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와 KT가 모바일 분야에서 상호공급계획 예측프로그램(CPFR) 연동을 시작한다.
10일 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와 KT는 스마트폰을 중심으로 주 단위의 CPFR 시스템 연동을 연내 시작할 예정이다. 종합가전유통 기업이 아닌 이동통신사업자와 제조사간 CPFR 연동은 국내 첫 사례다.
CPFR(Collaborative Planning Forecasting Replenishment)는 유통업체와 제조사가 공동 수요예측을 통해 생산량 조절과 품질 향상을 최대화하기 위해 맺는 협력 계약이다. 판매 생산계획(S&OP)은 한 기업 내부의 공급망관리(SCM) 영역인데 비해 CPFR는 생산에서 판매까지 전체 공급망을 아우르는 관리 체계다.
두 회사 간 CPFR가 시작되면 KT와 삼성전자 CPFR 담당자들이 매주 공동으로 수요 예측을 실시하고, 여기 맞춰 KT용 스마트폰 생산량을 탄력적으로 조절하게 된다. 이는 양사에 상당한 유통·생산 효율성을 가져다 줄 수 있다는 기대다.
KT는 지난 7월 ‘페어 프라이스’ 제도를 시작하며 모바일 시장 유통 선진화에 앞장서겠다고 공언한 상태. 보조금을 투입해 재고를 처리할 명분이 경쟁사보다 적다. 제조사와 사전 수요 예측을 통한 적정 생산량 조절 필요성이 더 높다. 반대로 재고를 걱정하며 물량을 줄이다 일시에 소비자가 몰려 공급이 부족해지는 사태도 미연에 방지할 수 있다.
삼성전자 입장에서도 여러모로 이득이다. 2000년대 초반 국내에 CPFR를 처음으로 도입한 삼성전자는 국내 하이마트나 미국 베스트바이를 비롯해 30여개 대형 유통업체들과 계약을 맺고 있다. ‘재고→할인→이미지 하락’의 악순환 대신 ‘적시 공급→악성재고 방지→프리미엄 이미지 강화’로 이어지는 선순환 고리를 유지하는 핵심 비결이다. 업계 관계자는 “국내 스마트폰 시장에서도 이처럼 프리미엄 제품의 이미지를 굳히겠다는 전략”이라며 “협력업체의 부품 생산에서도 재고 문제가 줄어들 것”으로 전망했다.
<뉴스의 눈>
삼성전자와 KT 두 회사 모두 최근 모바일 분야에서 재고로 인한 아픈 경험을 했다. 세계 최고 SCM 능력을 자랑하는 삼성전자지만 유독 스마트 모바일기기 시장에선 실수가 잦았다. 갤럭시탭 7.0 모델은 시장 수요를 지나치게 확대 예측한 탓에 20만대 가량의 재고를 처분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SK텔레콤과 LG유플러스 등 이동통신사업자들 역시 팔리지 않은 갤럭시탭 7.0 모델을 처분하느라 진땀을 뺐다.
갤럭시S2는 판매 초기 예상보다 높은 인기로 공급량을 제대로 맞추지 못하기도 했다. 이통사들 간 갤럭시S2 수급 경쟁을 벌여야 했을 정도다. 당시 삼성전자 관계자는 “잘 팔리는 건 좋지만 웃을 수는 없는 상황”이라며 난감해 했다.
KT와 스마트패드 생산업체 엔스퍼트 간 재고를 둘러싼 분쟁은 현재진행형이다. 엔스퍼트와 협력 부품업체들은 최근 공정거래위원회에 KT가 20만대 규모 스마트패드 구매 계약을 완전히 이행하지 않고 있다고 신고했다.
지난해 8월 시장에 내놓은 K패드의 성능에 따른 수요 예측을 제대로 하지 못한 것이 원인이 됐다. 당시 KT는 이 제품 3만대를 우선 공급받고, 다음달 검증 통과를 조건으로 17만대를 추가 계약했다. 문제는 3만대 중 절반도 시장에 나가지 못한 것. 1만8000여대 K패드 재고를 떠안은 데다 사용자의 불만마저 빗발쳤다.
KT는 엔스퍼트 스마트패드 추가 계약분에 대해 ‘검증을 통과하지 않아 판매가 불가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KT 관계자는 “올해 추가로 스마트패드 4만대를 구입했다”며 “검증을 통과하지 않았기 때문에 추가 구매는 없다”고 말했다. 아직 공정위는 입장을 밝히지 않은 상태다.
모바일 시장은 ‘졸면 죽는다’고 불릴 정도로 워낙 빨리 변하는데다 유통구조마저 일반 가전제품과 다르기 때문에 고도화된 SCM 전략 없이는 언제든지 이런 사태가 재발할 수 있다. 모바일 유통업계에 처음으로 CPFR를 도입하는 두 회사의 움직임이 주목받는 이유다. 유통업계 한 관계자는 “삼성전자는 최지성 부회장을 비롯한 수장들부터 SCM을 상당히 중시하는 조직”이라며 “혼탁한 모바일 유통업계에 CPFR 도입은 상당한 변화를 불러올 것”으로 내다봤다.
황태호기자 thhwang@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