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사인 볼트가 2011년 대구세계육상선수권대회 100m 결승 경기에서 실격 당했을 때다. 그가 머리를 감싸 쥐고 괴로워하는 순간 모니터를 보고 있던 전현종 올레미디어스튜디오(OMS) 제작기술팀장은 등 뒤에 서 있던 여성들이 호들갑을 떨며 하는 말을 들었다. “어머어머, 저 갈비뼈 불거지는 것 좀봐.”
당시 TV 모니터에서는 3차원(D) 입체영상이 생방송으로 중계되고 있었다. 선수의 근육 움직임, 뼈 모양까지 생생하게 전해지는 화면을 넋을 잃고 바라보다 얼떨결에 나온 말이었다.
대구 육상대회에서는 3D 화면이 위성방송 스카이3D 채널을 통해 생방송으로 송출됐다. 국내에서 처음 시도된 일이다. 우리나라에서 3D 방송을 제작한 건 2년이 채 안 된다. 짧은 시간에 3D 생방송을 하는 쾌거를 이뤄내게 한 주역들을 찾았다.
서울 양천구 목동에 위치한 OMS에 도착하니 강성욱 한국HD방송 3D제작사업국장, 전현종 OMS 제작기술팀장, 전장혁 OMS 기술감독, 심언혜 KT스카이라이프 3D사업팀 과장이 기자를 맞았다. “다른 팀원들은 출장을 갔다”는 말에는 바쁘게 돌아가는 팀원들의 일상이 묻어났다.
3D 생중계 시스템 구성에는 총 11명이 투입된다. 제작·기술총괄·비디오에 각각 한 명씩 배치된다. 풀러(3D화면 조정)와 리그(카메라 거치대) 엔지니어는 각각 3명이다. 시스템 운행을 2명이 맡는다.
이 팀은 지난해에만 총 80시간 분량 3D 방송을 만들어 냈다. 3D 최정예 군단이자 국내 유일 3D 생중계 팀이다. 지금 스카이라이프 위성방송 스카이3D 채널에서는 이들이 제작한 ‘3D 리얼골프 레슨’ ‘3D 파노라마 코리아’ 등이 방영되고 있다. 지난해 10월에는 격투기 경기 K1을 3D로 제작해 일본에 위성으로 생방송하기도 했다.
한국HD방송에서 3D 전문팀을 꾸린 건 지난해 6월. 7~8년차 고선명(HD) 방송 제작 전문가들이 미국 3D 방송 전문회사 3얼리티에서 연수를 받았다. 돌아와서는 곧바로 현장에 투입됐다.
“지난해 중순 팀에 투입된 후에 12월 31일까지 하루도 못 쉬었다고 보면 된다.” 전장혁 감독은 고단했던 지난해를 회상했다. “하지만 교육받을 때보다 현장에서 부딪히면서 배우는 게 훨씬 많았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80시간 분량을 찍으려면 일반 2D 고선명(HD) 화면을 만들 때보다 많게는 8배 이상 시간이 걸린다. 일일이 입체 값을 조정하고 편집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동안 이들이 쌓은 3D 노하우는 어마어마하다. 지난해 대구 육상경기를 중계할 때까지만 해도 3D 화면을 보고 어지러움을 호소하는 사람이 꽤 있었다. 올해 이런 민원이 사라졌다. 작년에는 3D 중계를 위해 3얼리티 스태프들이 국내에 파견됐다. 이번에는 KBS·한국HD방송 연합체에서 모든 걸 소화했다. 3D카메라도 총 5대로, 지난해보다 한 대 줄었지만 적재적소에 배치, 오히려 더 생동감 있는 화면을 잡아냈다. 강성욱 국장은 “이제는 기술적으로 3D 화면을 어떻게 구현하는지보다 어떤 스토리를 짜내느냐가 화두가 됐다”며 기술의 진전을 설명했다. 악기 연주자가 연습량이 쌓이면 감정을 전달하고 자유자재로 음악을 변형하는 게 가능해지듯 방송 기술이 무르익으면 시청자가 화면 질감을 신경 쓰지 않고 스토리 자체에 몰입할 수 있게 한다.
스카이3D에서 재방송되고 있는 대구 육상대회를 감상해봤다. 선수들이 뛸 때는 가쁜 호흡이 느껴지는 것 같고, 땀과 눈물을 흘리는 선수들도 바로 내 눈앞의 공간에 서 있는 것 같다. 이 팀이 이뤄낸 건 ‘3D제작기술’이 아니라 ‘화면 속 인물과 시청자가 나누는 공감의 미학’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오은지기자 onz@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