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라인]최시중의 4년 그리고 마지막 4분

 4분 남짓이었다. 27일 갑작스레 기자회견을 자청한 최시중 방송통신위원장은 ‘위원장직을 사직하며’라는 제목의 회견문을 읽는 것으로 간담회를 대신했다. 질의응답도 없었다. 준비한 사퇴 원고를 읽는 데 걸린 시간은 3분50초. 불과 4분가량이었다. 기자단에서 질문이 쏟아졌지만 최대한 말을 아꼈고 그대로 방통위를 떠났다.

 최 위원장은 2008년 3월 초에 내정돼 3월26일 정식으로 취임했다. 방통위 1기 3년 임기를 끝내고 2기 출범이후 지금까지 대략 3년 10개월을 광화문에서 보냈다. 얼추 4년이다. 고시 출신 관료를 제외하면 가장 오랜 시간 방통위와 함께 했다. ‘4년’ 동안의 위원장 시절을 감안하면 ‘사퇴의 변 4분’은 허망할 정도로 짧아 보인다. 이를 두고 여러 해석이 가능할 것이다. 최근 일련의 사태에 대한 실망과 분노이거나, 불필요한 오해를 차단하기 위한 정치적인 제스처일 수 있다. 아니면 정말 할 말이 없을 수도 있다. 본인 이야기대로 나머지는 상상에 맡길 수 밖에 없다.

 위원장은 그렇게 떠났다. 그러나 방통위는? 방통위 조직은 여전히 건재하다. 명성과 자부심에 생채기가 난 게 사실이지만 역할과 위상은 그대로다. 위원장만 자리를 내려놨을 뿐이다. 지난 4년 동안 방통위는 시쳇말로 한시도 조용할 날이 없었다. 되짚어 보면 당연했다. 명분과는 달리 실제로는 정치적인 입김과 요구에 따라 탄생했기 때문이다. 정책과 조직 자체 보다는 대통령의 ‘정치적 멘토’로 불리는 최시중이 항상 여론의 중심이었다. 출범 배경으로 밝힌 방송과 통신의 융합이라는 시대적 요청은 명분일 뿐이었다. 자연히 조직 고유의 목적인 국민과 산업을 위한 정책은 후순위일 수밖에 없었다. 여당과 야당 추천으로 구성된 합의제 형태 의사 결정기구는 국민보다는 정치권의 보이지 않는 목소리에 더 민감했다. 정책 기능을 상실한 방통위 평가는 이 때문에 이해 집단에 따라 극과 극을 달렸다. 방통위는 그렇게 외줄을 타는 심정으로 4년을 보냈다.

 늦었지만 지금은 시계추를 원점으로 돌려야 할 때다. 정치권과 위원장에 맞춰졌던 주파수를 재조정해야 한다. 방송통신을 포함한 IT는 대한민국의 미래를 그리는데 빼놓을 수 없는 산업이다. 미래 먹거리 대부분은 이곳에 달려 있다. 성장 중심축이 소프트파워로 넘어가는 시점에 제대로된 정책 철학하나 없다면 국가적으로도 엄청난 손실이다.

 그래서 방통위는 다음 정권 출범 전까지 앞으로 1년이 중요하다. 대대로 정권 말기는 차기 정부 준비와 레임 덕까지 겹쳐 정책은 ‘올 스톱’이고 공무원은 ‘복지부동’이다. 그러나 방통위는 달라야 한다. 앞으로 1년이 어느 때보다 소중하다. 과거 경험을 반면교사로 대한민국 방송통신의 새로운 밑그림을 준비해야 한다. 방통위는 지금이 위기지만 오히려 기회다. 4년이 지난 지금 늦어 보일 수 있다. 그러나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빠른 법이다.

 


강병준기자 bjkang@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