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마가 지나자마자 30도를 넘는 무더위가 찾아 왔다. 지난주 월요일엔 장마가 끝나기가 무섭게 최대 전력수요(전력피크)가 전년도 여름철 최대치였던 6989만㎾를 넘어섰다. 이후에도 며칠 연속 최대 전력수요가 7000만㎾를 넘었다.
원자력발전 21기를 풀가동하고 있는 상황에서도 올해 우리나라 전력공급 능력은 7897만㎾ 수준이다. 전력거래소는 올 여름 최대 전력수요가 7477만㎾에 이르러 공급예비력이 420만㎾를 유지할 것으로 전망했다. 하지만 무더위가 계속되면 휴가시즌 직후인 8월 둘째 주나 셋째 주에는 지난 겨울에 기록한 사상 최대 전력수요치(7314만㎾)도 갈아치울 것으로 보인다.
우리나라 전력 예비율은 2~3년 전만해도 10%에 육박했지만 이상 한파로 인해 겨울철에도 최대 전력수요치를 경신하면서 6%대로 급격하게 낮아졌다. 예비전력은 총전력 공급 규모에서 최대 전력수요를 뺀 수치다. 전력예비율은 예비 전력량을 최대 전력수요로 나눠 산출한 수치로 전력공급 여유분이 어느 정도인지 보여주는 지표다.
전력예비율이 낮아지는 것도 문제지만 정부는 당장 예비전력이 400만㎾ 아래로 떨어지지 않도록 하는 데 전력수급 대책의 무게중심을 맞추고 있다. 전력수요 급증에 대비해 포스코복합발전 5, 6호기(115만㎾) 등 8개 발전소를 증설했고, 총 463만㎾의 공급능력을 추가 확보한 상태다. 최대 피크 수요관리 등 다양한 수급 안정화 대책도 추진하고 있다. 무더위가 장기화하면 예비전력이 위험선인 400만㎾를 위협하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일반적으로 예비전력이 400만㎾ 이하로 떨어지면 전력을 안정적으로 공급하기 어렵다고 본다. 정부는 예비전력이 400만㎾ 이하로 떨어지면 그 정도에 따라 ‘관심(400만~300만㎾)’ ‘주의(300만~200만㎾)’ ‘경계(200만~100만㎾)’ ‘심각(100만㎾ 미만)’으로 나눠 단계별 비상조치를 취하게 된다. 예비전력이 400만㎾ 아래로 떨어지면 정부는 다양한 방법으로 전력공급 확대에 나서게 된다. 그러나 경계나 최악 상황인 ‘심각’ 단계에 들어가면 광역정전 방지를 위해 정부가 긴급 부하차단 조치도 할 수 있다.
EU처럼 역내 협력이 잘 되고 시장이 개방돼 있다면 비싼 가격을 지불하고라도 부족한 전력을 충당할 수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지정학적으로나 이념적으로나 주위 국가와 따로 떨어져 있는 섬이다. 자체적인 해결 능력이 없으면 비상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 대규모 정전사태도 남의 일이 아니다.
상황이 긴박하게 돌아가자 정부와 전력업계가 비상태세에 돌입했다. 급기야 지난 금요일에는 최중경 지식경제부 장관이 전력유관기관 기관장들과 함께 ‘최근 전력수급 상황과 관련한 대국민 담화’를 발표했다. 정부가 다방면으로 대책을 마련하고 있지만 국민의 에너지 절약 동참이 절실하기 때문이다. 여름철이나 겨울철 전력 대란을 막을 수 있는 최선의 대책은 힘들더라도 국민 한 명 한 명이 전기를 사용하는 냉방기나 난방기 사용을 최소화하는 길이다.
26일에는 정부가 전기요금 개편안을 발표한다. 개편안에는 에너지 사용을 줄이기 위한 여러 가지 제도가 포함될 것으로 보인다. 한여름이나 추운 겨울 사람들이 전기를 많이 쓸 때 비싼 요금을 물리는 차등제 같은 제도 도입이 예상된다. 특히, 기업이 사용하는 산업용 전기요금과 가정에서 사용하는 요금 인상은 기정사실이다. 전기요금 인상률은 4% 후반대로 알려졌지만 주무부처 공무원들은 지난 주말 휴일까지 반납할 정도로 고민에 고민을 더했다. “그동안에도 전기요금을 인상하는 결정을 내린 바 있지만 이번처럼 힘들게 수렴하기는 처음”이라고 토로하는 것만 봐도 그렇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전기요금을 몇% 인상하느냐가 아니다. 국가 전력대란을 막기 위해, 에너지 절약을 위해 국민이 이 여름을 얼마나 참고 이겨내 주느냐가 관건이다.
주문정 그린데일리 부국장 mjjoo@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