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조적 파괴자 시대 저물다

관련 통계자료 다운로드 스티브 잡스와 애플이 걸어온 길

 사생아로 태어나 입양됐다. 초등학교 때는 학교를 빼먹기 일쑤였고, 대학 시절 마리화나에도 손을 댔다. 스물 셋에 여자 친구를 임신시켰고, 자퇴한 대학에서 18개월이나 머물며 서체공부에 심취했다. 인도 여행 후 명상에 빠졌으며, 지독한 채식주의자다.

 요절한 록스타나 영화배우의 젊은 시절이 아니다. 전 세계인의 찬사와 탄식을 동시에 받으며 떠나는 애플의 전 CEO 스티브 잡스의 젊은 날이다. 자신이 만든 애플에서 1985년 쫓겨난 후 12년 만에 돌아오기까지 그의 인생은 성공적인 CEO의 전형과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그를 비꼬는 사람들은 그가 독선적이고, 통제적이라고 폄하하기도 한다. 하지만 라이벌인 구글의 CEO인 에릭 슈미츠조차 “역사상 가장 훌륭한 리더 중 한명”이라 칭송할 만큼 잡스의 리더십과 창조력은 강력하다.

 ◇순탄하지 않은 시기, 열정으로 극복했다=1976년 애플의 공동 창업자 워즈니악과 애플의 첫 PC 애플1을 개발하고 80년 애플을 상장한 이후까지 스티브 잡스는 승승장구했다. 젊은 백만장자이면서 스타로 주목받았지만 1985년 그는 위기를 겪는다. 1984년 그가 영입한 펩시 전 CEO 존 스컬리가 애플의 CEO가 되면서 스티브 잡스는 애플을 떠나야만 했다.

 한동안 방황하던 잡스는 넥스트(Next)를 창업, 새로운 운용체계(OS)를 개발해 제기의 발판을 마련했다. 그리고 조지 루카스 감독의 컴퓨터 그래픽 회사를 인수, 세계 최고의 애니메이션 회사‘픽사’를 탄생시켰다.

 1996년 위기의 애플이 넥스트 컴퓨터를 인수하며 잡스는 애플로 돌아왔고, 1997년 CEO로 복귀했다. 12년 만의 일이었다. 그리고 1년 만에 10억달러 적자를 안고 있던 애플을 4억달러 흑자를 내는 기업으로 변모시켰다. 이때부터 그는 본격적으로 애플의 성공신화를 차근차근 써내려갔다.

 그가 위기를 극복한 힘은 열정이었다. 자신이 만든 회사에서 쫓겨났지만 애플을 사랑했기에 컴퓨터와 관련한 일을 떠나지 못했던 것이다.

 2005년 그가 스탠퍼드 대학 졸업식에 한 “매일을 네 생의 마지막 날인 것처럼 살라”는 연설은 그가 삶을 사는 태도를 잘 대변한다.

 ◇세상을 바꾸는 꿈, 사람들을 감동시켰다=애플이 아이맥을 출시하면서 광고 카피로 내세운 ‘다르게 생각하라(Think different)’는 그의 가치관을 잘 대변하는 말이다.

 스티브 잡스는 좀처럼 작은 혁신에 감동받지 않는 인물로 알려져 있다. 그가 새로운 아이디어나 제품을 평가하는 방식은 ‘미친 듯 대단한 것’ 아니면 ‘쓰레기’다. 세상을 놀랠 수준의 제품이 아니라면 잡스에게는 의미가 없다는 뜻이다. 이는 잡스의 지향점과도 맞닿아 있다. 그는 다른 CEO들처럼 수익을 많이 내거나 기술적으로 뛰어난 제품을 만드는 것 이상을 지향한다. 1989년 픽사 시절 스티브 잡스를 만난 파멜라 커윈은 “잡스가 원하는 건 자신이 하는 일이 이 세상 전체에 엄청난 영향을 미치는 것”이라고 말했다.

 애플을 상징하는 참신한 디자인도 그렇게 시작됐다. 왜 사람들이 투박한 PC를 집에 두려하지 않는지에 대한 고민에서 ‘미치도록 대단한’ 디자인을 추구해 지금의 흰색 PC가 탄생할 수 있었다.

 ◇무자비한 완벽주의자=청바지에 검은 터틀넥을 입은 스티브 잡스가 등장하면 전 세계의 잡스팬들은 열광한다. 그의 프리젠테이션 방식만 따로 다룬 책이 있을 정도로 그가 애플의 신제품을 소개하는 모습은 군더더기 없고, 깔끔하다.

 애플의 제품들 역시 마찬가지다. 그는 사람들의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완벽한 제품으로 만드는 것에 열광하는 인물이다. 사용자에게 조금이라도 불편함이 있으면 그는 안된다고 말했다. 이런 완벽주의는 애플이란 기업과 직업에 대한 통제로도 이어졌다.

 스티브 잡스가 무의미한 일을 한다고 여겨지는 직원이 있으면 무자비하게 해고했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애플의 직원들은 누구나 비밀 엄수 서약을 해야 하고, 이는 퇴사 후에도 유효하다. 심지어 직원들은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해서도 완벽하게 알지 못하고, 숫자와 암호로 된 지시만을 받아야만 했다. 애플이 개발하는 신제품을 오롯이 통제할 수 있는 것은 오직 잡스뿐이었다.


이수운기자 pero@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