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말기는 국내 MVNO 사업자가 안고 있는 치명적인 아킬레스건이다.
단말기는 국내 이동통신 가입자가 서비스를 선택하는 주요 기준이다. 자신이 원하는 성능과 디자인을 갖춘 단말기 또는 자신이 원하는 가격대 단말기를 찾아 이동통신사를 바꾸기도 한다. 단말기가 단순한 하드웨어를 넘어 이동통신 서비스와 결합된 사실상 통신상품으로 자리매김한 것이 국내 시장의 현실이다.
이처럼 기존 이동통신사가 지닌 `서비스+단말기` 파워가 유효한 상황에서 단말기 라인업을 갖추기 힘든 MVNO는 생존하기 쉽지 않다는 게 한결같은 지적이다. 이미 포화된 시장에서 MNO와 경쟁해야 하는 MVNO로서는 단말기를 결합한 상품으로 가입자를 끌어안는 MNO를 따라잡기 어렵다.
현재 MNO는 서비스요금과 단말기 할부금을 결합한 형태로 가입자에게 판매한다. 기본 약정요금에 단말기 할부금이 더해지고 여기에서 요금할인이 차감된다.
단말기마다 출고가는 같지만 이통사나 판매점 요금할인 정책에 따라 단말기 할부금은 수시로 바뀐다. 단말기 구입 시에는 휴대폰 가격 자체가 `공짜`인 것처럼 설명 듣지만 실상은 요금에 직간접적으로 포함된다. 유통 구조를 잘 아는 소비자는 비교적 싼 값에 단말기를 구매하기도 하지만 잘 모르는 소비자는 이른바 `바가지`를 쓸 수도 있다.
단말기 할부 원금이 들쑥날쑥하는 이유는 복잡한 유통구조 탓이다. 제조사, 이통사, 판매점으로 이어지는 유통과정에서 단말기는 공식출고가와 비슷한 가격에 판매되기도 하고 대폭 할인된 가격에 팔리기도 한다. 누구는 비싸게, 누구는 싸게 사는 상황이 발생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단말기 할부 원금이 이통사와 판매점 정책에 따라 상이한데다 서비스요금과 결합되다보니 순수한 서비스 경쟁이 이뤄지기 힘든 상황이다. 소비자들이 통신요금과 품질만으로 서비스를 선택하는 것을 단말기가 가로막는 셈이다.
MVNO가 저렴한 요금을 앞세워 가입자 유치에 나서도 단말기와 결합된 상품을 지닌 MNO와 경쟁하기 어렵다. 반대로 자금력을 지닌 기존 MNO는 단말기 파워를 앞세워 시장 지배력을 유지해나갈 수 있다.
지난해 휴대폰 가격표시제가 시행됐고, 5월 이후 블랙리스트 제도가 시행될 예정이지만 서비스 약정에 따라 단말기 판매가격이 차등 적용되는 현 제도상에서는 실효를 거두기 힘들 것으로 우려된다.
MVNO업계는 MNO와 MVNO 간 경쟁을 서비스 중심으로 전환하기 위해 서비스와 단말기 요금 정책을 분리하도록 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월정액제 약정요금제 상에서 또다 요금할인을 제공하는 추가요금할인을 금지하고, 약정요금제에 따라 단말판매가격을 차등 적용하는 것도 막아야 한다는 지적이다.
MVNO업계 관계자는 “서비스요금과 단말금액을 완전히 분리해 판매하면 MVNO가 서비스에 기반한 본연의 경쟁에 충실할 수 있다”며 “유통 구조를 모르는 소비자가 단말기 구매 시 불이익을 보는 것도 막을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호준기자 newlevel@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