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라인] 통신료 인하, `숲을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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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년 전 박세리를 시작으로 여자 골퍼들이 LPGA를 휩쓸 때 유행했던 우스갯소리다. 세계무대 그것도 골프의 본 고장이나 다름없는 미국에서 경험도 일천하고 신체 조건도 뒤처지는 여자 선수들이 선전하는 배경에 대해 갑론을박이 오갔다. 이 가운데 누구나 수긍하는 게 바로 “정부가 방치했기 때문”이라는 주장이었다.

 정부가 설령 그것이 골프 진흥이 목적이었더라도 간섭했다면 오히려 골프 세계 정상은 꿈도 꾸지 못할 것이라는 뼈 있는 농담이었다. 당시 모든 사람, 물론 대부분이 기업인이었지만 박장대소하면서도 고개를 끄덕였다. 시장에 질서가 제대로 잡혀 있다면 선의의 경쟁을 유도하는 게 오히려 더 좋은 결과가 나올 수 있다는 논리였다.

 통신료 인하 논쟁이 다시 불붙을 태세다. 정부의 통신료 인하 발표 이후 잠시 소강 사태를 보였던 이동전화 기본료 문제가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

 민주당 문방위 소속 위원 일동은 SK텔레콤 이후 KT와 LG유플러스가 기본료를 내리지 않는다며 방통위를 압박하고 나섰다. ‘내리겠다’는 정부 의지가 약하고 허술한 후속 조치로 요금 인하가 생색내기에 그치고 있다고 비난했다. 기본료 인하가 다시 정치 논리로 비화될 가능성이 커진 것이다.

 방통위는 이에 앞서 자체적으로 통신료 인하 방안을 마련했지만 정치권 ‘호통’에 부랴부랴 기본료를 낮추는 악수를 두었다. 당시 제일 먼저 정부를 질타한 건 공교롭게 한나라당이었다. 결국 기본료 ‘1000원’을 낮추는 정책안을 끌어냈지만 정작 반응은 냉랭했다.

 어느 누구도 만족하지 못했다. 산업계 반발은 당연했지만 수혜 당사자인 국민조차도 시큰둥했다. 오히려 보조금 축소로 원성만 높아졌다. 정책 입안자인 방통위는 정책 명분도, 실속도 못 챙기고 예상 밖의 썰렁한 반응에 입지가 크게 좁아졌다.

 아마 제일 답답한 건 SK텔레콤일 것이다. 정부 정책에 호응해 수익이 줄어드는 손해까지 감수했지만 어느 쪽에서도 좋은 평가를 못 받고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경쟁업체는 답답한 분위기를 즐기는 상황이니 속이 편할 리 없다. 모두 시장에서 풀어야 할 사안에 정치 논리가 개입했기 때문이다. 첫 단추부터 틀어진 통신료 인하는 정부가 개입할수록 마찰음만 커질 게 분명하다.

 지금이라도 제자리를 찾는 길은 원점으로 돌리는 길뿐이다. 시장에 맡기는 게 최선이다. 정부가 또 개입한다면 시장은 다시 왜곡될 수밖에 없다. 왜곡은 또 다른 정부 간섭이 불가피하다. 간섭의 악순환이 이어질수록 결국 망가지는 건 시장이고 피해를 보는 건 소비자다.

 정책의 신뢰성에도 흠집이 날 수밖에 없다. 정부는 시장 질서를 어지럽히는 행위에 대해 엄중하게 처벌하고 본래의 기능이 정상적으로 움직일 수 있도록 해주면 그만이다. 정치 논리로 인한 시행착오는 한 번이면 족하다.


 강병준 정보통신팀 부장 bjkang@etnews.com