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이 산업 지형을 바꿔 놓았다. 인터넷이 등장하면서 현실 경제와 맞먹는 규모의 사이버 시장이 만들어졌다. IT산업 흐름이 하드웨어에서 애플리케이션과 서비스로 넘어 가는 발판을 마련했다. 인터넷을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분야가 전자상거래다. 또 전자상거래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간판 기업이 ‘이베이’다.
이베이는 전자상거래 역사와 같은 업체다. 가장 오래됐을 뿐 아니라 거래 규모도 상상을 초월한다. 지금 이 순간 이베이 사이트에 접속한 판매자와 구매자만 9700만명에 달한다. 국제전기통신연합(ITU)에 따르면 세계 인터넷 이용자는 대략 20억명. 전체 인터넷 이용 인구의 5% 정도가 항상 이베이 사이트에 접속해 있는 셈이다. 이베이에서 수익을 내는 사람도 2500만명을 훌쩍 넘는다. 사이트에 올라온 상품은 2억개가 넘는다. 이베이에 없는 상품은 세상에 없는 상품이라는 이야기가 절대 과장이 아니다.
지난해 미국 이베이에서 600억개 상품이 거래됐다. 1995년 문을 연 이 후 수많은 전자상거래 사이트가 생겨났지만 여전히 이베이의 위상은 막강하다. 인터넷 공간에 누구도 넘보지 못하는 ‘이베이 왕국’을 건설하는 데 성공했다. ‘인터넷쇼핑 지존’으로 불리는 이베이 성공 스토리의 비결은 무엇일까.
◇혁신의 원동력, 자유로운 업무 환경
미국 캘리포니아주 새너제이 이베이 본사. 잘 꾸며진 아담한 캠퍼스와 같았다. 본사 정문 안내 데스크는 여느 기업과 마찬가지였지만 건물 뒤편은 다른 세상이었다. 여러 건물의 한 가운데 자리 잡은 인공호수가 제일 먼저 눈에 들어왔다. 인공호수에는 금붕어와 자라가 한가로이 노닐고 있었다. 인공호수 주변만 놓고 보면 유원지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캠퍼스가 주는 느낌은 한 마디로 자유로움이었다. 자유로움은 여유를 뜻한다. 여유는 창의력을 북돋우는 자양분이다. 새로운 아이디어를 끊임없이 자극한다. 쇼핑과 경매의 즐거움을 함께 주면서 규모의 경제를 이룬 이베이는 쉼터같은 업무 환경으로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샘솟게 했다. 이베이는 2002년 페이팔을 인수하면서 이곳을 본사로 새로 단장했다. 일에만 집중할 수 있는 최적의 환경을 만드는 데 주력했다는 후문이다.
이베이 토드 코헨 수석부사장은 “혁신적인 아이디어가 나올 수 있는 환경이 중요하다”며 “일하는 직장 보다는 몸과 마음을 편하게 할 수 있는 쉼터라는 느낌을 주어야 한다”고 말했다. 마음껏 상상의 나래를 펼칠 수 있는 자유로운 업무 환경. 바로 이베이의 혁신적인 서비스 아이디어를 만드는 원동력인 셈이다
◇이베이 탄생, 혁신적인 아이디어가 밑거름
지금으로부터 16년 전인 1995년. 미국 노동절 휴일 주말, 컴퓨터 프로그래머인 피에르 오미디아르(이베이 창업자)는 엉뚱한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국경에 관계없이 누구나 접속할 수 있는 마켓플레이스가 생긴다면?” 피에르는 곧바로 실행에 옮겼다. 뚝딱 비즈니스 모델을 만들고 고장 난 레이저포인터를 자신이 만든 경매 사이트에 시험 삼아 올렸다. 놀랍게도 한 수집가가 이를 14달러 83센트에 구입했다. 바로 이것이 상거래 시장을 혁신적으로 바꾸어 놓은 마켓플레이스 ‘이베이’의 탄생이었다.
이베이는 15년 만에 39개국 9000만명 이상의 회원이 사용하는 세계적인 전자상거래 사이트로 올라섰다. 1초에 1900달러어치 상품이 거래될 정도로 거대 장터로 떠올랐다. 국경도, 상품 수도, 구매자와 판매자의 제한도 없는 사이버 공간은 상거래 모델과 궁합이 맞았다.
이베이는 여기에 멈추지 않았다. 인지도를 높인 후 과감한 인수합병에 나섰다. 2002년 이베이 판매자로 페이팔울 선호하는 분위기를 읽어 아예 이를 품안으로 끌어들였다. 페이팔은 전자상거래 전반에 효용성을 더했을 뿐 아니라 새로운 비전을 제시하는 신호탄이었다.
이후 쇼핑닷컴(가격 비교), 스터브허브(티켓 거래), 빌미레이터(전자결제) 등을 연이어 사들이면서 전자상거래와 전자결제 분야의 강자로 떠올랐다. 올해에도 오프라인 유통업체에 온라인상거래 솔루션을 제공하는 지에스아이커머스(GSI)를 인수했다.
◇이베이, 모바일로 영토 확장
이베이의 두 축은 마켓플레이스 ‘이베이’와 전자결제 서비스 ‘페이팔’이다. 이를 중심으로 온라인에서 모바일로 리더십을 새롭게 정립하고 있다. 존 도나호 이베이 회장은 연초 애널리스트데이에서 “유통 트렌드가 변하고 있다”며 “세계 온라인과 오프라인 상거래가 융합(컨버전스)되고 있다”고 진단했다.
유통에서 온라인화는 실제로 거스를 수 없는 대세로 굳어졌다. 포레스터리서치에 따르면 2년 전, 유통 과정에서 전자상거래가 차지했던 비중은 단 4%였다. 올해 조사에 따르면 그 비중이 40%로 점프했다. 유통업체가 소비자에게 상품을 팔기까지 과정 중 거의 절반 가까이를 인터넷에 의존한다는 것이다. 시장과 상품 조사, 상품 검색, 구매, 결제 가운데 최소한 한 곳 이상에서는 인터넷이 빼놓을 수 없는 역할을 하는 셈이다.
온라인에 이은 이베이는 다음 목표는 모바일이다. 온·오프라인 상거래 융합의 핵심을 모바일에서 찾고 있다. 이미 일부에서는 성과를 내고 있다. 이베이 앱은 4500만 다운로드를 기록했다. 이베이 아이폰 앱만 보더라도 190개 국가, 8개 언어로 사용해 상거래 사이트 중에서도 단연 앞서고 있다. 모바일 커머스 매출은 지난해 20억달러에서 올해 40억달러로 두 배 성장을 낙관했다. 이베이 측은 “유통융합이라는 흐름에 필요한 서비스 라인업을 모두 갖췄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페이팔(온라인결제서비스), GSI커머스(랄프로렌·아메리칸이글·HP 등 유명 브랜드와 오프라인 유통업체를 겨냥한 전자상거래 솔루션), 종(Zong·소셜게임, SNS를 위한 모바일 결제 시스템), 마일로(Milo·점포의 재고와 가격을 실시간으로 검색 가능한 재고 추적 전문 쇼핑 검색엔진) 등이 모바일 서비스를 위한 완벽한 포토 폴리오 구축을 끝냈다는 것이다.
새너제이(미국)=
<인터뷰> 토드 코헨 수석부사장
“한국은 이베이 혁신을 위한 지렛대와 같은 나라입니다.” 토드 코헨 이베이 수석부사장은 “전자상거래에서 앞서가는 나라 가운데 하나가 바로 한국”이라며 “이베이 혁신 사례는 한국에서 대부분 제안했으며 본사는 다시 이를 이베이가 진출한 다른 나라로 전파할 정도로 혁신성이 뛰어나다”고 말했다.
“이베이의 강점은 실물 상거래와 달리 거래 장벽이 없다는 점입니다. 별다른 제약 없이 개인이 세계를 상대로 구매와 판매가 가능합니다. 여기서 중요한 게 바로 거래 허브입니다. 한국은 인프라·기술·시장 규모 등 모든 면에서 허브 지역으로 손색이 없는 나라입니다.”
코헨 부사장은 “지난 2년 동안 한국 판매자가 세계를 무대로 거래한 규모가 2배 이상 늘었다”고 말했다. 덕분에 한국 이베이 사이트도 괄목 성장했다. “한국 이베이는 마켓플레이스 거래 규모 면에서 미국, 독일, 영국에 이어 4위입니다. 2001년 옥션, 2009년에 지마켓을 인수할 정도로 관심이 높습니다. 이베이 아태 지역사무소 본부도 한국에 두고 있습니다. 지마켓과 옥션의 거래 규모도 온오프라인을 통틀어 이마트, 롯데마트, 홈플러스에 이어 4위에 올라섰습니다.”
코헨 부사장은 전자상거래 흐름과 관련해서는 ‘모바일 혁명’이 일어날 것이라고 예측했다. “온라인과 오프라인 장벽은 이미 허물어졌습니다. 앞으로 온라인과 모바일 간 경계도 사실상 의미가 없어집니다. 변화의 속도 자체도 예상했던 것보다도 빠르게 진행 중입니다. 앞으로 5년 이내에 모바일 시스템으로 상거래 플랫폼이 대부분 이동할 것입니다.”
코헨 부사장은 당면한 숙제는 “모바일 플랫폼 쉽게 이용하는 환경을 마련하는 데 있다”며 “더 쉽고 간편한 인터페이스 개발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강조했다.
◆존 도나호 회장이 보는 전자상거래 미래
존 도나호 이베이 회장이 보는 전자상거래 미래는 명쾌하다. 5년 이내에 모바일·온라인·오프라인 상거래의 벽이 허물어진다고 예측했다. 한 마디로 거래 과정이 아니라 그냥 상품을 사고파는 ‘상거래’만 존재한다는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MLSD’라는 4가지 트렌드를 제시했다. 먼저 미래 쇼핑은 컴퓨터 앞이 아닌 스마트폰이나 스마트패드(태블릿PC)로 쇼핑하는 시대(모바일·Mobile)가 열린다. 또 모바일 기기 영향을 받아 쇼핑 외에 상품 추천과 가격 비교와 같은 쇼핑과 관련된 여러 활동이 활발히 이뤄진다. 이를 ‘로컬(Local)’이라는 키워드로 정리했다. 이밖에 페이스북 등 SNS를 통해 직·간접적으로 쇼핑에 영향을 주고받는 한편(소셜·Social), 레스토랑 이용권, 게임아이템, 음원과 같은 디지털 상품의 판매와 구매가 활성화(디지털·Digital)한다고 예측했다.
<표1> 이베이 연혁
1995년- 이베이 창립자 피에르 오미디아르 ‘옥션웹’ 오픈, 이후 이베이로 사명 변경
1998년- 맥 휘트먼 CEO 영입, 나스닥 등록
2000년- 전자상거래 1위 사이트 등극
2001년- 옥션 지분 인수(50%)
2002년- 페이팔 인수
2006년- 페이팔 모바일 애플리케이션 서비스
2008년- 존 도나호 CEO 취임, IT기업 첫 미국 기술혁신 훈장 수상
2009년- 포춘지 선정, ‘100대 일하기 좋은 기업’ 2년 연속 수상, G마켓 인수
2010년- 이베이 거래금액 620억 달러, 전세계 활동회원 9450만명 기록
2011년- 온오프라인 유통 융합시대 선포
<표2> 이베이 매출 성장 현황(단위, 100만 달러)
<표3> 주요 경영지표(2010년 기준, 단위 100만 달러)
강병준기자 bjkang@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