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기관 시스템에어컨 시장이 일본 기업들에 안방을 내줄 상황에 몰렸다. 정부가 피크 전력 관리를 위해 일본기업이 경쟁 우위에 있는 품목을 공공기관용으로 의무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21일 LG전자·삼성전자 등 주요 시스템에어컨 업계는 2~3년간 정체됐던 공공 부문 시스템 에어컨 시장이 내년 개화할 것으로 예상되나 정부 규제에 가로막혀 외산의 점령이 불가피할 것으로 우려했다.
그동안 국내 주요 기업들은 전기시스템에어컨(EHP)을 공급해왔다. 하지만 정부는 전력피크에 대한 우려로, 일정 규모 공공기관에 대해 현재 일본이 주도하는 가스냉방기(GHP) 설치를 의무화했다.
업계는 GHP의 일본 업체 의존도가 매우 높고 설치비가 비싼데다 품질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강력 반발했으나 정부는 이를 수용하지 않았다. 정부는 ‘외산업체의 국내 시장 장악보다 당장 피크 전력 관리가 더 중요하다’는 입장이다.
지식경제부는 지난 7월 26일 ‘공공기관 에너지 이용 합리화 추진에 관한 규정’을 고시, 공공기관이 연면적 3000㎡ 이상 건물을 신축 또는 증축할 경우 주간 최대 냉방 부하의 60% 이상을 기존 전기식 EHP가 아닌 다른 냉방설비로 설치할 것을 의무화했다.
여기에는 가스를 연료로 하는 GHP를 위주로 심야전기를 이용한 축냉식, 신재생 에너지를 이용한 냉방방식 등이 포함됐다. 문제는 당장 국내에서 GHP를 직접 생산하는 업체가 거의 없어 다이킨·미쓰비시 등 일본 업체에 대부분을 의존해야 한다는 것이다.
김재명 LG전자 한국AE마케팅팀 CAC마케팅그룹 부장은 “국내에서 GHP 직접 생산이 가능한 곳은 LG전자가 인수한 LS엠트론 정도이며 나머지는 전량 일본 제품 수입에 의존해야 하기 때문에 구매비용과 설치비가 비싸고 품질도 보장하기 어렵다”고 토로했다. 이미 린나이코리아·삼천리 등이 일본 제품을 수입해 국내 공급 중이다.
더욱이 내년에 공공 부문 상업용 에어컨 시장이 오랜만에 학교 시장 교체 수요와 공공기관 이전 등 호재에 힘입어 활기를 띌 것으로 기대한 만큼 업계의 실망감은 크다. 초·중·고등학교에 시스템에어컨이 보급된 지 10년이 넘어 교체 수요가 예상되는데다 내년말까지 10대 혁신도시 등으로 이전이 예정된 총 147개 공공기관 중 120개가 사옥을 신축한다.
업계는 지난해 3월 총리 지침으로 이 규정이 정해졌을 때부터 지속적으로 반대 의견을 피력했으나 끝내 의견이 수렴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이에 따라 국내 EHP 시장을 양분해온 삼성전자와 LG전자는 친환경 냉방기기 등으로 눈을 돌리면서 정부의 눈치만 보는 실정이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내년부터는 신재생 에너지인 지열과 공기열 등을 활용한 시스템 에어컨 ‘삼성 에코히팅시스템(EHS)` 공급도 본격화하면서 공공수요에 대응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러한 업계의 입장에 대해 지경부 가스산업과 관계자는 “피크 시간대 전력 수요의 25%를 EHP가 차지하는 상황에서 나온 정책”이라며 “당장은 일본 기업의 시장 진출이 불가피하겠지만 GHP 시장이 열리면 국내 기업들도 속속 개발에 참여하지 않겠냐”는 입장을 나타냈다.
한편 업계에서는 국내 상업용 시스템 에어컨 시장의 규모는 올해 설치비를 포함해 약 1조5000원에 달할 것으로 추정했다. 세계 상업용 에어컨 시장 규모가 내년 약 200억달러임을 감안하면 매우 큰 규모다.
김유경기자 yukyung@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