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사회종합대책
시작이 결과를 만들고 상상력이 신천지를 잉태한다. 한국이 ICT강국으로 도약하는 길목에서 국가정보화라는 청사진이 신천지로 가는 길라잡이가 됐다. 정부는 정권과 무관하게 국가정보화 설계도를 마련해 쉬지 않고 목적지를 향해 질주했다. ICT강국을 향한 정부 신념은 견고했고 미래 청사진은 구체적이며 치밀했다.
21세기 정보사회에 대비하기 위한 국가정보화 그림은 노태우 정부시절인 1990년 6월에 완성했다. 대통령직속기관인 전산망조정위원회가 만든 ‘정보사회종합대책’이 바로 그것이다.
그리고 6년이 지난 1996년 6월 11일 체신부에서 정보화총괄부서로 새롭게 출범한 정보통신부는 국가기본 발전 전략인 ‘정보화촉진기본계획’을 확정했다. 정보사회종합대책은 정보화촉진기본계획의 모태(母胎)나 다름없었다. 작업은 어려웠지만 이런 미래도는 현실이 돼 ICT강국이란 동방의 자랑이 됐다.
역사를 뒤로 돌려 노태우 대통령 지시로 범정부차원에서 진행한 정보화 지침서인 ‘정보사회종합대책’수립 과정을 알아보자.
1989년 1월 26일.
노태우 대통령은 이날 오후 청와대에서 최영철 체신부장관(국회부의장, 통일부총리 역임, 현 서경대학교 총장)으로부터 체신부 업무보고를 받은 후 “정보사회에 대비, 정보사회 중장기 대책을 수립하라”고 지시했다. 노 대통령은 이어 “체신부가 추진 중인 전국초등학교 컴퓨터보급계획을 차질 없이 시행하고 국가전산망사업을 적극 추진하고 정보통신사업의 선진화에도 최선을 다해 달라”고 당부했다.
대통령비서실장이 위원장인 국가전산망조정위원회는 사무국 내에 정보사회종합대책 전담작업반을 구성했다. 조정위 사무국 인력은 국가기간전산망과 관련이 있는 각 부처와 기관에서 파견 받았다.
체신부에서는 석호익(정통부 정책홍보관리실장, 정보통신정책연구원장 역임, KT 부회장 역임), 이성옥(정통부 정보화기획실장, 정보통신연구진흥원장 역임, 현 한국플랜트산업협회 부회장), 설정선(방통위 방송통신융합정책실장 역임, 현 한국통신사업자연합회 부회장), 임차식(방통위 네트워크정책관 역임, 현 국립전파연구원장), 최석봉(정통부 사무관 역임)씨 등이 파견 근무를 했다. 김원식(정통부 미래정보전략본부장 역임, 현 세종 고문)씨는 상공부에서 파견 나왔다가 정보통신부로 자리를 옮긴 케이스다.
그해 3월 전산망위 사무국장을 맡고 있던 홍성원 청와대 과학기술비서관(KAIST서울분원장, 현대전자 부사장, 시스코시스템즈코리아 회장 역임)이 청와대를 떠나자 경제비서실 정홍식 비서관이 사무국장을 맡았다.
전산망위는 행정과 금융, 교육, 국방, 공안 등 5대 국가기간전산망사업을 총괄하고 있었다.
정보사회종합대책 작성을 총괄한 정홍식 청와대 비서관의 회고.
“대책마련에는 1년 6개월가량 시일이 걸렸고 139개 기관과 협의를 거친 방대한 작업이었습니다. 노 대통령은 두 번이나 정보사회에 대비한 중·장기 종합대책을 마련하라고 지시했어요. 기존 시행하던 계획을 재정리하고 여기에 관련분야 전문가 의견을 수렴해 범정부 차원의 ‘정보사회종합대책’을 수립한 것입니다. 국가미래상을 제시해 국민에게 기대와 희망을 주자는 의미도 담고 있었습니다.”
당시 총괄과장으로 일했던 석호익 과장의 말.
“저는 이 작업을 총괄하는 업무를 맡았습니다. 정홍식 비서관이 차출한 것입니다. 정 비서관은 제가 체신부 우편과 담당사무관으로 일할 때 처음 만났는데 잘못된 기념우표 배포 관행을 청와대부터 앞장 서 시정해 달라고 요청했더니 흔쾌히 들어 주셨습니다. 그게 인연이 돼 파견근무를 하게 됐습니다.”
당시 위원회는 청와대 직속기관이었으나 정부종합청사 옆 한국전산원(현 한국정보화진흥원)에 사무실이 있었다. 파견자들은 정보화에 대한 개념조차 생소하던 때였으나 ‘자유롭고 창의적인 정보사회 구현’이라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각 분야별 시안을 만들어 전문가 의견을 들어 보완했다.
그해 6월 1일 노태우 정부는 청와대 기구인 전산망위원회를 체신부로 이관했다.
하지만 그 과정에 전산망위원회 이관을 놓고 총무처와 상공부, 체신부, 과기처 등 관련부처 간 치열한 경쟁이 벌어졌다. 체신부로 가기로 했던 전산망위가 과기처로 갈 뻔한 사태가 발생하기도 했다. 노 대통령이 같은 사안에 대해 두 번 재가하는 초유의 일이 일어났다.
부처 간 협의를 진행했던 신윤식 체신부 차관(데이콤사장, 하나로통신회장 역임, 현 정보환경연구원 이사장)의 증언.
“체신부로 이관하는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느닷없이 과기처로 방침이 변경됐어요. 친분이 두텁던 문희갑 당시 대통령경제수석(대구광역시장 역임)과 이 일로 언성을 높인 적이 있습니다. 그해 4월 하순에 관련부처 차관회의에서 체신부로 이관키로 합의했지만 부처 간 유치경쟁이 대단했습니다.”
전산망위원회가 체신부로 이관함에 따라 대통령비서실장이 맡고 있던 위원장도 체신부장관이 맡게 됐다. 실무위원장 겸 사무국장인 정홍식 비서관도 청와대 생활 10년을 청산하고 그해 6월 5일 체신부로 발령이 났다. 전산망위 실무위원은 관련부처 과장급들로 구성했다. 체신부에서는 김창곤 정보통신과장(정통부차관 역임, 현 한국디지털케이블연구원장)과 주현정 전산망과장(부산체신청장, LGT감사 역임)이 참여했고 실무위원회 간사는 이성옥 전산망조정위사무국 총괄지원담당관이 맡았다.
노태우 대통령은 그해 7월 8일 개각을 단행, 체신부장관에 이우재 전 한국전기통신공사 사장(현 KT동우회 고문)을 임명했다. 최영철 체신부장관은 노동부장관으로 옮겼다.
전산망위는 그해 8월 종합대책 시안을 작성해 각계 전문가들로 구성한 11개 전문위원회 검토를 거쳐 시안을 작성했다. 11개 전문위원회는 총괄분과와 정보사회전망분과, 전산망분과, 뉴미디어분과, 표준화분과, 인력분과, 법제도분과, 정보문화분과, 지역정보화, 정보산업분과, 통신사업분과 등인데 그 분야 전문가로 구성했다.
그해 9월1일 하오 노태우 대통령은 서울국제우체국에서 열린 제6회 체신봉사상 수상자들을 위한 다과회에 참석, 격려사를 통해 “국가전산화 사업과 초등학교 컴퓨터보급계획을 차질 없이 추진하라”고 거듭 지시했다.
노대통령은 그해 11월 9일 이우재 체신부장관으로부터 종합대책 중간보고를 받는 자리에서 “ 정부관계부처와 산·학계가 힘을 모아 정보사회종합대책을 조속히 마련하라”고 강조했다.
대통령의 연이은 독촉에 전산망위 사무국은 비상이 걸렸다. 밤낮없이 시안 마련에 박차를 가해 전문가회의와 부처 간 협의를 진행했다.
해가 바뀌어 1990년 2월 13일 상오 청와대.
이우재 체신부 장관은 새해 업무계획을 노태우 대통령에게 보고하면서 “상반기 중에 대통령이 지시한 정보화사회에 대비한 정부의 중장기조합대책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노 대통령은 이날 “국가기간망 사업은 기관별, 지역별로 산재한 것을 종합해 작은 정부를 구현할 수 있게 해달라”며 “정보사회 진입을 위해 기술개발을 통신정책의 최우선 과제로 두어 기술자립의 조기 달성에 노력해 달라“고 당부했다.
여기서 노 대통령 특장(特長)의 한 단면을 엿볼 수 있다. 역대 장관들이 전하는 대통령들의 관심사는 길어야 6개월을 넘기지 않는다고 한다. 대통령이 각 부처에 지시하는 내용이 많은데다 정치적 현안이 발생하면 대통령의 관심사는 그 쪽으로 쏠려 과거 지시사항은 뒷전으로 밀린다는 것이다. 그런데 노 대통령은 1년여에 걸쳐 지속적으로 정보사회종합대책 수립을 독려했다. 지시한 사항은 부처 장관이 교체돼도 결과가 나올 때까지 계속 챙겼던 것이다.
전산망위는 1990년 4월 24일 ‘정보사회종합대책’ 정부안을 마련해 발표했다. 2000년대초까지 고도정보사회 구현을 통한 선진국대열 진입을 목표로 1990년부터 2000년까지 총 52조원(공공지원 5조원)을 투자해 △정보사회기반조성(정보문화 확산·표준화 확대·정보인력 개발, 법령정비) △정보화 촉진(국가기간전산망확충, 지역정보화·중소기업정보화, 뉴미디어 개발 보급, 단말기 보급 촉진)△정보사회 고도화(정보산업 육성, 정보기술연구 개발 강화, 정보통신사업 진흥) 등 3개 분야 12개 중점 과제를 추진하고 이를 위해 범정부적 차원 정보사회 발전 5개년계획을 수립, 추진한다는 내용이었다. 투자할 예산 52조원은 천문학적 숫자였다. 이를 계산한 사람은 정보산업육성 분야에서 일한 권오익(한국통신)씨였다.
김원식 정보산업담당관의 말.
“당시 필요한 예산 52억원을 권오익씨가 산출했는데 모두 놀랐습니다. 그게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지 않습니까.”
이 안을 놓고 그해 4월 27일 오전 9시부터 서울세종문화회관 대회의실에서 산·학·연 등의 전문가가 참석한 가운데 통신개발연구원 주최, 전산망조정위원회 주관으로 공개토론회를 개최했다.
이우재 체신부장관은 격려사를 통해 “대통령 지시에 따라 수립되는 정보사회종합대책은 국가사회 전반의 정보화를 통해 그동안 경제개발추진과정에서 발생된 제반문제에 대한 해결방안을 제시하고 미래정보사회에 대비한다는데 그 의의가 있다”고 말했다.
공개토론회는 △1분과(정보사회 기반 조성) △2분과(정보화 촉진) △3분과(정보산업 고도화)로 나눠 주제발표를 하고 패널들의 토론 순으로 진행했다. 1분과에서는 정보문화와 정보기술 표준화, 정보인력 개발, 정보사회에 대비한 법령 정비 등을 다뤘다. 2분과에서 국가기간전산망 확충과 지역정보화 촉진, 중소기업 정보화 촉진, 뉴미디어 개발 보급, 단말기 보급 촉진 등을 논의했다. 3분과에서는 정보산업육성과 정보기술 연구인력, 정보통신사업 진흥책 등을 협의했다.
정홍식 국장의 증언.
“이 종합대책으로 그동안 정부가 주도했던 정책을 민간중심으로 추진하고 체신부와 상공부, 과기처 등 관련부처로 분산됐던 정보화 정책을 종합해 범국가적 일원화 체제를 확립하게 했습니다.”
정부는 그해 6월 정보사회종합대책을 확정했으며 그해 9월 이우재 체신부장관이 노태우 대통령에게 보고해 범정부차원에서 이 사업을 추진하게 됐다. 이 대책은 ICT혁명의 종합 청사진이자 정보화의 기본 골격이었다.
이현덕기자 hdlee@etnew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