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 규제 정책을 주무부처와 게임법 하나로 모아야 한다는 의견에 힘이 실리고 있다. ‘셧다운제’나 ‘게임물등급위원회’ 등 단기 처방용 임시조치나 위임 입법의 남발은 규제난립으로만 작동하고 실효성을 확보하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문화체육관광부가 지난달 30일 주최한 게임법 시행령 공청회가 붉은 피켓과 자극적 문구의 슬로건으로 빼곡하게 채워졌다. 문화부가 청소년게임의 아이템 중개거래를 전면 차단하고 아케이드게임의 점수 보관을 금지하는 입법예고안을 공개하면서 관련 사업자들이 반발하고 나선 것. 흥분한 일부 아케이드게임 사업자의 욕설과 고성이 오가기도 했다.
정부가 게임 아이템의 환전을 게임과몰입, 사행화의 가장 큰 원인으로 판단, 칼을 빼들었으나 산업계의 반응은 싸늘하다. 규제정책이 구체성이나 실효성이 낮다고 바라봤다. 또 이용자문화에 대한 이해나 산업 생태계 및 규제 부작용에 대한 고려가 부족하다는 것. 일률적 규제 도입으로 중소기업이나 성인 이용자 등 선의의 피해사례를 우려했다.
김동현 세종대 디지털콘텐츠학과 교수는 “규제가 지나치게 많다”면서 “이용자들이 게임과몰입이라고 하는데, 오히려 정책입안자들이 ‘규제과몰입’에 빠진 것 같다”고 일침을 놨다.
이미 ‘셧다운제’ 도입은 성인 주민등록번호 도용하거나 실명·연령확인으로 인한 개인정보 노출의 위험을 높였다. 밤새도록 게임을 하는 청소년의 숫자도 일부였으며, 본인확인제 등 ‘옥상옥’식 규제도입이 오히려 문제가 됐다. 중독성이 낮다고 평가받는 콘솔게임 서비스가 차단되기도 했다.
나아가 청소년게임의 환전업을 금지하더라도 개인 간 거래는 허용되기 때문에 직거래 시 발생할 수 있는 사기나 불법행위를 막는 것도 불가능하다. 이헌욱 법무법인 로텍 변호사는 사행성 우려가 없는 게임까지 규제를 확장하는 것은 지나치며, 음성화 우려에 대한 사전검토 및 보완장치가 필요하다고 못 박았다.
무엇보다 실효성 없는 규제가 난립한 데는 정부나 산업계 스스로 과학적 분석이나 데이터가 없었기 때문이다. 이용자 중심으로 게임과몰입 문제를 해결하고 자정활동을 강화해야 한다는 반성의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결국 자정 노력 부족으로 주무부처가 아닌 여성가족부가 ‘셧다운제’를 추진했을 때 여론에 떠밀려 속수무책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게임문화재단은 최근 한국콘텐츠진흥원, 성균관대학교 산학협력단과 함께 10만5134명의 청소년을 대상으로 게임과몰입 조사를 진행, 구체적 현황을 파악했다. 그동안 채팅이나 서핑 등 포괄적 인터넷 이용자 조사는 있었지만, 게임과몰입 실태에 대한 대규모 이용자조사는 전무했다.
이 조사에 따르면 문제적 청소년 비율은 6.5% 수준으로 확인됐다. 이는 여성가족부와 교육과학기술부가 지난 5월에 함께 조사, 발표한 청소년 인터넷 중독 수치인 4.94%보다 높은 상황이다. 다만 83.2%의 대다수 청소년들은 게임 이용이 낮거나 관심이 없는 일반 이용자 군이었다. 게임문화재단은 이 자료를 기반으로 선제적 과몰입 예방 치유 사업을 진행할 예정이다.
권헌영 광운대 과학기술법학과 교수는 “게임은 산업이라고 말하기 부끄러울 정도로 과학적 분석이나 통계자료가 없었다”며 “헌법의 테두리 안에서 문화부가 의견수렴 창구가 될 수 있도록 산업계가 합리적인 목소리를 내야한다”고 주문했다.
김명희기자 noprint@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