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2학년 현기(가명)는 방과 후 바로 동네 PC방으로 달려 가 게임에 접속한다. 미성년자지만 밤 10시가 넘어도 게임을 할 수 있다. `알바` 형과 친한 사이기 때문이다. 새벽까지 시간을 보내지만 누구도 타박한 적이 없다.
부모님은 현기가 초등학생 때 이혼했다. 이후 할머니 밑에서 지내 온 그는 “집에서 하기에 컴퓨터 사양이 낮아 주로 PC방에서 시간을 보낸다”며 “공부는 하기 싫고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말했다.
또래 친구들은 현기가 온라인 세상에 접속해 있는 동안 대부분 시간을 학원 혹은 학교에 있다. 그가 남들과 공유할 수 있는 세상은 오로지 게임이다. 대학생 형들과 오프라인 모임도 해 봤다. 형들은 막내인 현기를 귀여워했다. 신분을 속이고 같이 술을 먹은 적도 있다.
현기는 앞으로 어떤 미래를 가질지 상상해보지 못했다. 다만 한 가지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것은 게임과 거기서 만난 사람들이 현재 자신을 지탱해 주고 있다는 사실이다.
#초등학교 5학년 남자아이를 둔 김상현(가명)씨는 최근 아들과 같이 해본 게임중독 자가진단 결과에 충격을 받았다. 상현씨의 아들은 위험군에 속해 있었다.
맞벌이인 부부는 아들이 서너 살 때부터 탁아기관에 맡겨 키워왔다. 지금도 퇴근 이후에나 얼굴을 볼 뿐 대화가 많지 않다. 하지만 자식 교육이라면 남 못지않게 시켰다고 자부해 온 상현 씨는 도대체 아들이 어디서 게임을 하는지 의아해했다. 의문은 곧 풀렸다. 얼마 전 사 준 스마트폰이 문제였다. 데이터를 제한했지만 와이파이를 이용해 얼마든지 게임에 접속할 수 있었다.
상현씨는 견디다 못해 아이의 스마트폰을 빼앗았다. 아들이 볼멘 목소리로 외쳤다. “그럼 도대체 친구들하고 어디서 이야기하란 말이야!”
게임이 위험하다. 아니 아이들이 위험하다. 학교폭력 등 청소년 문제 원인으로 게임이 지목된다. 대통령까지 공해산업이라며 비판 대열에 합류했다.
과연 게임은 모든 문제의 원흉일까. 전문가들은 게임이 청소년들에게 일정 부분 부작용을 끼치고 있다는 사실을 부정하지 않는다. 이런 이유로 어떤 이들은 게임을 `마약`으로 규정하고 `저주` 퍼붓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마약은 이유 여하를 불문하고 복용자에게 악영향을 끼칠 수밖에 없다. 하지만 게임은 개인이 처한 환경에 따라 여러 모습으로 나타난다. 광기를 띤 마녀사냥을 넘어 더욱 입체적으로 그리고 사회적으로 게임의 영향력을 이해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한국정보화진흥원에 따르면 월소득 100만원 미만인 가정의 인터넷 중독률은 11.1%로, 500만원 이상인 가정(6.6%)보다 두 배 가까이 높다. 상대적으로 돌봄이 없는 차상위계층에서 게임에 깊게 빠질 가능성이 높다는 이야기다. 오히려 이들에게 게임은 문화 돌파구로 작용하는 면이 크다. 위에 언급한 사례 역시 돌봄이 없다는 면에서 크게 다르지 않다.
청소년 문제에서 게임은 일종의 `방아쇠`다. 누르면 상대에게 치명적인 위협을 가할 수 있는 무기가 될 수도 있지만 안전장치가 있으면 발사될 리 없고 총알이 없으면 무용지물이다. 게임이 최근 불거진 청소년 문제의 근본적 원인이 아니라는 이야기다.
현재 정부에서 시행 혹은 추진 중인 게임 규제가 핵심을 놓치고 있다는 불만이 많다. 현실적으로 게임을 청소년 문화 차원에서 이해해야 하는데도 단편적인 정책으로 이들을 더욱 깊은 음지로 내몰고 있다. `좀비` `중독자` 딱지를 붙이는 것도 서슴지 않는다.
당장 보수정당의 최고위원도 반대의견을 표시했다. 원희룡 새누리당 최고위원(@wonheeryong)은 최근 트위터에서 “학교폭력의 배후가 게임이라는 정부의 견해에 동의할 수 없다”며 “오히려 교육 자체, 사회관계의 삭막함, 겉도는 학생들에 대한 정부와 사회의 돌봄 부족이 직접 원인이지, 게임산업이나 문화에 원인을 돌리는 것은 책임전가이자 희생양 만들기”라고 의견을 밝혔다.
게임과몰입센터를 운영 중인 한덕현 중앙대 교수는 “가족끼리 의사소통만 잘 돼도 과몰입은 줄어들 수 있다”고 강조한다. 게임을 일상이 아닌 마약 따위로 접근할 때 과몰입의 해답을 찾기 힘들다는 설명이다.
김시소기자 siso@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