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승정의 어울통신]중앙부처 공무원 이야기(1)

중앙부처 공무원인 사무관 A씨. 요즘 통 일할 맛이 안 난다. 열심히 일을 하거나, 하지 않거나 큰 차이가 없다는 생각 때문이다. 주사보를 거쳐 어렵사리 사무관에 올랐지만 희망이 없어졌다.

방송통신위원회 소속인 그는 열심히 일해 지역의 작은 우체국장으로 나가는 이른바 `금의환향`을 꿈꿨다. 행정고시는 아니지만 수백대 1의 경쟁률을 뚫고 공무원 대열에 진입한 만큼 자신의 능력을 믿고 있다.

업무에 따라서는 고시 출신보다 창의적이고 상큼한 역량을 발휘한다. 주위 동료와 상사로부터 칭찬도 가끔 듣는다. 고시 통과 여부와 업무 능력의 차이는 별개라고 믿는 이유다.

하지만 희망은 산산조각이 났다. 갑자기 우체국을 관장하는 우정사업본부가 지식경제부 소관으로 바뀌면서 목표가 사라져버린 탓이다.

자신뿐만이 아니다. 주사보인 자신의 동료 후배도 별반 다르지 않다. 이전 같으면 산하기관과 공조해 연구결과물 수 십 개는 족히 해냈으련만 그렇게 닥달할 마음이 없어졌다.

중앙부처 공무원들의 의욕이 크게 줄었다. A 씨가 속한 방통위 뿐만이 아니라 행안부, 문화부 소속 공무원들도 크게 다르지 않다.

일한 만큼 대우 받는다는 인식이 줄었다. 그보다는 무사안일이거나 윗선에 잘 보이는 게 낫다는 인식이 퍼져 있다. 윗사람이 귀찮아할(?) 창의적인 일을 굳이 할 필요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윗선부터 낙하산으로 자리가 채워지다 보니 업무 파악이 안 된 상태에서 보여주기식 한 건 주의에 매몰되는 경우를 종종 봐왔던 터다. 장기적인 로드맵이나 국가발전에 대한 소명의식도 옅어졌다.

고위 공무원 또한 의욕이 없기는 마찬가지다. 이해관계 집단에 휘둘리기 일쑤고 민원이라도 들어올라 치면 골치 아픈 일이 한 두 가지가 아니다.

고위 공무원 B 씨는 요즘 좌불안석이다. 민원이 들어간 다음부터 수차례 의혹의 눈초리와 감사 청구 위협도 신경 쓰인다. 사업자 경쟁과 이해다툼에 규제기관 공무원의 처신이 쉽지 않다.

퇴직 이후를 생각하면 더 괴롭다. 퇴직 시기가 4~5년 가량 앞당겨진 반면, 결혼 연령이 늦어지면서 자녀 교육은 아직도 진행형이다.

산하기관이 적은 행안부 공무원도 퇴직 이후 나갈 자리가 별로 없고, 문화부 역시 마찬가지다. 사정이 좀 낫다고 하는 지경부 역시 퇴직 시기가 앞당겨지면서 인생 이모작, 삼모작이 최대 관심거리다.

그런데 현실은 그게 아니다. 퇴직 이후가 아니라 현재 살아남는 게 문제다. 당장 `사오정`도 남의 일이 아닌데 인생 이모작이니, 삼모작이니 하는 얘기들은 사치에 불과할 뿐이다.

국가 동량(棟樑)인 중앙부처 공무원들이 흔들리고 있다. 나라일을 한다는 자긍심이 있기는 하지만 미래에 대한 불안이 엄습하면서 눈을 외부로 돌리는 일이 많아졌다.

국가 조직의 근간인 중앙부처 공무원이 흔들리면 국가 경영에 심대한 타격이 불가피하다. 국가 조직의 생산성과 효율성을 기할 수 없다는 얘기다.

누구를 편들자는 게 아니다. 있는 그대로 보자는 거다. 현재의 변화 트렌드를 거부하자는 것도 아니다. 그들이 안심하고 소신 있게 일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정부 조직의 근본적 재설계가 필요하다는 얘기다. 지금처럼 조직을 이리 저리 떼어 붙이는 식으로는 문제점을 해결할 수 없다. 오히려 자리다툼에 부처이기주의만 키울 수 있다. 다가오는 총선과 대선, 중앙부처 조직 재설계와 구성 및 운영의 현실적 묘안이 필요한 시기다.


박승정 통신방송산업부 부국장 sjpark@etnews.com

브랜드 뉴스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