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통사 사칭 `불법 판촉`…소비자 피해 속수무책
지난해 초부터 KT ‘아이폰3GS’를 사용 중인 직장인 장 모씨(28)는 18일 “KT인데 공짜로 기기변경을 해주겠다”는 전화를 받았다. 무료인데다 위약금까지 지원한다는 말에 장씨는 솔깃했다. 상담을 받다가 이상한 낌새를 눈치챈 장씨가 “KT 본사냐 지국이냐”고 캐묻자 “사실 KT가 아닌 위탁 판매법인”이라고 답했다. 회사 이름을 재차 물어보자 상대는 전화를 끊어버렸다.
갤럭시S2·옵티머스 3D·베가레이서 등 프리미엄급 스마트폰 신제품이 시장에 쏟아지자 소비자 교체 수요를 겨냥한 일부 판매점의 사기성 판촉 행위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
주로 이동통신사업자 기업명을 사칭해 약정 기간과 단말기 할부 원금 간의 상관관계를 잘 모르는 소비자에게 무료 단말기 명목으로 장기 약정 가입을 유도한다. 소비자가 속아 넘어가면 필요치 않은 부가 서비스도 여러 개 가입시킨다.
‘올레’ ‘생각대로 T’ 등 이통사 브랜드 로고송과 유사한 배경음악까지 깔아놓은 자동응답시스템(ARS)으로 소비자를 감쪽같이 속이기도 한다.
한 이통사 관계자는 “고객센터에 이들이 제공하는 내용의 진위를 묻는 상담 전화가 하루에도 수십 통씩 걸려오고 주말을 앞둔 목·금요일에는 상담 건수가 더욱 늘어난다”며 “이통사로서도 이들 전화를 차단할 방법은 마땅치 않아 무료라고 현혹하는 판촉에 속지 말라고 당부하는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런 사기성 판촉 전화나 스팸 메시지를 보내는 판매점은 주로 별도 점포를 두지 않거나 여기저기로 매장을 옮겨 다니는 이른바 ‘떴다 판매점’이 많다. 뒤늦게 계약 시의 설명 부족으로 원하지 않는 상품에 가입했더라도 항의할 방법이 없어 낭패를 보는 일도 다반사다. 판촉에 쓰이는 전화번호는 대부분 등록되지 않은 가짜 번호거나 수신이 거부돼 있다.
‘떴다 판매점’을 통해 소비자들의 개인정보도 줄줄 새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 충격을 주고 있다. 최근 유사한 판촉 전화를 받은 한 사용자는 “내가 언제 어떤 단말기를 구입했는지, 위약금은 얼마 정도 나오는지 다 알고 있어 진짜 이통사에서 전화한 것으로 속을 뻔했다”며 “개인정보 유출이 된 건 아닌지 의심스럽다”고 말했다.
지난 8일 방송통신위원회는 서울·인천지역 이동통신 단말기 판매점 30곳을 점검한 결과 이 중 60%의 판매점에서 가입신청서와 주민등록증 사본을 보관하고 일부 판매점에선 PC에 개인정보를 DB화해 관리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고 밝힌 바 있다. 현행법상 엄연한 불법 행위다.
이통사 관계자는 “화려한 성능을 자랑하는 고가의 스마트폰 단말기 출시가 줄줄이 예고돼 있어 사기성 공짜 판촉 행위가 더욱 늘어날 것”이라며 “이통사는 동의를 받은 사용자에 한해 일부 자체 CRM 마케팅을 펼칠 뿐 다른 별도의 판촉은 하지 않기 때문에 소비자들의 세심한 주의가 요구된다”고 말했다.
황태호기자 thhwang@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