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포커스-넘쳐나는 유사석유]

Photo Image
한국석유관리원 직원들이 유사석유 여부 검사를 위해 시료채취용 통에 석유를 담고 있다.

#9월 24일 오전 경기도 수원시 인계동 한 주유소에서 가짜 휘발유를 보관해오던 탱크가 폭발, 주유소 내 세차장 종업원 등 4명이 숨지고 시민 4명이 다쳤다.

 #9월 28일 오후 경기도 화성시 소재 유사석유를 판매하던 주유소 사무실 지하에서 폭발이 일어나 종업원 2명이 유리 파편에 맞아 찰과상을 입고, 주유소 건물과 주변 차량 10대가 부서졌다.

 #10월 5일 오후 경기도 안산시 사동 주택가에서 소형 승용차에 유사휘발유를 싣고 온 한 판매업자가 다른 차량에 주유하던 중 화재가 발생, 해당 승용차는 전소됐고 골목길에 주차된 자동차 3대에도 불이 옮겨 붙었다.

 

 최근 한 달 새 유사석유로 인한 폭발 및 화재사고로 10명이 죽거나 다쳤고 건물 및 차량 14대가 피해를 입었다.

 한국석유관리원에 따르면 유사석유에는 톨루엔과 메탄올 성분이 많아 조그만 스파크나 불꽃에도 쉽게 불이 붙어 폭발 사고를 일으킬 수 있다. 사고가 난 주유소는 단속을 피하기 위해 유증기 배출구 같은 안전장치를 설치하지 않아 폭발 위험을 키웠다.

 유사석유가 석유제품 유통질서 혼란과 탈세, 자동차 수명 감소, 대기 오염은 물론이고 인명마저도 해칠 수 있는 도심 속 시한폭탄으로 깊숙이 자리 잡은 것이다.

 ◇유사석유의 검은 유혹 ‘돈’=늘 폭발 위험을 안고 있는 유사석유 유통이 근절되지 않는 이유는 ‘돈’이다. 세금을 매기지 않는 유사석유를 섞어 파는 만큼 이득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인근 주유소 보다 가격을 낮춰 팔 수 있는 이유기도 하다. 고유가로 인해 값싼 제품을 선호하는 소비자와 높은 수익을 바라는 사업자의 이해관계가 맞아 떨어진 것이다.

 강길부 의원(한나라당)은 “유사석유 제품 가격은 보통 리터당 1000원이 안 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며 “이를 정품 가격인 1900~2000원에 팔면 리터당 900~1000원 가량의 이익이 발생한다”고 설명했다.

 정품 보통 휘발유 판매마진이 4%인 것을 감안하면 유사석유를 팔면 정품보다 11배 이상의 이익을 챙기게 된다는 것이다. 최근 정부 압박으로 주유소 마진이 박해진 상황에서 사업자들에게 유사석유는 뿌리칠 수 없는 유혹이다.

 업계 한 관계자는 “한 달 석유제품 판매 물량이 탱크로리 10대 분량인 주유소가 이 중 1대만 유사석유를 들여와 섞어 팔아도 이익을 두 배나 남기게 된다”며 “정상 영업이 어려운 주유소들이 1억원이 넘는 폐업비용에 사업을 접을 수도 없어 선택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실제로 주유소 폐업에만 1억5000만원이 든다. 토양오염 복원 비용이다. 시설물 철거는 물론이고 기름 저장으로 오염된 토양의 복원까지 사업자가 책임져야 한다.

 ◇솜방망이 처벌이 피해 키워=한국주유소협회에 따르면 유사석유 판매 주유소 적발 건수가 2009년 772건에서 2010년 1191건으로 대폭 증가했다. 서울에서만 지난해 12건, 올해 13건이 적발됐다.

 하지만 적발돼도 큰 걱정은 없다. 현행법상 유사석유를 판매하다 적발되면 연 1회 5000만원의 과징금을 물거나 3개월 영업정지 처분을 받는다. 2회 때는 7500만원 또는 6개월 영업정지다. 1년에 3회 적발돼야 사업정지 처분된다.

 한두 번 걸려서는 크게 문제가 안 된다는 게 업계 주장이다. 과징금을 물거나 몇 개월 영업정지만 당하면 된다. 과징금 5000만원 정도는 1개월 이내에 만회할 수 있다. 실제로 유사석유를 팔다가 석유관리원 단속에 걸려도 시료 채취에서 분석, 처분 명령까지 내려지는 동안 유사석유를 집중해서 팔면 과징금은 감당하고도 남는다.

 영업정지가 돼도 일정 기간 지나면 잊혀지기 마련이다. 석유가격 정보 사이트인 오피넷에서도 기록이 삭제돼 과거 적발 이력을 알 수 없다.

 임대 사업자인 경우 행정처분을 받더라도 다른 곳에서 영업할 수 있다. 월세를 내고 유사석유를 팔다 적발되면 다른 곳으로 옮기면 그만이라는 것이다. 주유소 주인도 유사석유 판매 사업자들이 월세를 더 많이 내기 때문에 굳이 안 들일 필요가 없다.

 행정심판을 청구하는 방법도 있다. 적발된 유사석유 판매 주유소 사업자가 임대사업자라면 실제 소유주가 직접 운영을 하겠다며 영업정지 조치를 과징금 부과로 변경해달라고 행정심판을 청구하는 것이다. 행정심판위원회가 열릴 때까지는 영업이 가능하다.

 최고 처분인 사업정지도 사실상 불가능하다. 처분을 받으려면 1년에 세 번 적발해야 하는데 석유관리원의 인력으로는 연간 주유소당 검사 횟수는 2.6회 정도로 세 번씩 검사하기가 힘들기 때문이다.

 효과적인 검사가 어려운 것도 유사석유 판매를 부채질 하고 있다. 검사기관인 석유관리원이 의심이 가는 주유소나 수송 차량을 발견해도 경찰이나 지자체 관계자가 동행하지 않으면 단속할 수 없다. 석유관리원에게 사법권이 없어서다.

 이와 관련 박민식 의원(한나라당)은 최근 국정감사에서 “현행법상 석유판매업자에 대한 품질 검사 및 유통 관리 권한은 석유관리원에 있고, 유사석유를 저장하는 비밀탱크 등에 대한 단속 권한은 소방방재청에 있다”며 “석유관리원은 시료를 채취한 후 정밀 분석하는 수준의 단속만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유사석유 단속 강화 법안, 국회서 계류=최근 유사석유로 인한 피해가 늘어나자 국회의원이 발의한 유사석유 단속 및 처벌에 관한 법안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과거에도 단속 및 처벌을 강화하는 법안이 속속 발의됐지만 관심 밖에 있다가 인명 사고가 터지자 새삼 주목 받고 있다.

 이명규 의원(한나라당)은 중요한 위반 행위에 대해서는 영업정지 처분을 과징금으로 갈음하도록 하고 있는 것을 폐지하고 무조건 영업정지해야 하는 법안을 발의했다. 반면 박민식 의원은 과징금을 안 낼 경우 영업정지도 가능하게 돼 있는데 이를 국세체납 처분으로만 적용, 과징금으로 추징할 수 있게 한다는 것이다.

 조정식 의원(민주당)의 법안은 유사석유 적발 업소를 현재 오피넷에만 알리도록 돼 있는데 이를 사업장에 직접 게시토록 하자는 내용이다.

 이종혁 의원(한나라당)은 유사석유를 인지했는가의 여부에 상관없이 유사석유를 제조·수입·판매한 경우에 한해 처벌하도록 법에서 규정하고 있는데 이를 저장·보관까지 확대하자는 것이다. 이는 고의 및 과실 여부에 상관없이 처벌하는 것으로 문제가 발생할 수 있어 지경부에서는 신중히 검토해줄 것을 요청하고 있다.

 

 주유소 적발유형(업소)

※유사석유제품 취급 247개 업소 중 유사경유가 152개 업소(62%), 유사휘발유가 95개 업소(38%)임.

 2011년 상반기 상표표시별 품질검사 실적(업소, %)

Photo Image
유사석유 판매 주유소를 점검하기 위해 일반 차량 내부에 유사석유 검사 장비를 설치했다. 보통 차량처럼 주유하면 기름이 이 장비로 들어와 검사가 이뤄진다. 한국석유관리원 직원이 비노출차량 석유 검사 장비를 들여다 보고 있다.
Photo Image
석유관리원 기술연구소 연구원들이 유사석유 의심 제품을 가져와 판별 시험을 하고 있다.
Photo Image
석유관리원 기술연구소 연구원이 유사석유 의심 제품을 가져와 판별 시험을 하고 있다.
Photo Image
석유관리원 기술연구소 연구원이 유사석유 의심 제품을 가져와 판별 시험을 하고 있다.
Photo Image
석유관리원 기술연구소 연구원들이 유사석유 의심 제품을 가져와 판별 시험을 하고 있다.
Photo Image
유사석유 제조장비가 갈수록 지능화하고 있다. 소형 트럭을 개조해 만든 이동식 유사석유제품 제조 차량.

유창선기자 yuda@etnews.com


브랜드 뉴스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