뎀 등을 재고보관하고 필요시에만 교체하겠다는 계획이다.

한전은 보급 사업을 전면 개편할 방침이다. 이르면 4월께 2012년 보급사업을 발표할 예정이다. 올해 사업은 파워챔프·크레너스가 PLC칩 공급업체로 참여한다. 또 형평성을 위해 PLC칩 외 국제표준을 만족하는 다른 무선 방식도 사업에 채택할 계획이다.


박태준기자 gaius@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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