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82년 ‘선조수정실록’을 보면 율곡 이이의 “미리 10만의 군사를 양성해 앞으로 뜻하지 않은 변란에 대비해야 한다”는 ‘10만 양병설’이 기록돼 있다. 불과 10여년 뒤인 1592년 임진왜란이 발발해 큰 어려움을 겪었던 역사를 보았을 때, 얼마나 대단한 선견지명이었는지를 알 수 있다.
10만이라는 숫자는 무엇을 상징하는가. 만약 10만의 군사를 양성해 왜란에 대비했다면 우리의 역사는 어떻게 달라졌을까. 율곡 이이는 당시 급변하는 국제정세에 재빠르게 대응하고 다가올 위기를 기회로 활용하기 위해 상징적 숫자인 10만을 강조했을 것이다.
환경부에서 출시한 ‘그린카드’가 지난 20일자로 가입자 수가 10만명을 돌파했다. 그린카드란 신용카드의 포인트 제도를 활용해 가정에서 에너지절약(전기·수도·가스) 녹색제품 구매, 대중교통 이용 등 녹색생활을 실천할 때 정부와 기업에서 포인트를 제공하는 녹색경제 인프라 정책이다. 쌓인 포인트를 그린카드 가맹점에서 현금처럼 이용할 수 있고, 매월 일정액을 환경보호 등 사회공헌 분야에 자동으로 기부할 수도 있다. 녹색생활 인센티브 정책에 신용카드를 활용한 것은 국민의 대다수가 신용카드를 보유하고 있고, 가맹점 등 인센티브(포인트) 체계 마련에 따른 포인트 활용도가 높기 때문이다.
출시한지 2개월 만에 10만명 이상의 가입자가 생겼다는 것은 온실가스 감축이라는 공익적 목적의 카드가 시장에 안착할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됐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 우리 국민의 녹색생활 참여 의지가 얼마나 높은지 가늠할 수 있는 지표이기도 하다.
그린카드 소지자 300만명이 에너지절약과 녹색제품 구매를 10%만 실천하면 연간 208만톤의 온실가스를 줄일 수 있다. 이는 정부가 7월에 확정한 2020년 정유부문, 제지·목재 및 조선부문 등 산업부문의 온실가스 감축 목표량에 해당되는 양이다. UN·OECD 등 국제기구에서 그린카드 제도 성공에 상당한 관심을 보이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국민은 녹색생활 실천으로 적립된 포인트로 대중교통을 이용하고, 친환경 제품을 구매하는 데 다시 사용할 수 있다. 국민이 녹색제품을 애용할수록 생산업체와 유통업체도 녹색제품 시장 활성화를 위해 노력할 것이다. 이는 곧 국가경제를 녹색제조·녹색유통·녹색소비로 이어지는 녹색경제 선순환을 형성시킬 수 있다.
이제 걸음마를 뗀 그린카드가 가야 할 길은 멀지만, 방향만은 분명하다. 환경부는 그린카드가 우리나라 녹색생활문화 확산을 대표하는 사회·경제적 인프라로 발전할 수 있도록 분야별 인센티브를 강화해 현재 20만원 수준인 혜택을 2013년까지 40만원 수준으로 높일 계획이다. 또 올 하반기까지 그린카드 제도에 참여하는 녹색제품 제조사 및 유통사를 100개 기업으로 확대해, 2010년 28조원이었던 녹색제품 시장규모를 2015년에는 40조원 규모로 확대해 나갈 예정이다. 녹색통장 플러스 이자 지급 등 다양한 녹색 파생 금융상품도 출시해 제조·유통·서비스업과 함께 금융 산업에서도 녹색바람을 일으켜 나갈 것이다.
미리 10만의 군사를 양성해 뜻하지 않은 변란에 대비하고자 했던 율곡 이이의 가르침은 예측할 수 없는 기후변화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주는 시사점이 크다. 그린카드 10만 대군의 의미는 단순한 가입자의 의미를 넘어 전 국민, 더 나아가 세계인의 녹색생활 실천을 이끄는 도화선이 될 것이다. 저탄소 체제로 변화해가는 세계 경제의 흐름 속에서 기업과 정부가 함께 만든 그린카드제는 녹색경제 인프라로서 그 의의가 더욱 크다. 500년이 지난 뒤, 역사는 그린카드를 통해 녹색소비를 실천하는 10만명의 국민을 자랑스럽게 기억하지 않을까.
이재현 환경부 기후대기정책관 jhgabriel@korea.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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