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관의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 (SNS) 활용과 표현의 자유를 놓고 논란이 가열되고 있다.
페이스북에 대통령 비하 글을 올려 논란이 된 서기호 판사가 재임용에서 탈락한 가운데, 사법부 중립을 위해 법관의 SNS 사용을 제한해야 한다는 주장과 법관의 정치적 표현의 자유도 보호받아야 한다는 입장이 충돌하고 있다.
스마트폰 보급과 SNS 확산으로 공적 영역과 사적 영역 경계가 흐려지고, 개인적 의사 표현도 급속도로 퍼져나갈 수 있게 되면서 디지털 시대에 걸맞는 법관 가이드라인도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현직 판사들로 구성된 사법정보화연구회 주최로 10일 열린 `법원, 법관 그리고 소셜네트워크` 토론회서도 SNS 사용에 대한 법조계 내외의 고민이 쏟아졌다.
◇SNS는 사적 공간 아니다=SNS가 더 이상 사적 공간이 아니라는 점에는 대부분 의견이 일치했다. 작년말 현직 판사가 페이스북에 올린 FTA 발언이 논란이 됐을 때엔 `SNS는 사적 공간`이란 주장이 있었으나, 3개월 사이 상황이 바뀐 것. 최근 거듭된 논란 속에 SNS의 공적 성격이 더욱 명확히 드러났다는 평가다.
노동일 경희대 법대 교수는 “해외서도 SNS는 프라이버시를 주장할 수 없는 공개된 장소란 입장이 힘을 얻고 있다”며 “SNS를 제대로 이해해 뜻하지 않은 실수로 문제에 휘말리지 않게 하는 보호 수단으로 가이드라인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가이드라인 필요한가=법관 SNS 활용 가이드라인이 법관을 옥죄는 것이 아니라 법관을 보호하기 위한 자연스런 질서 유지 역할이라는 취지다. 하지만 가이드라인이 자칫 법관의 표현의 자유를 억누르는 수단이 될 것이란 우려도 있다.
류제성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 사무처장은 “법관 SNS 가이드라인은 법관 표현의 자유와 독립을 침해하지 않는 범위에서 제정돼야 하며 판사들의 자유로운 의견 개진을 통해 합의점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정치적 중립과 표현의 자유=법관이 SNS로 사회나 정치적 문제에 대한 입장을 밝힐 수 있는지도 논란이다. 인터넷 표현의 자유를 놓고 인터넷의 표현촉진 성격을 장려하는 입장과 역기능을 규제해야 한다는 입장이 대립하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여기에 법관의 특수한 신분에 대한 논란이 더해졌다.
이상원 서울대 법대 교수는 “충돌하는 여러 가치에 최종 판단을 하는 법관은 중립성과 공정성이 생명”이라며 “SNS는 중립성과 공정성을 잃을 위험을 초래한다”고 말했다. 최근 논란이 된 법관의 SNS 사용이 갈등의 조장자 역할을 했다는 반성이다.
류제성 사무처장은 “법관이 일체 의견 표명을 해선 안된다는 주장은 법관의 기본권을 침해하는 것”이라며 “법관이 공적 사안에 의견을 내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말했다.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은 공무원의 정치참여 제한이 아니라 권력에 의한 정치 동원 금지로 해석돼야 한다는 주장이다.
작년 페이스북에 한미 FTA를 비난하는 글을 올려 논란이 된 최은배 판사도 이날 행사에 청중으로 참여, 질의 응답 시간에 “가이드라인은 SNS 사용에 대한 정보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의미있겠으나 이를 법제화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본다”며 “정치적 표현의 자유 문제는 헌법적 문제로 SNS의 문제는 아니다”라고 말했다.
한세희기자 hah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