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 8일 ‘국가 초고성능 컴퓨터 활용과 육성에 관한 법률(슈퍼컴퓨터 육성법)’이 발효된다. 2009년 9월 한나라당 정두언 의원이 발의한 지 2년여 만이다. 너무 늦었다는 지적도 있지만 국가가 슈퍼컴퓨터에 관심을 갖게 됐다는 것만으로도 큰 성과로 평가된다. 이를 계기로 우리나라의 슈퍼컴퓨터 현수준과 향후 발전방향에 대해 2회에 걸쳐 분석한다.
슈퍼컴퓨터를 정의하는 특별한 스팩이 있는 것은 아니다. 보통 컴퓨터에 비해 수천 배 이상 빠른 성능을 지닌 시스템을 의미한다. 한해에 두번 발표되는 톱500(Top500.org) 슈퍼컴퓨터 순위에서 한국은 단 3대만 이름을 올렸다. 무역 1조달러 달성, IT강대국이란 수식어에 걸맞지 않는 수준이다.
◇슈퍼컴은 국가 과학기술력 척도=슈퍼컴은 산업경쟁력 제고와 삶의 질 향상, 국가안보 강화, 과학기술 혁신 등 사회 전 분야 경쟁력을 높이는 중요한 도구로 평가된다. 미국 국가경쟁력 위원회는 국가 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8대 과제 중 하나로 ‘세계 최고의 슈퍼컴 역량’을 꼽았다. 미국뿐만 아니라 중국과 일본도 일찍부터 슈퍼컴의 중요성을 깨닫고 국가 차원에서 산업을 육성하고 있다.
슈퍼컴은 과학기술뿐만 아니라 항공우주, 자원탐사, 국방, 에너지, 기상 및 기후, 금융, 유통 등 여러 분야에 활용된다. 선진국에선 슈퍼컴을 활용해 굿이어 타이어, 핑 골프채, 월풀 냉장고를 설계할 정도로 일상생활에서 광범위하게 활용되고 있다.
시장조사업체 IDC에 따르면 세계 슈퍼컴 시장은 올해 8% 성장, 2015년엔 135억달러 규모를 형성을 것으로 전망된다. 슈퍼컴 강대국들은 2020년까지 지금보다 100배 이상 성능을 가진 엑사플롭(ExaFlop) 슈퍼컴 개발을 위해 민관 공동으로 개발이 한창이다. 물론 이를 실현하기 위해선 전력소모, 상호연결망, 메모리 및 입출력(I/O) 대역폭 등 하드웨어 부분과 알고리즘, 개발도구, 응용 프로그램 등 소프트웨어 부분에서 극복해야 할 과제가 적지 않다.
최신 톱500에서는 미국에 설치된 슈퍼컴 수가 전체 52.6%로 독보적 1위를 차지했다. 중국이 14.8%로 2위, 일본이 6%로 그 뒤를 이었다. 이 외에 영국과 프랑스, 독일, 캐나다, 러시아 등이 상위권을 지켰다. 한국은 점유율 기준 15위다.
◇투자와 인력 양성 동시에 진행돼야=이지수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KISTI) 슈퍼컴퓨팅본부장은 국내 슈퍼컴 산업이 선진국에 뒤처진 이유는 상대적 투자 미흡과 저변 부족 때문이라고 말했다. 활용분야가 좁고 기술도 낙후돼 있으며 이는 다시 투자 부족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이 본부장은 “슈퍼컴 시스템에 있어 선진국과의 기술 격차는 매우 크다”며 “고성능 서버의 개발을 위해서는 단기적 관점이 아닌 장기적 전략을 세워 접근해야 한다”고 말했다. 대부분 슈퍼컴 구축에 사용되는 클러스터 방식의 경우 시범구축은 상대적으로 단기간에 이뤄질 수 있지만 상용화에는 많은 어려움이 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백남기 인텔코리아 엔터프라이즈솔루션 세일즈그룹 이사도 이 본부장의 말에 동감했다. 슈퍼컴을 국가경쟁력 제고의 도구로 바라보는 정책 입안자들의 마인드가 필요하며 저변 확대도 시급하다는 설명이다.
백 이사는 “시스템도 중요하지만 이를 다룰 줄 아는 소프트웨어 인력 양성도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프로그램을 구성하고 이를 테스트할 수 있는 인력들이 너무 부족하다는 얘기다. 전문 교육 과정과 전문인력 부재는 모든 슈퍼컴 관계자가 말하는 국내 슈퍼컴 산업 성장의 걸림돌이다.
백 이사는 “이번 슈퍼컴 육성법 발효를 통해 국내에서도 체계적 투자와 연구를 위한 토대가 마련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그는 국가에서 슈퍼컴의 중요성을 인식했다는 점, 현재 500억원 규모인 국내 슈퍼컴 시장이 몇 배로 대폭 확대될 것이라는 점 등이 슈퍼컴 육성법 발효의 의의라고 전했다.
<그림>톱500 등재 기준 한·중·일 슈퍼컴퓨터 경쟁력 변화
자료: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KISTI)
안호천기자 hca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