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폰 등장은 스마트폰 시대를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애플 CEO인 스티브 잡스는 복합적이고 다기능적인 IT기기인 아이폰을 소비자들이 직관적으로 편리하게 사용하기를 원했다. 이를 구현할 입력장치로 키패드나 옵티컬 패드가 아닌 터치스크린패널(TSP)을 선택했다. 애플 아이폰의 폭발적인 인기에 따라 대다수 휴대폰 업체들이 TSP를 입력장치로 채택, 터치 기술은 모바일 시장 대세 기술로 자리매김했다.
20세기 중반 군사용 기술로 개발돼 21세기 초까지 제한적으로만 사용됐던 터치 기술이 드디어 빛을 보는 순간이었다. 시장조사업체 디스플레이뱅크에 따르면 올해 터치스크린패널(TSP) 시장은 104억2000만달러 규모로 지난해보다 76% 성장할 전망이다. TSP가 모니터와 TV에도 적용된다면 반도체·LCD 시장 못지않은 거대 시장이 또 하나 형성되는 셈이다.
◇ 위기의 한국 TSP 산업=2008년 삼성·LG 등 국내 휴대폰 업체가 스마트폰 개발에 뛰어들면서 국내 TSP산업도 본격적인 성장기에 돌입했다. 멜파스·이엘케이·에스맥 등 TSP업체는 2008년 연매출 300억~400억원에 불과했지만, 올해는 3000억원 매출을 바라보는 중견기업으로 성장했다.
그러나 최근 시장 상황은 녹록하지 않다. 여전히 핵심 소재를 일본·대만 업체들에 의존하고 있고, 패널 부문에서도 해외 기업들의 공세가 거세다. 디스플레이 산업의 절대 강자인 우리나라가 부상하는 터치스크린패널(TSP) 시장에서는 오히려 대만 업체들에 안방마저 내줄 처지에 놓여있다. 디스플레이 산업 자체 경쟁력 악화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마저 나온다. 일본 스미토모화학은 내년 1분기 양산을 목표로 자회사인 동우화인켐 평택공장 부지에 190억엔(2500억원)을 들여 TSP 생산 설비를 구축하고 있다. 윈텍·신텍 등 대만 TSP 업체는 인듐주석산화물(ITO) 글라스 터치스크린 제품과 완전 커버유리 일체형 터치스크린(G1M)을 앞세워 국내 시장을 적극 공략하고 있다. LG전자·모토로라 등은 이미 옵티머스 2X, 줌 등 일부 신제품 모델에 대만 윈텍의 ITO 글라스 터치스크린을 적용 중이다. LG전자는 하반기 출시하는 4.5인치 전략 스마트폰에도 윈텍 터치스크린을 채택하기로 했다. 국내 터치 전문가인 김홍채 트레이스 부사장은 “휴대폰 두께와 디스플레이 투과율이 중요하게 생각되면서 국내 필름 타입 TSP업체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면서 “커버유리 일체형 터치 등 신기술로 시장 주도권을 다시 가져와야 한다”고 말했다.
◇일체형 터치로 주도권 탈환 노리는 국내 TSP업계=올해 국내 TSP업계 핵심 화두는 일체형 터치 기술이었다. 멜파스·이엘케이 등 TSP 전문업체는 물론이고 삼성·LG 등 대기업도 계열사를 통해 일체형 터치 기술 확보에 주력하고 있다.
디스플레이 일체형 터치 부문에서는 삼성모바일디스플레이(SMD)가 삼성전자 휴대폰에 AM OLED 일체형 터치를 독점 공급하면서 세계 시장을 주도하고 있다. 그러나 커버유리 일체형 터치는 올 상반기 실적이 저조한 상황이다.
커버유리 일체형 터치가 적용된 웨이브2 등 전략 모델들이 스마트폰 시장에서 기대 이하의 실적을 기록했고 공정 수율 안정화가 늦어져 삼성전자 스마트패드(태블릿PC) 모델인 갤럭시탭 적용도 난항을 겪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국내 TSP 업체들은 공정 수율 개선으로 생산성을 높여 하반기 스마트 기기 시장 공략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삼성광통신은 기존 하이브리드 제품보다 기술 수준이 훨씬 높은 완전 커버유리 일체형 터치 양산을 위해 310억원을 투자해 올 하반기 양산에 돌입한다. 커버유리 일체형 터치 기술의 선두주자인 멜파스도 최근 공정 수율을 높여 하반기 물량확보를 위한 공격적인 영업에 착수했다.
이봉우 멜파스 사장은 “그동안 커버유리 일체형 터치의 고질적인 문제였던 수율 문제를 상당 부분 개선했다”면서 “상반기는 커버유리 일체형 터치 기술 적용이 예상보다 저조했지만 하반기에는 완전히 다른 모습을 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소재 국산화, 터치 기술 강국 되기 위한 필요조건=최근 중견 부품·소재 기업들이 TSP시장에 진입하면서 외산 소재 대체 움직임이 활발해지고 있다. 국내 주요 연성회로기판(FPCB) 업체들은 TSP의 전극 역할을 하는 인듐주석산화물(ITO) 필름 에칭(반도체 공정을 적용해 회로를 새기는 기술) 사업에 잇따라 진출하고 있다. ITO 필름 원단에 에칭으로 패턴을 형성한 후 TSP업체에 공급하는 중간가공 사업이다. 지금까지 ITO 필름 중간가공은 일본 니샤·대만 영패스트 등이 독점해왔다. 지난해 하반기 ITO 필름 사업에 착수한 SI플렉스는 올해 200억원 수준의 매출을 기대하고 있다. 또 다른 FPCB 업체인 인터플렉스도 최근 ITO 필름 사업에 신규 투자를 진행 중이다. ITO글라스 및 커버 유리 일체형 터치(G1F)를 가공하는 업체들도 생겨나면서 국내 업계가 취약했던 ITO 글라스 TSP 기술 발전도 빠른 속도로 이루어지고 있다. 그동안 ITO 글라스 TSP는 애플 제품을 공급해온 대만기업이 월등히 앞선 분야였다. 한화L&C·유아이디 등 국내 업체가 최근 ITO 글라스 및 커버유리 ITO 코팅 사업에 진출하면서 국내 패널 업체들도 ITO 글라스 TSP를 제조할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됐다. 중견 화학 업체들이 TSP 시장에 참여하면서 ITO 필름 방식의 TSP 베젤을 크게 줄일 수 있는 독자 기술도 개발되고 있다. 동진쎄미켐은 최근 ‘그라비아 오프셋’ 기술로 인쇄 공정의 미세 패턴 가능성을 열었다. 그라비아 오프셋은 원래 전자파 차폐용으로 개발된 공정 기술이지만 TSP 베젤에도 적용 가능하다. 기존 전자인쇄 공정으로는 통상 100㎛ 내외 수준의 베젤 선폭을 구현할 수 있지만, 그라비아 오프셋 기술로는 50㎛까지 만들어낼 수 있다.
중소 소재 업체들도 특화된 영역에서 자체 기술로 틈새시장을 개척하면서 국내 TSP 경쟁력을 높이는 데 일조하고 있다.
중견 PCB 업체 한 임원은 “외산 의존도가 높은 IT 시장을 역으로 생각하면 국내 소재 업체들에 기회가 많은 곳이라고 볼 수 있다”면서 “TSP 시장 규모가 커질수록 국내 소재업체들의 진출은 더욱 가속화될 것”이라고 말했다.
<박스> LCD 일체형 터치 국산 기술로 가능해질까?
최근 국내 한 벤처기업이 LCD 일체형 터치스크린을 세계 최초로 개발해 관심을 모았다. 지투터치가 그 주인공이다. 그동안 디스플레이 일체형 터치스크린은 AM OLED만 구현할 수 있어 삼성전자가 세계 스마트폰 업체 중 유일하게 독점 적용해왔다.
LCD 일체형 터치 상용화 길이 열린다면, 애플이 아이폰4에 채택한 레티나 디스플레이에도 일체형 터치를 얹을 수 있게 된다. 기존 기술로는 AM OLED에만 디스플레이 일체형 터치스크린을 구현할 수 있다. LCD는 컬러필터에서 다량의 노이즈가 발생해 일체형으로 만들면 손가락 신호 자체를 감지하지 못하는 문제 때문이다.
이성호 지투터치 사장은 “LCD에서 발생하는 노이즈와 상관없이 손가락 신호를 인식할 수 있는 알고리즘을 개발해 기존 LCD 일체형 터치의 문제점을 해결했다”고 설명했다.
이 기술이 획기적이기는 하지만, 스마트폰에 본격적으로 적용되기까지는 많은 검증 단계가 필요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만약 이 기술이 국산 휴대폰에 적용된다면 삼성전자와 애플이 촉발한 스마트폰 ‘두께 경쟁’에서 국내 업체들이 주도권을 확보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다. 또 세계 LCD 시장의 50%를 점유하고 있는 우리나라가 TSP 부문에서는 대만에 밀리는 현재 상황을 반전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표>터치스크린패널 수량 연간 추이(단위 : 백만대)
*자료 : 디스플레이뱅크
<표2> 휴대폰 및 터치폰 시장 추이(단위 : 백만대)
*자료 : 디스플레이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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