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상돈의 인사이트] 과학이 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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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자들은 돈 때문에 연구하는 게 아닙니다. 연구 환경만 갖춰주면 고국에 들어와 연구하지 구태여 왜 외국에 나가 머슴살이를 하겠습니까?”

 박정희 대통령 시절 해외 과학자 유치에 앞장섰던 최형섭(崔亨燮) 전 과학기술처 장관은 항상 연구자로서의 자부심을 강조했다. ‘조국에 꼭 필요한 존재’라는 자부심 하나에 과학자들은 움직인다는 논리였다.

 60년대 당시, 우리 정부가 해외 과학자들에게 제시한 월급은 500달러 정도다. 500달러 월급은 당시로는 파격적인 대우였다. 대통령보다도 많았음은 물론이고, 국립대 교수 월급 3배에 달 했다. 그러나 당시 미국에서 고급연구원들이 받는 2000달러 월급 수준과 비교하면 턱없이 부족했다. 결국 돈만으로는 데려 올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래서 고국에 돌아와 연구할 수 있도록 환경을 만드는 데 주력했다. 과학자 자녀들을 고등학교까지 무상으로 교육시키고, 의료와 주택 문제도 해결해줬다.

 경제적 혜택과 지원만이 전부가 아니다. 과학에 대한 최고 통치자의 무한한 애정과 관심이 과학자들을 춤추게 했다. 대통령이 직접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에 한 달에 한 번씩 들러 연구원들과 다과회를 가졌다. 늦은 시간까지 실험하다 책상에 엎드려 잠이 든 연구자에게 직접 윗도리를 벗어 주었다는 일화도 있다. 연구에 방해가 되니 ‘제발 그만 오시라’고 만류할 정도였다고 한다.

 과학기술 정책의 일관성을 유지하기 위해 사람을 함부로 교체하지도 않았다. KIST 초대원장을 지내고 과학기술처를 맡은 최 장관은 78년까지 무려 8년 동안 재임했다. 8년은 건국 이래 최장수 장관재임 기록이다. 대통령의 전폭적인 신임 아래 그는 일관된 과학기술 정책을 펼 수 있었다. 작고하신 최 장관과 함께 발탁된 이창석 과기처 차관은 한술 더 떠 79년까지 9년간을 재직했다.

 과학기술계 원로들은 이때를 ‘한국 과학기술의 르네상스 시대’라 부른다. 정치적 공과는 있지만, 박 대통령은 오늘날 중견 과학자들로부터 과학기술 발전의 본질을 이해했던 통치자로 기억된다. 이후 김영삼 대통령은 고등과학원·광주과학기술원·아태이론물리학센터 등을 설립했고, 김대중 대통령이 과학기술처를 과학기술부로 승격시켰다. 노무현 대통령도 과기부총리제를 도입할 만큼 과학기술에 전폭적 지지를 보냈다.

 이명박 정부는 출범과 함께 교육인적자원부와 과학기술부를 통합, 교육과학기술부를 만들었다. 3년여가 흐른 현재 과학기술 정책은 교육 이슈에 밀려 찬밥 신세이고, 조직은 고사(枯死) 위기에 놓였다. 과기부 출신 공무원들은 수개월마다 짐을 싸 이 부서 저 부서로 옮겨 다니는 ‘떠돌이’ 신세가 됐다. 이달 말 원자력안전위원회가 독립하면 교과부 내 순수 과학기술 조직은 연구개발정책실 하나만 남는다. 국가과학기술위원회가 새로 출범했지만, 정책 기능 없이 조정권만 갖고 있어 도무지 힘이 실리지 않는다. 정부출연연구기관을 산하로 통합해 연구개발 거버넌스를 확보하는 일 조차 힘겨워하는 형편이다.

 ‘과학은 21세기 대한민국의 꿈이며, 선진 일류국가로 비상하는 날개’라는 화려한 구호 앞에 우리 과학자들은 갈수록 초라해진다. 오죽하면 과기계 전·현직 원로들이 직접 나서 현 정부의 과학기술 정책에 쓴 소리를 쏟아낼까? 이공계 학생들은 자신의 전공을 버리고 의대나 사법시험에 매달린다. 평생 연구만 하던 과학자들도 길거리로 뛰쳐나와 실험기구 대신에 피켓을 들었다. ‘과학기술은 국가지도자의 관심을 먹고 자란다’는 옛 노랫소리가 흘러나오는 불 꺼진 연구소 앞 단골집에서 우리 미래의 꿈, 과학이 울고 있다.


 주상돈 경제정책부 부국장 sdjoo@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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