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각·청각·촉각·미각·후각 등 오감을 자극하는 사람 중심 소재부품 개발을 위해 ‘감성소재부품연구센터’를 올해 설립할 것입니다. 이 센터는 감성 기초 연구, 감성소재 물성 정보 등을 제공해 경쟁이 치열한 글로벌 시장에서 중소·중견기업의 제품 경쟁력이 한발 앞서 나가는 데 기여할 것입니다.”
김용근 한국산업기술진흥원(KIAT) 원장은 “감성과 예술이 어우러진 R&D 문화 대중화에 힘을 쏟겠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 2009년 KIAT 취임부터 조만간 R&D 3.0 시대가 도래할 것으로 예견하고 목소리를 높이며 대응 준비를 착실히 진행해왔다. R&D 3.0이란 기술, 인문, 예술, 창의력, 개방 등 다양한 요소를 융합한 창의선도형 R&D를 일컫는다.
그는 “지난 2년 동안 정부 R&D사업 프로세스에 R&D 3.0 개념을 심는 데 집중했다면 올해는 새싹을 틔우는 게 핵심 목표”라고 말했다. 그 새싹이 꽃을 피우면 무역 2조달러 시대도 자연스럽게 열릴 것으로 기대했다.
그는 KIAT가 정부가 제시하는 방향에 따라 예산을 받아 움직이는 수탁기관 신분이지만 소재부품비전2020 등 지경부 정책기획 최고 파트너로서 입지를 확실하게 다진 것으로 자부했다.
-지난해 R&D 3.0를 부쩍 강조하셨는데 올해는 어떤 점을 강조할 계획인지요.
▲새해에는 정부 R&D사업에 도입한 R&D 3.0 개념을 내재화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고 있습니다. 자동차 기어 속도를 갑자기 높이면 차량 엔진에 무리를 주는 것처럼 R&D 3.0을 과도하게 시행하면 역효과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올해 R&D 3.0을 전파하기 시작했다는 점에서 R&D 3.1 를 내세우고 싶습니다.
-R&D 3.0을 해외로 확대할 계획은 있는지요.
▲당연히 있습니다. 해외기관과 R&D 3.0 협력을 더 많이 할 계획입니다. KOTRA와 함께 잘해왔지만 더 많은 노력을 기울일 예정입니다. 기술 협력이 잘 되면 무역 투자는 뒤따라오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솔직히 말해 무역 투자보다 기술 협력이 더 어렵습니다. 상품은 보이지만 기술은 보이지 않기 때문에 글로벌 기술 협력이 양자 간에 원할하게 이뤄지기 위해선 긴밀하고 오랜 시간을 필요로 합니다. KORA·연구개발 전문기관과 공동으로 국내 중소·중견기업 기술과 선진 기술을 연계할 수 있는 글로벌 공동 R&D 과제를 찾아볼 계획입니다.
-기술과 감성이 결합한 R&D 3.0 문화 확산을 위해 민관에 제안하실 게 있다면.
▲다섯 가지를 제안하고 싶습니다. 우선 기업이 독자적으로 연구하기 어려운 오감 기초 연구를 수행하고 연구성과를 기업에 확산하는 전문 출연기관 설립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예술가·문화활동가가 이공계 대학과 연구소에서 창의적 작품 활동을 함으로써 연구인력 창의성을 일깨우는 한국형 MIT미디어랩 설치도 고려해 볼 만합니다.
문화적으로 소외된 공업단지를 문화와 예술이 공존하는 공간으로 전환, 근로자 삶의 질을 높일 필요가 있습니다. 기업이 1사 1문예제를 도입하면 임직원의 감성을 자극함으로써 창의적 능력 개발에도 도움이 될 것입니다. 끝으로 전통 기술 장인과 첨단 기술 엔지니어가 서로 소통하고 교류하는 장을 만들어 안경·신발 등 기존 성숙 산업에 새로운 성장동력을 안겨다 줄 수 있습니다.
이러한 R&D 3.0 문화가 우리 사회와 기업 전반에 널리 퍼진다면 정부 R&D과제 책임자가 공학계 출신이 아닌 디자인계 출신에서 나오는 것도 충분히 가능하다고 봅니다.
-올해 R&D 3.0 개념에 걸맞은 정부 과제 평가 방식에 어떤 변화가 있는지요.
▲수요 기관의 R&D 제안 과제를 평가할 때 사전준비성 항목을 추가했습니다. 내부에서 충분하게 토의 과정을 거치지 않고 제출한 과제는 평가 과정에서 점수가 나빠지게 되기 때문에 과제를 졸속으로 작성·제출하는 수요기관의 습성이 사라질 것으로 기대합니다.
공공성이 크면서 실패 확률이 높은 대형 개발 과제에 참여한 수요기관에 가점을 줄 예정입니다. 대신 R&D과제를 얼마나 성실하게 수행했는지를 엄격하고 공정하게 평가하는 방식을 도입할 것입니다. 단순히 개발 과제 성공 여부를 평가하기보다는 개발 과제가 지닌 가치와 수요기관 성실도에 중점을 둠으로써 기업이 보다 혁신적인 R&D에 도전하는 분위기를 조성하기 위해서입니다.
인문학자를 R&D과제 평가위원으로 정식 위촉하는 것도 고려하고 있습니다. 지난해 신뢰성 기반 사업 평가 때 모 철학교수를 시범삼아 평가위원으로 모셨는데 피평가자인 수요기관 반응이 좋았습니다. 수요기관 입장에서 엔지니어 시각이 아닌 인문학 시각으로 질문을 던지고 평가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던 거죠.
-올해 역점을 두고 계신 사업은 무엇인지요.
▲무역 2조달러 달성을 위한 중장기 산업 기술 방향을 연구할 것입니다. 지식경제 R&D 부문별 세부 정책 성과를 점검하고 경제, 사회, 산업, 환경에 대응하는 중장기 산업기술 정책 추진 방향을 제시할 계획입니다. 개방형 산업기술혁신 촉진방안, 국민편익 증진형 산업기술정책연구 등 산업기술 R&D 관련 주요 이슈별 정책연구를 추진합니다. 이를 통해 산업기술 패러다임 변화를 가속화할 것입니다.
산업기술박물관건립 추진 사업도 중요합니다. 산업기술박물관은 국민이 국가경제를 이끈 간판 산업기술의 역사와 가치를 한눈에 파악하는 체험장이 될 것 입니다. 오는 2월 건립준비위원회를 구성하고 예비타당성조사를 신청하는 등 산업기술박물관 산파 역할을 충실히 할 것입니다.
예술과 감성이 조화를 이룬 창의선도형 R&D 문화를 확산해 기업이 도전적인 R&D에 나서도록 할 계획입니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한국산업디자인진흥원 등 기관과 협력해 해당 기관 전문가들이 R&D과제 평가위원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할 것입니다. 인력 양성 프로그램도 문화예술 전문가에게 개방할 것입니다.
감성소재부품연구센터 설립을 위한 추진단을 구성해 센터 설립계획 및 운영방안을 수립하고 한마음 음악회, 영화감상, 예술작품관람 등 행사도 준비해 R&D 수행 인력 예술성과 감성을 키우고자 합니다.
-지식경제부 R&D 정책 추진 관련 조언을 하신다면.
▲그동안 지경부 R&D 정책은 현실성이 다소 떨어졌습니다. 정부는 사람이 아닌 사업에 중점을 두고 R&D 정책을 추진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사람 중심 특성을 지닌 SW산업은 제대로 지원을 받지 못했고 결국 선진국에 비해 경쟁력이 많이 뒤졌습니다.
기득권층인 CEO가 아니라 현장에 근무하는 연구 인력과 깊숙한 소통을 나누면 문제점을 해결할 수 있습니다. 그래야 살아있는 R&D 정책이 나옵니다. IT산업 해외 진출 지원을 위해선 지경부가 과 단위로 움직일 게 아니라 복수과가 동시 참여하는 패키지 프로젝트 방식을 선택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중소기업 입장에서 지원 효과도 크지 않고 파편적 지원에 머물 뿐입니다.
지식경제 R&D 자금을 기술인력 채용에 한정하는 것도 바람직스럽지 않습니다. 창의선도형 R&D 확산을 위해선 지경부가 인문·예술 능력을 갖춘 전문인력 채용도 허용해 기술과 인문·예술인력이 연구 현장에서 어울리는 토대를 마련해야 합니다.
-끝으로 KIAT 조직과 지난 성과를 평가하신다면.
▲KIAT는 정부 산하 공공기관 중 최고의 정책기획 역량을 보유한 조직이라고 생각합니다. 국민소득 4만달러 시대를 열기 위해선 산업기술 바탕위에 감성, 예술, 상상력을 얹어야 하는데 KIAT 직원들이 선도적으로 기술, 인문, 감성을 융합하는 개념과 방향으로 정부 정책을 지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지난해 월드클래스 300, 신성장동력펀드, 녹색인증제 등 사업화를 성공적으로 지원한 것도 성과라고 생각합니다. 향후 10년 소재부품산업 발전 방향과 전략을 담은 ‘소재부품 미래비전 2020’수립도 만족스럽습니다. 이밖에 5개 기관이 통합한 KIAT는 지난해 말 노사 단체협약을 체결, 성숙한 노사문화를 보여주기도 했습니다. ‘KIAT가 하면 확실히 다르다’는 이미지가 오래 가도록 노력할 것입니다.
<김용근 원장 프로필>
△출생 1956년 3월생
△학력 사항
-순천고
-서울대 경제학과
-서울대 행정대학원 행정학과(행정학 석사)
△경력 사항
-2009년~현재 산업기술진흥원 원장
-2008년 한국산업기술재단 이사장
-2007년 산업자원부 산업정책본부장
-2004년 주제네바 대표부참사관
-2003년 산업자원부 지역산업균형발전기획관
-2000년 산업자원부 산업정책과장
-1995년 통상산업부 통상무역실 국제기업담당관
-1985년 상공부 사무관
-1980년 총무처 사무관(행시 23회)
안수민기자 smah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