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칼럼] 방사선 관리 더 촘촘하게

지난해 3월 붕괴한 일본 후쿠시마 제1 원자력발전소에서 20㎞쯤 떨어진 가와우치에서 방사능에 노출된 지렁이가 잡혔다. 지렁이는 1㎏마다 방사성 세슘 2만베크렐(Bq)을 품고 있었다. 사람이 먹을 고기의 방사성 세슘 기준치가 1㎏당 500Bq이니 40배나 많다. 이 지렁이를 새가 좋아하고, 새를 좋아하는 동물이….

두렵다. `방사성 지렁이`는 이미 후쿠시마 제1 원전으로부터 20㎞ 이상 벗어났을 것이다. 이것 뿐인가. 지난해 후쿠시마현 12개 지역 농가에서 생산한 쌀에서도 1㎏마다 방사성 세슘이 100Bq이나 묻어 있었다.

더 먼 곳도 안전하지 않다. 후쿠시마 제1 원전으로부터 70㎞쯤 떨어진 니혼마쓰에 사는 중2 여학생의 피폭(방사)선량이 1.62밀리시버트(mSv)였다. 지난해 9월부터 11월까지 3개월 치 누적 피폭선량이다. 연간 일상생활 피폭 허용치가 1mSv인 것을 감안해 바꿔 헤아리면 6배 이상 노출됐다. 그것도 아파트 `실내`에서다. 250㎞ 떨어진 도쿄만 바다 밑바닥 진흙층의 12~26㎝ 아래에서도 방사성 세슘이 1㎡당 최대 1만8242Bq이나 섞여 있었다.

더 이상 후쿠시마 제1 원전으로부터 떨어진 거리에 안심할 수 없다. 한국도 마찬가지다. 동해와 현해탄이 방호벽 구실을 하지 못한다. 3·11 도호쿠 대지진과 원전 붕괴사고 뒤 한 달여 만에 방사성 세슘이 부산·대구·강릉·안동에서 검출됐다. 후쿠시마에서 태평양 쪽 바람과 해류를 타고 나간 방사성 물질이 지구를 돌아 한반도에 닿은 지도 오래다. 지난달 국내에 들어온 일본산 냉장 명태에서 또다시 방사성 세슘이 나왔다. 열세 번이나 반복된 터라 이젠 신경이 무뎌질 지경이다.

오염 원천은 여전하다. 지난달 27일 일본 정부(환경성)는 방사선량이 50mSv가 넘는 후쿠시마 원전 부근 지역 92㎢를 포기했다. 고농도 피폭지역인지라 아예 오염 제거작업을 중단하고 자연에 내맡겼다. 여의도의 11배쯤 되는 땅에 사람이 살 수 없게 됐고, 그 땅과 그 하늘 아래 방사성 물질이 이리저리 계속 퍼진다는 얘기다.

우리는 그럼 어떻게 하나. 보이지 않고 맡을 수 없는 불안을 고스란히 떠안아야 하는가. 아니, 일상생활 속 피폭 위험이 점점 커지는 현실을 제대로 인지하는 것부터 시작하자. 투명하게 밝히지 않아 의혹과 불안을 부추기기 일쑤였던 원자력 안전 행정 관행도 깨야 한다.

시민은 벌써 저만치 앞서 걷는다. 80만원짜리 방사선량 측정기를 들고 방사선을 방출하는 대형마트 진열대의 접시꽂이를 찾아냈다. 연간 방사능 노출 허용치의 15배를 뿜어내는 서울 월계동 주택가 도로를 발견하기도 했다. 행정기관의 부단한 노력이 요구된다. 주요 공항과 항만에 방사선 감지기를 세워 두거나 피폭 의심 제보지역에 달려가는 등 수동적 대응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생활 속 방사선을 능동적으로 더욱 촘촘히 관리할 체계를 만들라.


이은용 논설위원 eylee@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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