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단상]통신설비 제공 규제강화 타당한가

세명대학교 국제통상학과 권오성 교수 kwonos@hanmail.net

방송통신위원회가 KT 설비 제공범위를 확대하는 내용의 제도 개정을 추진하면서 통신 시장이 시끄럽다. 개정안에 포함된 설비란 관로·전주·광케이블 등이다. 관로는 통신케이블이 지나가는 길이고 전주는 통신용 전봇대다. 광케이블은 동케이블 약점을 보완해 원거리 전송에도 속도가 줄지 않도록 개발된 통신케이블이다.

Photo Image

방통위는 통신서비스 제공에 이들 관로, 전주, 광케이블이 필수설비고, 필수설비를 많이 보유한 KT가 SK브로드밴드·LG유플러스 등 다른 사업자에게 필수설비 제공을 더욱 확대해야 한다는 취지로 제도 개정을 추진 중이다. 규제완화가 아니라 특정사업자에 대해 규제를 강화하는 것이다. 무리하게 추진하기 보다는 반드시 타당성을 꼼꼼히 따져봐야 한다.

해외에서는 통신설비제공 제도가 어떻게 운용되는지 확인할 필요가 있다. 1996년 미국은 전주, 관로를 보유한 모든 사업자에게 설비제공 의무를 부과했다. 그러나 광케이블은 차세대망 투자 촉진을 위해 2003년 설비제공의무 대상에서 제외했다. 천문학적 투자가 필요한 광케이블 구축을 정부가 독려해 놓고 구축 후에 타 사업자에게 제공하라고 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유럽에서는 통신시장 경쟁상황을 평가해 매출액 50%가 넘는 시장지배적 사업자에게 통신설비 제공을 의무화했다. 하지만 특정 시장지배적 사업자에게 부과하는 규제는 완화하는 추세다. 영국·포르투갈·아일랜드 등은 설비투자 활성화 촉진을 위해 의무제공 설비에서 광케이블을 제외했다.

설비제공 규제 당위성을 가늠하기 위해 국내 통신시장의 경쟁상황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전기통신법에 따라 정부는 전기통신사업의 효율적인 경쟁체계 구축과 공정한 경쟁환경 조성을 위해 매년 기간통신사업에 대한 경쟁상황 평가를 실시한다. 2010년도 경쟁상황 평가를 보면 설비제공과 가장 관련성이 큰 전용회선 시장의 경우 경쟁제한성이 없는 유효경쟁시장 즉, 경쟁이 활성화된 시장으로 평가했다. 전체 전용회선 매출액기준 시장점유율 면에서 1, 2위 사업자인 KT(39.3%)와 LG유플러스(35.1%)는 불과 4.2% 차이인 데다 국내 전용회선을 제외하고 국제 전용회선 시장과 인터넷 전용회선 시장에서는 LG가 1위 사업자라는 게 골자다.

경쟁상황 평가 시 시장점유율과 함께 경쟁(진입)제약 유무도 중요한 변수다. 전용회선 시장은 KT 외에도 다수 사업자 필수설비 보유 증가 추세로 인해 경쟁 제약도 없다는 경쟁상황평가 결과가 나왔다.

해외 사례와 국내 시장 상황 등을 고려하면 이번 고시개정은 타당성 검증을 철저히 해야 한다. 통신시장 경쟁 활성화라는 규제 목적이 달성됐음에도 규제를 강화하는 것은 정책 신뢰성에 우려를 자아낼 수 있다. 규제하려는 특정사업자가 공기업이 아닌 민간기업이라면 대상 사업자와 협력업체뿐 아니라 일반 주주도 이해관계자여서 사적재산권 침해라는 점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고시개정으로 설비투자가 위축되면 글로벌 재정위기로 냉각된 국내 경제상황을 더욱 어렵게 만들지 않을까 걱정된다. 투자가 줄면 경제위기 심화와 사회 갈등을 야기하고 동반성장에도 걸림돌이 될 수 있다. 정부정책 신뢰성, 투자 위축, 국민경제에 미치는 영향 등을 고려해 성급한 제도 개정보다는 충분한 시간을 갖고 다양한 대안을 고민해야 한다.

투자위축 등 부정적 파급효과가 우려되므로 제도개정 보다는 우선 제도 운영상 문제점 개선에 주력할 필요가 있다. 사전규제를 완화하고 사후규제로 전환하는 것이 규제 트렌드다. 경쟁이 진척된 상황에서 규제를 강화하는 것은 경쟁정책에 역행하는 것이다.

경쟁정책에 순응하는 제도 개선방안으로 대등한 경쟁력을 갖춘 통신3사끼리 자율협의로 설비를 제공하고, 중소통신업체에 통신3사 모두를 필수설비 의무제공사업자로 지정해 설비제공을 활성화하는 방안도 고려해 볼 필요가 있다. 이해관계자의 다양한 의견을 수렴해 신중하게 정책을 검토하고 결정하길 기대한다.


브랜드 뉴스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