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마했다. LG계열사 인사를 하루 앞둔 지난 목요일 권영수 LG디스플레이 대표이사가 LG화학 CEO가 아닌 사업본부 사장으로 이동한다는 소문이 돌았기 때문이다.
권 사장이 어떤 인물인가. LG디스플레이 대표 역사상 LCD사업에서 매출, 영업이익에서 경쟁사를 앞서 명실상부한 1위를 차지했던 유일한 CEO였다. 삼성전자가 주도한 셔터글라스 방식으로 3D패널 표준이 결정되다시피한 시점에서 편광필름방식(FPR)이란 대항마를 내놓은 것도 그의 작품이다. TV기술이었던 IPS기술을 중소형 LCD에 접목하고 애플에 공급하면서 부진했던 중소형 사업을 단숨에 선두권으로 끌어올린 것도 그의 재임 시 성과다. 업계는 권 사장을 기술력의 LG디스플레이에 마케팅능력까지 끌어올린 CEO로 높게 평가한다.
최근 시황악화로 LG디스플레이가 4분기 연속 적자를 기록했지만 경쟁사 실적은 더 형편없었기에 권 사장이 LG화학 사장으로 좌천(?)된다는 소문을 반신반의할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LG그룹인사에서 특성이 상이한 전자 부문에서 화학으로 이동한 사례도 찾기 힘들다.
소문은 사실이었다. 권영수 사장은 계열사 인사에서 LG화학 전지사업본부 사장으로 이동했다. 다만 그 사유는 항간의 짐작과 달랐다. 좌천성이 아니라 미래성장 사업을 키우기 위한 중용이라는 게 LG그룹 설명이다. LG그룹 측은 “권 사장이 LG디스플레이를 세계최고의 기업으로 키웠듯이 LG화학 2차전지 사업도 세계최고로 키워 달라는 구 회장의 당부와 믿음이 있었다”고 강조했다.
노트북, 휴대폰에 장착되는 2차전지는 최근 자동차에 적용되면서 가히 폭발적인 성장이 예상된다. LG화학은 전기자동차용 배터리분야에서는 GM, 포드, 르노, 볼보 등 10곳의 세계 유수 자동차 메이커와 장기공급 계약을 맺으며 세계 최강자로 부상했다. 배터리 가격이 제품 원가의 10%에 미치지 못하는 IT 기기와 달리 전기자동차에서는 절반을 차지한다. 배터리 기술을 가진 자가 미래 자동차 시장을 좌우할 수 있는 셈이다. 자동차업계는 LG화학을 좋은 파트너라고 엄지손가락을 치켜들면서 한편으로는 잠재적인 경쟁자로도 여긴다. 잘나가다보니 견제하는 움직임도 심상치 않다. 앞으로 풀어나갈 실타래가 복잡하다. 구 회장이 이러한 문제를 풀 해결사로 점찍은 이가 권영수 사장인 듯 싶다.
권 사장의 새로운 도전이 기대된다. 사이클이 긴 화학산업에 IT에서 경험했던 혁신을 접목할 것이기 때문이다. 애플이 LG디스플레이를 선택했지만 애플이라는 고객의 가능성을 본 것은 권 사장의 안목이기도 하다. LCD뿐만 아니라 TV, 모니터 등 완제품까지 공급했던 LG디스플레이 처럼 사업혁신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LG의 또 다른 승부수가 던져졌다.
유형준 부품산업부장 hjyoo@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