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대 28.
아시아태평양전기통신연합체(APT) 신임 사무총장 선거에서 한국과 일본 후보의 득표 성적이다. 다른 곳도 아닌 한국에서 치러지는 선거였다. 방송통신위원회 내부에서도 한국인 사무총장을 배출할 수 있다는 기대감을 전해 왔던 터다. 하지만 아태지역 36개국 중 한국을 지지한 나라는 단 8곳에 불과했다.
방통위에서는 일본 APT 분담금이 한국보다 많다는 점을 들어 변명했지만 납득하기 힘들다. APT 내 영향력은 분담금 이외에도 많은 변수가 작용한다. 일본은 이미 수십년 전부터 동남아시아 개발도상국과 태평양 지역 섬 국가에 정보통신기술(ICT)을 전파해 왔다.
통신 설비를 무상 제공하고 교육 프로그램을 제공했다. 이번 선거를 위해서는 총무성 차관이 직접 한국을 방문했다. 외무성 차원에서도 대사관을 동원해 각국 표심 잡기에 주력했다. 한국 외교부에서는 발벗고 나섰다는 얘기가 없다.
APT는 국제전기통신연합체(ITU)가 표준을 제정하기 전에 아시아 국가 간 표준을 조율하는 기구다. APT 내에서 한 국가의 위치가 통신 표준 선정에도 유리하게 작용한다. 사무총장 선거는 국가 대리전인 만큼 정부부처가 협력해도 모자랄 판국에 다른 부처는 그냥 손을 놓고 있었다.
지난달 스위스 제네바에서 개최된 ‘ITU 전기통신 표준화분야(ITU-T)’ ‘전파통신표준화 분야(ITU-R)’ 성과는 정부의 통신 기술 표준화 노력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다. 이 회의에 참석했던 관계자는 “한국이 N스크린 기술, 망 제어기술 등 5개 분야에서 표준 승인을 받았지만 일본 표준은 너무 많아서 다 세지도 못했다”고 전했다.
두 가지 사례가 주는 시사점은 뚜렷하다. 범정부 차원 IT 외교 없이는 통신 강국 위상도 추락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한국은 2000년대 초고속 인터넷망, 무선통신망 강국이었다. 국내 IT 외교력을 보면 국가가 토종 기술로 키운 4세대(G) 이동통신 표준 ‘와이브로’가 세계에서 외면당한 이유를 알겠다.
오은지기자 onz@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