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화수칼럼]고졸 사회학

 ‘붐’이라 할 만하다. 금융권을 시작으로 대기업으로 들불처럼 번진다. 너도나도 고졸자를 뽑겠다고 난리다. 정작 특성화고 학생들은 갑작스런 환대가 당황스럽다. 갑작스러운 환대다. 대학 가려다 취업으로 돌리는 학생도 있다고 한다. 중3 성적이 상위권이 아니면 서울공고나 서울여상에 지원할 수 없던 30여 년 전 영광을 되찾는 것인가. 결론부터 말하면 아니다. ‘학벌=능력’이라는 인식 틀을 획기적으로 깨지 않는 한 일시적인 ’이상 현상’일 뿐이다.

 금융위원회는 지난 22일 제2금융권 관계자를 모아 고졸자 채용 계획 제출을 주문했다. 금융위는 강제 할당이 아니라고 했으나 곧이곧대로 믿는 이가 많지 않다. 이틀 전, 이명박 대통령은 기업은행의 고졸 신입 행원들을 만나 격려했기 때문이다. 은행에 국한됐던 고졸 채용 계획 발표가 이날 이후 대기업에서 쏟아져 나왔다. ‘반값 등록금’ 논란을 희석하려는 정치적 꼼수라니, 대기업의 눈치보기라니 폄훼가 잇따랐다.

 이게 사실일지라도 ‘학력보다 업무 능력이 중요하다’는 이 대통령의 말은 백번 옳다. 금융권은 물론 기업, 정부, 공공기관, 심지어 사회단체까지 반드시 적용해야 할 원칙이다. 그런데 고졸 출신엔 아예 적용조차 하지 않는다. 상고 출신 대통령이 세 번 연거푸 나온 나라의 현실이다.

 기업이 채용하지 않아 생긴 문제? 일부만 맞다. 외환위기 이후 기업들이 고졸 채용을 크게 줄였다. 취업난에 대졸자는 고졸자 일자리까지 넘본다. 그나마 대졸자가 기피하는 중소기업이 희망이다. 그런데 특성화고 졸업자 82%가 대학에 간다. 지금 당장 중소기업에 가봐야 저임금과 학력차별을 못 면한다는 판단이다. 대졸자나 고졸자나 중소기업 기피 현상은 다르지 않다. 중소기업이 제대로 클 수 없는 환경에서 고용의 질적 변화는 없다.

 적은 취업 기회보다 더 심각한 문제는 불공정한 평가다. 고졸자가 남다른 능력을 발휘하면 파격적인 승진과 보수를 줄 만도 한데 이렇게 하는 기업은 매우 드물다. 물론 고졸자가 대졸자보다 이해력이나 지식이 달릴 가능성이 있다. 그런데 기업 인사 담당자들은 대졸 신입사원이 학교에서 배운 지식이 거의 쓸모없다고 말한다. 창의성과 열정, 문제해결능력과 같이 요즘 기업과 기관이 원하는 덕목과 학벌의 상관관계는 거의 없다고 한다. 학력 철폐를 입사 지원서보다 평가에 더 적용해야 한다. 이게 안 되면 아무리 고졸자 고용을 늘려도 시늉일 뿐이다.

 고졸자 채용 붐이 일자 전문대학이 비상이다. 전문대학생은 기업에 필요한 능력을 학교에서 익혔는데 입사 후 정규대학 졸업자보다 낮게 평가받는다. 이젠 고졸자와 취업 경쟁을 벌여야 할 판이다.

 정규대학을 나오지 않고도 남 눈치 안보고 잘 살며, 무슨 일이든 도전하는 선진 사회를 우리도 만들고 싶다. 아직은 꿈이다. 능력보다 학력이 우선인 사회이기 때문이다. ‘서태지’와 ‘이청용’을 만든 연예, 스포츠계가 있다. 하지만 성공한 연예인마저 학력을 속일 정도로 우리 사회는 학벌 맹신주의에 사로잡혔다.

 그릇된 사회 인식을 정보통신기술(ICT)업계가 앞장서 깨면 어떨까. ICT 업계에 창의력은 이제 핵심 경쟁력이다. 대학을 나왔든, 나오지 않았든 창의적인 이가 곧바로 스타가 될 수 있는 몇 안 되는 업종이 ICT다. 인터넷과 게임 뿐만 아니라 다른 업종까지 ICT인들이 새 바람을 일으켰으면 한다.

 단지 고졸 출신이라는 이유로 홀대하거나 우대하는 곳은 ‘공정 사회’가 아니다. 인생 역전도, 사회 이동도 없다. 고졸자와 대졸자 모두 불만이 쌓인다. 고졸자 채용 붐이 반가운 동시에 불편한 이유다. ‘공정한 평가’ 원칙을 새삼 깨닫기 위한 새 사회적 화두라면? 물론 ‘OK`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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