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일본 대지진 참사는 엄청난 인명과 재산 피해를 입혔습니다. 사회기반 시설도 큰 타격을 입었는데, 가장 염려했던 일이 전력 수급 문제였습니다.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들이 가동을 멈추면서 일본의 가정과 기업들 모두가 비상이 걸렸었지요. 특히 전력 수요가 많은 여름철을 앞두고 걱정이 이만저만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대국민 홍보를 통해 미리 대비한 덕분인지 지난달 일본의 전력 예비율은 10% 이상을 유지했습니다. 전력 예비율은 전력의 수급 상태를 나타내는 지표입니다. 6% 이하로 내려가면 정전이나 제한 송전 사태까지 빚어질 수 있지요.
우리나라에서도 지난 1월 17일 7314만㎾의 최대 전력 수요를 기록하면서 전력 예비율이 5.5%까지 떨어진 적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전력 수요가 많지 않은 기간에 저장해뒀다가 전력 수요가 집중되는 시기에 여유분을 쓸 수는 없을까요? 휴대폰이나 소형 가전제품이라면 배터리나 충전지로 얼마든지 가능하지요. 그러나 한 가정, 나아가 지역 사회나 국가 전체의 전력 수요를 생각한다면 사정은 달라집니다. 미래 친환경 기술로 주목받는 에너지저장시스템(ESS)이 바로 그 해법입니다.
Q:ESS가 무엇이고, 왜 중요한가요?
A:ESS는 생산된 전력을 발전소와 변전소, 송전소 등에 저장했다가 전력이 가장 필요한 시기와 지역에 공급해 에너지 효율을 높일 수 있는 시스템입니다. 휴대폰이나 노트북에 사용하는 리튬이온 전지와 다른 점은 대규모 전력을 저장할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ESS는 전력 수요가 비교적 적은 야간 시간대와 봄·가을철의 유휴 전력을 저장했다가 수요가 몰리는 주간과 여름·겨울철에 사용함으로써 전력 운영을 최적화할 수 있습니다. 지난 1월 여수산업단지 정전 사태와 같은 비상시에 유용하지요. 특히 태양광·풍력 등 신재생 에너지가 우리 일상 생활에 확산되는 미래에는 ESS가 더 중요해집니다. 신재생 에너지원들은 기본적으로 발전량과 발전 시점이 불규칙해 전력 안정화 기술이 필수적이기 때문입니다. ESS는 말 그대로 똑똑한 전력 환경인 스마트그리드 시대의 핵심 요소인 셈입니다.
Q:ESS의 기술 종류에는 어떤 것들이 있나요?
A:흔히 접할 수 있는 리튬이온 전지도 일종의 ESS입니다. 에너지 효율이 높다는 게 장점이지만 안전성과 수명, 높은 비용이 흠입니다. 나트륨황(NaS) 전지는 300~350℃의 고온 상태에서 나트륨 이온이 전해질을 이동하면서 전위차를 발생시키는 기술입니다. 대용량화가 용이하고 낮은 비용이 매력이나 에너지 효율이 낮은 게 단점입니다. 레독스흐름전지(RFB)는 전해액내 이온들의 산화·환원 전위차를 이용해 전기 에너지를 만들어내는 원리입니다. 대용량화와 긴 수명이 돋보이지만 역시 에너지 효율이 낮습니다. 이밖에 수퍼 커패시터나 플라일 휠, 압축공기 저장시스템 등 여러 가지 ESS 기술들이 있지만 어느 것 하나 아직은 완벽한 수준은 아닙니다. 에너지 효율과 안전성, 수명, 비용, 대용량화 등에서 모든 것을 충족시킬 수 있는 기술이 등장하려면 좀 더 시간이 필요해 보입니다.
Q:현재 ESS가 설치된 사례들과 세계적인 동향은 어떤가요?
A:미국과 일본 같은 선진국들이 앞서 연구개발과 다양한 실증사업을 벌이고 있습니다. 작년 한해에만 세계적으로 850㎿급의 ESS 저장용량이 설치됐고, 전체 시장 규모는 벌써 2조원을 넘어섰습니다. 심지어 미국 캘리포니아주에서는 전력 회사의 ESS 설치를 의무화하는 법안을 지난해 9월 통과시키기도 했습니다. 일본은 NaS 전지와 리튬이온 전지 등에서 앞선 기술력을 보유하고 있고, 유럽의 프랑스와 독일은 공동 국책 과제로 지난 2008년부터 ‘솔리온’이라는 대형 ESS 프로젝트를 추진 중입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제주도 스마트그리드 실증단지와 대구시 100가구 시범 지역에서 ESS 실증 사업을 진행하고 있지만 아직은 걸음마에 불과합니다. 두 지역의 ESS 용량을 합쳐도 15㎾h급에 그치고 있기 때문입니다.
Q:ESS 산업 육성을 위해 국가적인 대책은 있나요?
A:정부는 지난 5월 ‘K-ESS 2020’이라는 중장기 비전을 내놨습니다. 오는 2020년까지 전국에 1700㎿급의 ESS를 보급하고, 산업적으로는 세계 3대 ESS 강국으로 도약하겠다는 야심찬 목표입니다. 이를 위해 ESS 관련 기술개발과 투자를 확대하고 실증사업을 통한 산업화를 촉진하기 위한 다양한 지원책을 추진할 계획입니다.
서한기자 hseo@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