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1980년대 전자·광학산업이 일본, 한국, 중국 등 신흥국가에 밀리며 고전하던 독일 경제가 되살아나 2000년 후반 이후 다시 경쟁국가와 격차를 벌려가고 있다.
1970년대 이후 독일 경제는 큰 위기에 직면했다.
최고 수준을 자랑하던 여러 독일 산업 가운데 전자, 광학산업 등이 일본의 파상적인 공세에 급격히 위축되면서다. 그 결과 세계 2위 수준을 지키던 전자산업의 AEG, 텔레푼켄, 그룬디히, 베가, 뢰베, 노르트멘데 등 주요 기업이 도산하거나 사업을 연관분야로 전환했다.
특히 1990년대를 기점으로 한국과 중국이 급격하게 성장하면서 2000년 이후 독일 전자 산업은 중국, 일본, 한국 등 동아시아 3국 모두에 뒤처진다.
광학산업도 비슷하다.
라이츠, 롤라이, 칼자이스, 포익트랜더와 같은 업체들이 전자 회사와 비슷한 길을 걸었다.
일본의 캐논과 니콘, 올림푸스, 야시카 등 광학업체들은 각종 편의기능과 저렴한 가격을 기반으로 독일 광학기기를 몰아내고 세계시장을 장악했다.
이런 독일 수출의 약세는 전체 수출산업에서도 나타났다.
독일 수출액은 평균 일본의 약 1.7배 수준이다. 하지만 1960년대 일본의 4배에 이르던 수출액이 1970년대와 1980년대를 거치면서 거의 동일한 수준까지 낮아졌다.
일본을 필두로 한 동아시아 수출기업들의 성장과 함께 독일 제조업도 시련의 시기가 찾아오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다양한 산업에서 기본기에 충실했던 독일 기업은 자동차, 기계 부품 등 여러 시장에서 일본 기업에 밀리지 않고 경쟁력을 유지했다.
이런 경쟁력 유지가 최근 경제위기를 거치면서 독일 산업의 저력으로 살아나고 있다.
독일과 일본, 한국의 상위 수출 15개 품목은 독일 2712억달러, 일본 1846억달러, 한국 1616억달러다. 독일이 직접 경쟁하는 품목에서 일본에 비해 약 1.5배 많이 수출했다.
그러나 전체 수출은 독일이 일본의 2배, 한국의 3배에 달한다. 결국 주요 경합 품목을 제외한 부문에서 독일의 수출이 많이 이뤄지고 있다. 반대로 일본, 한국은 몇몇 특정 품목 수출에 의존하고 있다.
일본, 한국에 비해 독일이 수출에서 앞서고 있는 이유는 폭넓은 산업 기반을 바탕으로 수출 품목의 다양성이 유지되고 있기 때문이다.
일본, 한국은 선박, 자동차, 반도체, LCD 등 특정 품목에 수출이 집중된 반면에 독일은 수출은 자동차를 제외하고 거의 대부분 품목에서 고르게 나타난다.
품목 수에서 볼 때 3국 가운데에 독일이 수출에서 우위를 차지하는 품목이 678개다. 일본은 123개, 한국은 55개 품목에 그친다.
실제 독일은 자동차 외에도 화학, 의약, 항공, 기계, 신재생 에너지 등 다양한 품목에서 상당한 비교 우위를 바탕으로 거의 전 산업 부문에서 세계 수출의 수위를 다투고 있다.
이런 수출 성과를 바탕으로 현재 독일 경제는 경쟁국인 미국, 일본보다 양호한 성과를 보인다. 2008년 리먼브러더스 사태로 촉발된 글로벌 경제위기에도 작년 독일 경제는 GDP 6% 규모의 경상수지 흑자(미국 -3.2%, 일본 3.1%)에 75% 수준의 국가 부채(미국 93%, 일본 226%), 3.6%(미국 2.5%, 일본 2.2%)의 경제성장률을 보였다.
작년 독일은 전년 대비 14.2% 성장한 수출과 9.4% 증가한 시설투자에 힘입어 3.6% 성장했다. 실업률도 3%대로 감소했다.
이서원 LG경제연구원 책임연구원은 “영·미 자본주의와 대비되는 ‘라인 자본주의’로 일컬어지는 독일은 일부 분야에 편중된 산업구조에서 탈피, 세계 최고의 산업국가로 도약하고 있다”며 “최근 다양한 성장산업 육성에 나선 우리나라가 넘어야 할 가장 중요한 나라가 됐다”고 밝혔다.
홍기범기자 kbhong@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