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적 고충 토로..제도적 뒷받침 시급
“이 장사 해보셨어요. 안 해 보셨으면서 왜 불가능한 일을 계속 시키는지 모르겠어요.”
“지금 상태로는 소비자가 쉽게 속을 수 있기 때문에 꼭 따라주셔야 합니다.”
9일 서울 광진구 테크노마트 6층. ‘휴대폰 가격표시제’ 현장을 점검하기 위해 지경부 일행이 매장을 방문하자 이 매장 사장은 점검반을 힐끗 쳐다보며 자리에서 일어나지도 않고 쏘아붙였다. 단속이 아니라 제도 정보를 알려주는 방식으로 ‘계도’ 차원에서 진행된 점검이었지만 상인 대부분 반응은 싸늘했다.
휴대폰 가격표시제는 올해 1월 1일부터 모든 휴대폰 판매점이 판매가격을 표시하도록 하는 제도다. 지식경제부와 서울시가 이날 공동으로 진행한 점검은 판매점 중에서도 가장 모범적이라고 평가받는 테크노마트를 첫 대상으로 했음에도 위반사례가 번번이 적발됐다. 판매상 대부분은 현실적으로 제도를 정확히 준수하기는 어렵다는 입장이다.
한 판매점 사장은 “하루에도 이동통신사 정책에 따라 두세 번씩 가격이 변경되는데 그때마다 가격표시 작업을 하려면 전담직원 한 명을 고용해야 할 정도”라며 “대기업 유통방식을 지적해야지 왜 영세한 판매점보고 뭐라 그러느냐”고 토로했다.
다른 판매점 직원은 “판매하진 않지만 매대를 채우기 위해 진열하는 ‘목업’이나 중고 단말기에 대해선 정확한 지침이 없고 거리 매장이나 인터넷쇼핑몰 먼저 단속할 일”이라고 지적했다.
실제로 테크노마트 250여개 휴대폰 매장 중 판매하는 단말기에 가격표시가 돼 있지 않거나 마이너스 가격을 표시해 둔 매장이 쉽게 눈에 띄었다. 정확히 제도 내용을 알지 못하는 이도 많았다. 일부는 “곧 준비하겠다”라고 하거나 “엑셀 파일을 돌리다보니 잘못 출력됐다”고 둘러대기도 했다. 정병철 테크노마트 6층 상우회장은 “계도를 강화해 시행률을 대폭 높이겠다”고 말했다.
점검반은 이들의 고충을 들어주면서 꾸준히 설명을 이어나갔다. 소비자가 현혹되기 쉬운 지금의 혼탁한 유통체계에 매스를 들어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하면서도 시행 형식에 있어 최대한 판매점이 융통성을 가질 수 있다고 조언했다. 오재철 지경부 정보통신산업과 사무관은 제도 안내책자를 판매상에게 나눠주며 “정부 방침은 이통사가 예를 든 형식이 아니라도 소비자가 단말기 가격정보를 명확히 읽어볼 수 있도록 하면 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통사마다 판매점 가격표시제 지원 정도도 조금씩 달랐다. 지난달 1일 직영점과 대리점에 가격표시제를 우선 시행하며 준비를 한 SK텔레콤은 이달 초 판매점에도 가격표시용 포맷을 배포했다. 이날 테크노마트에서도 SK텔레콤용 단말기 가격표시제 준수율이 가장 높았다. KT와 LG유플러스는 아직 판매점까지 배포가 이뤄지지 않아 준수율이 극히 낮았다. KT는 이달 16일 전국 판매점에 일제히 배포를 시작한다는 입장이다. LG유플러스는 지난달부터 배포를 시작했지만 아직 대부분 판매점이 받지 못한 상태다.
지경부 관계자는 “소비자가 통신비 할인요금과 구분된 정확한 휴대폰 구입가격을 알도록 개선하는 것이 변함없는 원칙”이라고 말했다. 다음주부터 휴대폰 가격표시제 단속은 각 판매점이 위치한 기초지자체에서 담당한다. 20일까지 이뤄지는 1차 점검 적발 시 시정요구, 2차 적발부터는 최대 500만원 과태료가 부과된다.
황태호기자 thhwang@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