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통신·네트워크 장비 업계 인력난이 심각하다. 특히 중견업체 이하에서 핵심 엔지니어들이 지속적으로 이탈하는 ‘엑소더스’에 따른 전문성 상실 우려가 크다.
네트워크 업계는 최근 1~2년 사이 ‘에이스’ 즉 전문가가 빠진 빈자리를 못 채우는 현상이 급격히 심해졌다.
업계 경기가 꾸준히 하향곡선을 그리며 질 높은 인재를 품기에 여건이 나빠진 데다 스마트폰 등 통신환경 변화로 대기업이 관련 전문 인력 채용을 늘리고 있기 때문이다.
이상근 유비쿼스 사장은 “지금 중견·중소기업 현장 에이스는 대부분 40대"라며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활동하는 전문가층이 같아 이를테면 허리가 실종된 것과 같은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면서 인력 편중 심각성도 지적했다.
중소기업 전문가 이탈은 상대적으로 열악한 대우 탓이 크다. 통신환경 진화에 따른 수혜가 대기업 아래로는 전해지지 않기 때문이다. 중소기업을 떠난 30대 초중반 젊은 인력이 주로 KT 등 통신사나 삼성전자 등 대기업으로 이동했다는 점은 이를 증명한다.
대표적인 중견 네트워크 업체 A기업은 최근 사옥을 이전하며 스포츠센터, 사우나, 보육시설 등에 투자를 단행했다. 사내 복지를 늘려 직원 사기를 고양하기 위해서다.
회사 관계자는 “신규 인력을 채용하는 것도 문제지만 핵심 경력자가 대기업으로 빠지는 것도 큰 고민”이라며 “복지에 힘을 써도 1.5배 이상 차이나는 연봉 격차 때문에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고급 인력이 증권가, 특허법인 등으로 아예 전직을 시도하는 경우도 늘었다. 명문대를 졸업하고 중견 네트워크 업체 엔지니어로 일하던 B(35세)씨는 최근 여의도로 자리를 옮겼다. 증권사에서 전보다 갑절 가까이 오른 연봉을 받으며 전문지식을 활용해 기업분석을 한다.
다니던 회사를 정리하고 변리사 시험을 준비 중인 C(32세)씨는 “대학원까지 마쳤지만 비전이 없었다”며 “주변에 2~3년 더 공부하는 셈 치더라도 더 비전있는 기업에 들어가겠다는 사람이 많다”고 말했다.
중계기 업계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올해를 기점으로 통신사들이 WCDMA 등 2·3세대(G) 기술 투자를 꺾으면 스몰셀 등 새로운 제품으로 활로를 뚫어야 하지만 이를 담당할 경력 엔지니어 풀이 풍부하지 않다. 개발이 크게 어렵지 않아 적은 투자로도 성과를 볼 수 있지만 인력이 없어 진행에 어려움을 겪는 사업체도 있다.
중계기 업체 임원은 “마땅한 해결책을 못 찾은 일부 업체가 유통 등 신사업으로 눈을 돌리며 그나마 있던 경력 인원도 등을 돌리는 경우가 비일비재”라고 우려를 표시했다.
인력난은 곧 시장 경쟁력 저하로 이어지기 때문에 정부와 산·학이 근본적인 대책을 찾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김준혁 한국지능통신기업협회 사무국장은 “대학과 업체가 연계해 학생 때부터 실무 중심으로 교육 커리큘럼을 진행해야 한다”며 “신규 인력을 미리 훈련시켜 산업에 지속적으로 투입하면 인력난이 다소 해결될 것”이라고 말했다. 수도권 업체는 우수한 자원이 있는 지방 거점대학을 중심으로 산학 연계를 진행하는 것도 해결책이다.
보다 근본적인 처방은 정부 정책에 있다. 대기업과 통신사 위주 생태계로는 이 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어렵다. 일명 ‘가격 후려치기’ 등 병폐를 개선해 산업 여건을 개선시키고 정부차원 R&D 투자를 늘려 중견·중소업체가 장기적으로 비전을 가질 수 있게 해줘야 한다는 주장이다.
네트워크 업계 전문가는 “인력 문제는 산업 경쟁력과 직결되는 요소”라며 “뿌리가 되는 중견·중소업체가 전문성을 상실하면 결국 통신시장 질 하락을 가져올 수밖에 없다”고 우려를 표명했다.
김시소기자 siso@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