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정보통신부 시절에 나온 ‘IT 기술예측(Technology Foresight) 2020’을 보면 흥미로운 시나리오들이 등장한다. 당시 예측대로라면, 오는 2015년에는 첨단 IT가 우리 생활의 일부로 완벽하게 자리 잡는다. 가전기기는 가족의 건강상태를 감지해 집안의 온도, 습도를 자동으로 조절한다. 병원에서는 응급환자 신분을 홍채로 인식해 전국 병·의원에 저장된 진료기록을 확인할 수 있다. 마이크로 로봇이 심혈관 치료를 수행하는 등 의료용 로봇이 내·외과 수술을 맡는다. 학교는 가상현실시스템을 이용해 개구리 해부실험 등 과학실습을 실제와 동일하게 재현한다. 군인을 대체한 무인경계로봇이 위험한 곳에서 근무를 대신하고 소수 정예군은 시력과 청력을 향상시킨 디지털 군복을 착용한다.
기술예측에 따르면 PC와 게임기, TV 구분이 사라지고 모든 정보단말은 인터넷으로 연결된다. 이를 기반으로 웹사이트를 통해 냄새까지 전달해주는 전광(All-optical) 인터넷 환경이 구현된다. 네티즌은 미니홈피에 음악·아바타 대신 꽃향기로 장식하는 데 열을 올리고 인터넷으로 냄새를 선물하는 것이 새로운 문화로 자리 잡는다. 스마트TV에 신제품 피자광고가 나오면 피자 향기가 퍼지면서 구매를 유도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먼 미래 얘기가 아니다. 7년 전 ‘IT 기술예측’대로라면, 불과 3년 뒤 2015년에 현실화될 시나리오다.
시나리오는 미래에 있을 법한 여러 가지 상황을 가장 명료하게 보여준다. 미래 모습을 직접 그려봄으로써 상황에서 맞는 대응책을 찾을 수 있는 최적의 도구다. 가트너그룹, IDC 등 해외 유수 기관들이 매년 유망기술 예측 시나리오를 내놓는 것도 이 때문이다. 가트너는 해마다 1만2000∼1만3000개 유망기술 후보들을 대상으로 반복적인 전문가 인터뷰(델파이)를 통해 20∼30개 유망기술을 선정한다. 이렇게 선정한 기술은 신규기술, 성숙기술 등 5단계로 나뉘어 유망기술 ‘하이프 사이클(Hype Cycle)’이란 이름으로 발표된다.
시나리오를 통해 미래 세상을 예측하는 작업은 어제오늘의 얘기가 아니다. 지난 1910년에 독일 과학자들은 이미 ‘100년 후 예측하기 프로젝트’를 추진했다. 그 결과 이들은 100년 전에 사과만 한 딸기가 등장하고 전국에 극장이 생기며, 정신병자가 엄청나게 늘 것이라는 예측을 내놨다. 지난 1950년대 미국 군사기관에서 일하던 허먼 칸(Herman Kahn)도 ‘미래의 체험’이라는 저서에서 100가지를 예측했다. 이 중 95개가 맞았고 5개는 틀렸다. 현금자동지급기, 비디오레코드(VCR), 위성항법장치(GPS), 초고속 열차 등이 적중한 대표적인 사례다. 하지만 ‘효율적인 식욕 및 체중조절 기술로 누구나 원하는 체중을 가질 수 있다’거나, ‘인간도 휴식과 치료 목적으로 겨울잠을 잔다’ ‘모든 사람이 개인 비행기를 소유하게 될 것’ 등은 실패한 예측이 됐다.
미래는 누구도 정확히 예측하기 어렵다. IT 발전 속도가 빨라지면서 미래 예측은 더욱 불확실해졌다. 2012년, 세계 경제를 관통하는 키워드 역시 ‘불확실성’이다. 사람들은 미래 예측이 틀릴 수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앞으로 무슨 일이 일어날 지’ 궁금해 한다. 삶과 세상의 불확실성을 회피하고 싶은 본능 탓이다. 불확실하다는 것은 큰 공포감으로 다가오지만, 반드시 위험한 것은 아니다. 불확실성이 크면, 오히려 시나리오를 준비한 사람에게 그만큼 기회는 많아진다.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미래를 내다보는 상상력으로 비행기를 설계한 후, 500년이 지나서야 실제로 비행기가 만들어졌다. 언젠가 날아오를 시나리오를 가진 사람과 없는 사람, 그것은 정말 하늘과 땅 차이다.
주상돈 경제정책부 부국장 sdjoo@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