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 르네상스] 속도경쟁에서 추락한 기업들

 글로벌 IT 공룡들도 결국 ‘속도전’에서 뼈아픈 실패를 경험했다. 노키아, MS, HP 등은 현실에 안주한 채 시장 변화를 따라잡지 못해 수모를 겪고 있다.

 점유율 40%를 자랑하던 세계 최대 휴대폰 제조기업 노키아는 15년 만에 적자를 기록하며 최악의 부진에 빠졌다. 노키아는 2~3년 사이에 스마트폰 위주로 급변하는 시장을 따라잡지 못해 급속도로 몰락하고 있다. 두껍고 무거우며 기능이 단순한 노키아의 중저가 스마트폰은 세련된 고성능 제품과 경쟁이 되지 않는다. 결국 노키아는 자존심이었던 자사 운용체계(OS) 심비안을 버리고 마이크로소프트(MS)의 윈도폰 OS를 쓰기로 했지만 하반기 전망 역시 불투명하다.

MS 굴욕은 15년 만에 찾아왔다. 올해 5월, IBM 시가총액이 1996년 이후 15년 만에 MS를 추월한 것. MS는 1년 전 애플에 1위 자리를 내준 데 이어 2위 자리마저 IBM에 빼앗겼다. MS는 여전히 OS 시장을 지배하고 있지만 인터넷 광고 시장은 구글에, 스마트폰과 스마트패드 시장은 애플에 내줬다. 페이스북과 트위터 등에 밀려 새로운 인터넷 서비스를 내놓는 데도 실패했다.

 RIM는 올해 세계 직원을 대상으로 11%에 해당하는 2000명을 해고할 예정이다. 이는 지난 1분기 영업이익이 10% 줄고 시장 점유율도 5% 하락하는 등 저조한 실적 때문이다. 올들어 주식시장에서 RIM의 주가는 절반으로 떨어졌다. RIM의 부진은 시장에서 먼저 ‘치고 나가는’ 강력한 한 방이 없었기 때문이다. 애플 ‘아이패드’에 대항해 ‘플레이북’을 내놓는 등 단순 방어에만 급급했다는 분석이다.

PC부문 세계 1위 업체인 HP는 일반 소비자 시장에서 손을 뗀다. 10년 전 인수한 컴팩과 지난해 인수한 스마트폰 업체 팜의 인수도 결국 실패로 끝났다. HP의 매출 3분의 1을 차지했던 PC사업은 월 평균 3% 이상 매출이 하락했다. HP의 PC 사업 부진은 에이서, 아수스 등의 중국 업체들이 가격 공세에 나서며 이익률이 급감했다. 노트북 시장에서도 프리미엄 제품 경우 애플에게 치이고 중저가 제품은 중국과 대만 업체에게 시장 점유율을 내줘야 했다. 팜 인수 후 의욕적으로 내밀었던 터치패드는 실패했고, 웹OS를 탑재한 2종의 스마트폰 역시 부진했다.

 한국에서 비슷한 양상이 벌어지고 있다. NHN, 옥션 등 IT대기업들은 모바일 환경변화를 직시하지 못하고 뒤쳐졌다. 그 결과 NHN은 카카오톡, 옥션은 티켓몬스터 등 동종 분야 벤처 기업에게 밀렸다.

 NHN은 지난 수년간 신수종사업을 찾지 못해 성장세는 크게 둔화돼 있는 상태다. 특히 카카오톡의 대항마로 야심차게 내놓은 모바일 메신저 ‘네이버톡’도 회원 수가 다음의 마이피플에도 크게 밀리면서 애물단지로 전락할 위기에 놓였다.

 옥션도 마찬가지다. 인터넷몰 업계 전통의 강호인 옥션은 ‘소셜쇼핑’이라는 새로운 모델을 국내에 도입해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티켓몬스터에 상당부문 트래픽을 내줬다. 랭키닷컴에 따르면 최근 티켓몬스터 트래픽은 인터넷몰 부문에서 5위까지 올라올 정도다. 소셜쇼핑은 옥션 같은 오픈마켓과 판매 상품이 겹치는데다 새로운 상품이 매일 쏟아져 나오는 특성 때문에 빠른 변화를 좋아하는 소비자 이목을 끌고 있다.

허정윤기자 jyhur@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