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여 년 전, 닷컴 붐이 한창이던 때 일이다. 당시엔 벤처기업 흉내만 내도 수십억원에서 많게는 수백억원까지 투자받을 수 있었다.
벤처캐피털이나 개인투자 등 민간의 ‘묻지마’식 투자만이 아니다. 오히려 ‘눈먼 돈’은 정부와 공공기관 쪽에 더 많았다. 각종 연구개발(R&D) 지원자금과 시범사업, 채권담보부증권(P-CBO) 등 공공부문에도 먹잇감이 수두룩했다.
정부와 민간에서 흘러 다닌 이런 눈먼 돈으로 탄생한 기업 대부분이 결국엔 망했다. 이런 저런 이유로 감옥까지 다녀온 최고경영자(CEO)들도 있다. 이 중 아직까지도 문을 닫지 않고 정부 지원금으로 하루하루 버티는 ‘좀비(zombie)’ 기업이나 ‘묻지 마’ 투자의 유혹을 버리지 못한 ‘무늬만 벤처’인 기업들도 있다. 정부 지원금에 의존한 댓가다.
‘정부 품안에 들어가는 것이 곧 무덤으로 걸어가는 지름길’이라는 것은 성공 벤처기업 CEO들 모두가 인정하는 불문율이다. 주변을 둘러봐도, 정부 지원으로 훌륭하게 성장한 벤처기업을 찾아보기는 어렵다.
그런데도 최근 ‘국민과의 대화’에서 이명박 대통령은 “청년 창업이 실업을 해소하고 일자리도 만들 수 있다”라며 “당장 내일이라도 청와대, 지식경제부, 중소기업청 인터넷에 들어가 무엇을 창업하면 좋을지 상담하면 된다”고 말했다. 우리 젊은이들에게 일자리 창출을 위한 해법으로 창업을 추천하면서 ‘정부 도움을 받으라’는 현실적인(?) 해법까지 제시한 것이다.
하지만 젊은이들의 도전이 필요한 ‘청년 창업’은 정부 의지대로 쉽게 풀릴 문제가 아니다. 대한민국 청년들은 이미 창업의 꿈을 접은 지 오래다. 학생들은 창업보다 취업을 선호한다. 대학 입학과 동시에 공무원 시험과 대기업 입사가 1순위 목표다. 이공학도 조차 엔지니어의 길을 가려 하기보다 로스쿨이나 MBA를 기웃거린다.
창업에 목을 매는 것은 청년들이 아니라 오히려, 40·50대 퇴직자들이다. 취업포털 커리어가 직장인 376명에게 설문한 결과, 53.2%가 일터에 다니면서도 별도 사업아이템을 찾거나 창업 정보를 수시로 모으는 등 ‘창업 강박증’에 시달린다. 20·30대 벤처기업 CEO 비중은 10년 전 56%에서 17% 수준까지 줄었다. 그 빈자리를 40·50대 생계형 창업자들이 채운다.
취업은 어렵고, 직장이 마음에 안 들어 창업한다고 해서 문제는 끝나지 않는다. 확률적으로 따져 봐도, 창업은 취업이나 직장생활보다 실패할 가능성이 월등히 높다. 회사를 운영하다 보면, ‘사람은 제대로 구할 수 있을까?’ ‘자금이 떨어지면 어떻게 하나?’ ‘연대보증을 섰다가 자칫 신용불량자가 되면 어쩌나?’ 등 걱정할 일이 태산이다. 공무원들과 머리를 맞댄다고 해서 뾰족한 해법이 나올 리 만무하다. 회사가 어려울 때마다 청와대가 직접 나서 도와 줄 수도 없는 노릇이다. 누군가 뭉칫돈을 뿌려가며 도와준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결국, 새로운 생태계가 필요하고 기업가 정신이 다시 살아나지 않고는 다른 도리가 없다. 이런 현실적인 어려움은 정부 스스로도 충분히 알고 있다. 대통령이 국민들 앞에 직접 나서 “창업에 실패해도 재기하도록 두 번, 세 번 지원하겠다”라며 “(창업자가) 세계적인 경쟁력을 가진 기술을 만들어도, 대기업에 빼앗길까 걱정하는 데 우리가 그것을 철저히 지켜주겠다”고 약속한 것도 이 때문이다.
예로부터 ‘가난은 나랏님도 구제할 수 없다’는 속담이 있다. 취업과 창업 문제 역시 나랏님도 어쩔 수 없는 풀기 어려운 숙제다.
주상돈 경제정책부 부국장 sdjoo@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