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화수 칼럼] 양승택의 새로운 도전

 옛 정통부 출입기자들이 가장 좋아한 장관은? 저마다 다르겠지만 양승택 전 장관을 꼽는 기자가 많다. 왜? 기사거리를 많이 주니까.

 기자에게 기사거리를 주는 이만큼 좋은 취재원은 없다. 양 전 장관이 그랬다. 아침 출근길 정통부 건물 1층에서 우연히 그를 만나 14층 집무실까지 엘리베이터를 같이 타도 기사거리 하나 건진다는 농담도 있었다. 말 많은 분? 천만에. 어떤 질문이든 솔직 담백하게 답할 뿐이다.

 그는 2001년 3월 취임 기자간담회 때 동기식 IMT2000사업자 출연금을 줄이겠다고 말했다. 특정 기업을 편든다는 오해와 공격을 받을 게 뻔한데 소신을 있는 그대로 밝혔다. 이듬해 7월 마지막 기자회견 때다. 그는 정통부와 산자부 통합을 묻는 질문에 “잘하는 부처를 통합해 하향평준화할 필요 없다”고 말했다. 산자부는 부글부글 끓었다.

 거침없는 소신 발언은 퇴임 후에도 이어졌다. 2003년 5월 한 행사에서 그는 ISDN, Y2K, 닷컴, IMT-2000을 세계 정보통신 불황으로 내몬 ‘4대 사기극’이라고 말해 파장을 일으켰다.

 정통부 공무원들은 그가 기자를 만날 때마다 조마조마했다. 하지만 이들은 그의 발언이 미칠 파장을 걱정할 뿐 꾸밈없는 말 속의 진의를 너무 잘 알았다.

 “이해가 무척 빠르죠. 법과 행정에 어두울 텐데 보고하면 금방 파악합니다. 경영도 잘 알고. 한마디로 이공계 출신이라면 꼭 지향할 만한 모델이랄까?” 한 후임 정통부 장관은 그를 이렇게 평가했다. 역대 정통부 장관 가운데 자신의 정책 소신과 철학을 이처럼 확고하게 편 이는 이석채 장관(현 KT 회장)과 양 장관뿐이다.

 그의 인생을 직업으로 보면 연구소장(ETRI), 장관(정통부), 대학총장(ICU, 동명정보대)이다. 기업 CEO(한국통신진흥, 한국통신기술)도 있다. 세상에 드러나지 않은 직업이 하나 더 있다. 통신 전도사다. 외국에선 이건수 동아일렉콤 회장, 정장호 전 한국정보통신산업협회장과 함께 그를 이렇게 부른다.

 그의 인생을 키워드로 압축하면 TDX, CDMA, 와이브로다. TDX와 CDMA는 그의 손에서, 와이브로 아이디어는 그의 머리에서 나왔다. 모두 우리가 새로 개발한 통신 기술이다. 맨땅에서 시작했으나 성공하겠다는 확신과 열정, 과감한 추진력이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꿔놓았다.

 인간 양승택을 한 단어로 정의하라면 ‘새로운 것을 탐구하는 열정’이라 하겠다. 나이 차이 많은 연구원과 대학생은 물론이고 민간 출신 장관을 꺼린 공무원과 소통할 수 있게 한 덕목이다. 고희(古稀)를 넘겼지만 이 열정은 사라지지 않는다. 그의 좌우명도 ‘일신(日新)’이다.

 장관과 대학총장까지 지낸 양반이 또다시 새로운 것을 찾아 나섰다. 통신서비스 사업이다. 그것도 거대 통신그룹이 셋이나 포진한 시장에 뛰어든다. 어찌 보면 무모한 도전이다. 하지만 그에겐 와이브로로 제2의 CDMA 성공신화를 만들겠다는 열정과 추진력, 탄탄한 글로벌 네트워크가 있다.

 무엇보다 새로운 접근이 그의 도전에 기대를 품게 한다. 음성과 데이터 모두 인터넷기술(올IP)로 구현해 요금을 확 낮추겠다는 시도다. 공짜 음성 통화 시대가 다가오는 상황에서 한발 앞선 행보다. 기존 사업자는 엄두를 낼 수 없는 시도다.

 그의 새 도전이 2011년 갈길 잃은 한국 통신 산업에 새 희망이 됐으면 한다. 특히 후배 통신인들에게서 사라진 새로움을 향한 열정과 비전, 사회적 책무를 일깨웠으면 좋겠다.

 1년 전에 낸 자서전 ‘끝없는 일신(日新)’에서 그는 이렇게 말했다. “늘 그랬듯이, 더욱 일신을 실천하면서 이 사회에 더 필요한 존재로 남고 싶다.”


 신화수 논설실장 hsshin@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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