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기술연구회와 산하기관들이 당황을 넘어 황당해하고 있다. 취임한지 2개월된 권철신 연구회 이사장의 ‘열정에 가득찬’ 좌충우돌식 행보 때문이다.
숙식(宿食) 연구의 대가로 알려진 권 이사장은 취임하자마자 간이침대부터 주문했다. 교수시절 밤낮없이 연구에 매진했던 학자적 면모와 함께 일에 대한 열정을 ‘침대’로 나타낸 것이다.
권 이사장은 대학에서 시스템공학을 가르쳤다. 대학교수의 입장에서 출연연을 들여다보면, 답답한 점이 한둘이 아닐 것이다. 고치고 싶은 것도 많았을 것이다.
초도 업무보고 때부터 권 이사장은 출연연 R&D 체계 비효율성을 언급하며 사사건건 지적을 일삼아 해당 출연연구기관들의 혀를 내두르게 했다. 최근엔 수시로 찾아와 출연연 R&D 체계가 어설프다며 논문 심사하듯 잘못을 꼬집어댔다. 제대로 안고쳐지면 강하게 밀어부치며 개선을 요구했다.
최근엔 기관별로 ‘도전 및 소원 과제’ 제출을 요구했다. 연구회 산하 출연연의 소원을 다 들어준다며, 연구하고 싶은 아이템을 내라고 주문한 것이다. 출연연 강소형 조직개편안 만들기도 버거운 상황에서 소원과제까지 떠안은 출연연의 지난 3주는 울상의 연속이었다.
이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각 출연연의 기관장과 선임본부장이 참석해 도전 및 소원과제 발표까지 마쳤지만, 성이 안 찬 권 이사장은 기관을 일일이 찾아 학생 가르치듯 하나하나 ‘가르치고’ 있다. 출연연을 대상으로 학위논문 지도 편달하듯이 말이다.
이 행보에 대체로 출연연은 당황을 넘어 ‘황당’하다는 반응들이다. 예산 편성권도 없는 연구회가 이런 것을 요구하는 것 자체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최근 권 이사장은 매월 R&D 매니지먼트(RDM)포럼을 개최한다고 선언했다. 아예 출연연 수장을 모아 한달에 한번씩 ‘지도’에 나서겠다는 것으로 읽힌다. 지난주에는 18명의 연구회 조직을 대과형 실체제로 개편하면서 팀장들을 모두 보직해임시켰다.
연구회는 사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해체 위기에 있었다. 과학기술계는 10여년 전 연구회가 태동할 때부터 ‘옥상옥’이라며 없애라고 주문해왔다.
연구회를 먼저 추스리고, 자신의 자리가 어디인지 돌아보는 게 순리다. 욕심이 지나치면 화를 부르는 법이다.
대전=박희범기자 hbpark@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